
경기 양평에는 노지에서 농사짓는 일을 고집하는 농민들이 있다. 땅을 건강하게 만들고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커야 자연스레 계절을 먹는 일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 절기에 맞춘 삶의 리듬을 지키려고 애쓰는 제철 노지 꾸러미 작목반이 바로 그분들이다.
1985년 겨울, 할 일이 없다는 이유로 아는 분 손에 이끌려 가게 된 정농회 수련회 하나가 한 사람의 평생을 바꿨다. 그 인연으로 양평 땅에서 40년간 유기농사를 이어오고 있는 팔당생명살림영농조합의 노국환 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제철 노지 유기농 농사의 원칙은 간단하다. 봄부터 10월까지 농사짓고, 나머지 여섯 달은 노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자연 속에서 논다. 겨울이면 두부를 만들어 나누고, 김장하고, 메주를 쑨다. 가을에는 수확물을 말리고 절이고 저장해 계절을 이어간다. 기후위기 시대, 노지에서 농사짓는 일은 점점 힘들어져 가고 있어 사실 걱정이기도 하다.
수요일은 팔당생협 구리점 이전 오픈 행사를 진행하던 날이었다. 서울 일정을 마치고 오후에 도착하니 제철꾸러미 작목반 전정임 농민이 뜨거운 햇살 아래 유기농산물을 펼쳐놓고 계셨다. 양배추, 머윗대, 손수 만든 조청과 들기름이 조합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머윗대가 나올 계절이구나 싶어 반가웠지만, 반가움도 잠시 하나도 팔지 못했다는 이야기에 어쩌나 싶은 마음이었다. 봄이면 땅을 뚫고 머위의 새싹이 고개를 내민다. 이 머위가 자라면 잎은 세어지고, 뜨거운 햇살에 지지 않고 줄기를 튼튼하게 뻗어 올린다. 이때부터는 잎이 아닌 대를 즐기는 시간이 온다. 이 맛있는 머윗대가 하나도 팔리지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
사연인 즉 이랬다. 그날 나가야 할 꾸러미가 47개였는데 50개인 줄 알고 다른 분이 머윗대를 50개 준비해 오셨다는 것. 남은 머윗대를 대신 팔고 계신 거였다. 그러나 그 뜨거운 날, 머윗대는 아무도 사 가지 않고 햇빛 아래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지나가던 주민 한 분이 반가운 듯 물었다. “머윗대예요?” ‘맞다’고 환하게 대답했지만 한 개만 사 가셨다. 결국 두 개는 팔리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남았고, 내가 샀다.
집으로 돌아와 머윗대를 삶기 시작했다. 살짝 삶아야 껍질 벗기기가 수월하다. 그런데 이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덜 삶으면 볶을 때 식감이 나쁘고, 너무 삶으면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다. 큰 솥에 물을 넉넉히 붓고 삶아야 색이 까맣게 변하지 않는다. 이러니 머윗대 앞에서 주저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손이 많이 가는 식재료인 건 확실하다.
그러나 그 번거로움을 알면서도 손을 뻗게 되는 이유가 있다. 제철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면 그 맛을 볼 수 없다. 제철 노지 꾸러미 작목반의 농민들은 “우리가 먹는 모든 것에는 제철이 있다”고 말한다.
한겨울에 참외를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계절을 잊은 채소들이 마트 진열대를 채운다. 제철보다 빠르게 키우기 위해 농약과 비료와 난방 에너지가 쏟아지고, 농부의 노동은 더 커지고,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은 그 노력을 따라오지 못한다.
유기농 가격은 10년 전과 같은데 낮춰달라는 압박은 심해지고, 소비자는 유기농보다 무농약을 더 찾는다. 서글픈 현실에도 노국환 농민은 농사야말로 생명을 키우는 일이라는 믿음으로 유기농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꾸러미를 만들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방식. 중간 유통 없이 그 주에 나는 것을 바로 보내는 방식. 매주 꾸러미 안에는 계절에 맞게 자란 농산물·과일·임산물들이 담겨 소비자 식탁에 오른다. 이름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노지·제철·유기농 세 가지 원칙을 지키며 자란 것들이다. 매주 제철 노지 꾸러미를 받는다는 것은 양평 땅의 계절을 받는 일이고, 40년 유기농 신념을 받는 일이며, 농부의 마음을 받는 일이다.
그 마음이 이번에는 전시로 이어졌다. 실학박물관이 올해 상반기 기획전 ‘이십사二十四 : 하늘을 읽어 땅을 살리다’를 준비하면서 ‘계절을 잊은 우리에게’ 코너에 노국환 농부님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철 노지채소 꾸러미 작목반의 삶을 기록한 영상이다. 전시는 경기 남양주 실학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10월 18일까지 열린다.
하늘을 읽어 땅을 살린다는 것. 그것이 절기이고, 노지이고, 제철이다. 40년을 그렇게 살아온 농부의 이야기를 가까운 남양주 조안에서 만날 수 있다. 영상으로 먼저 만나도 좋겠다.
레시피
재료 : 머윗대 300g, 들기름 1큰술, 들깻가루 2큰술, 물 100㎖, 간장 1큰술
사전 준비
1. 큰 솥에 물을 가득 담아 끓인다.
2. 끓는 물에 소금 한 줌과 굵은 머윗대부터 넣어 삶는다.
3. 6분 정도 삶은 뒤 건져낸다.
4. 찬물에 담가 열기를 식힌 후 껍질을 벗겨둔다. (끝을 잡고 당기면 껍질이 분리돼요)
조리 순서
1. 껍질 벗긴 머윗대를 찬물에 10분간 담가 쓴맛을 뺀다.
2.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굵은 것은 반으로 갈라 썬다.
3. 수분이 있는 상태로 팬에 넣고 중불에서 2분간 볶는다.
4. 물, 들기름, 간장을 넣고 고루 볶는다.
5. 들깻가루를 넣고 잠시 더 볶아 고소한 향을 입힌다.
6. 접시에 담아낸다.
TIP 머윗대는 큰 솥에 물을 넉넉히 붓고 삶아야 색이 까맣게 변하지 않는다. 들깻가루를 마지막에 넣어야 고소함이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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