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으면서 기쁘게 사는 사제로
그는 본당 주임으로 오면서 ‘웃으며 지내고 화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지켜온 듯하다”며 웃어 보였다.
“신자들이 ‘미사에 오니 좋다, 기쁘다’라고 느낄 수 있으려면 사제가 평소에도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사제가 항상 신자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신자들과 함께해야 하고요.”
안 신부는 미사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신자들 한 명 한 명과 눈맞춤을 하며 인사를 나눈다. 그러다 낯선 얼굴이 보이면 먼저 인사를 건네고 연락처를 받아다가 본당 봉사자들에게 전해준다.
“멀리서 도망가는 신자가 보이면 끝까지 쫓아갈 때도 있어요. 어디 가시냐고, 인사나 하고 가시라고 제가 먼저 인사합니다.(웃음) 평일엔 일부러 동네 공원에 가서 산책도 하고, 주민센터도 들르고 그래요. 어디든 신자는 있게 마련이니 인사하고 오는 거죠. 성전 건립기금 마련한다고 신자들이 쑥 캐고 딸기 따러 가면 저도 꼭 같이 갑니다. 신자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사제가 함께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건 공동체 신뢰에 큰 도움이 되니까요.”
그는 “코로나19로 신자들이 많이 힘들고 어려운데 사제라면 신자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위기일수록 사제 직분의 의미 되새겨야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미사 참여자는 본당 수용인원의 10~20%로 혹은 50인 미만, 100인 미만 등으로 제한되기도 했다.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돼 소모임 활동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본당에 따라 신자들의 신앙생활에선 크게 차이가 났다. 미사 대수를 대폭 늘려서 신자가 한 명이라도 더 미사에 올 수 있도록 배려한 본당이 있는가 하면, 여건이나 형편이 되지 않아 성당 문을 그저 굳게 닫아놓을 수밖에 없는 본당도 있었다.
“신자들에게 무엇이 더 이익인지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본당 사제가 먼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되겠지요. 위기일수록 사제는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물론 방역 지침을 지키면서 해야죠. 코로나19 상황이더라도 환자가 봉성체를 하고 싶어 하면, 사제는 당연히 환자에게 성체를 모실 기회를 줘야하는 겁니다.”
그는 “코로나19로 사제 직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위기일 때 사제 직분을 수행하는 것이 더 보람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수님께선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사제는 예수님을 따르니 자신의 목숨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내놓는 직분으로 봐야겠지요. 그렇다면 하느님의 백성을 위해 봉사할 때 조건이 있을 순 없죠. 사제의 활동은 무조건적인 봉사가 돼야 합니다.”
소규모 모임으로 맞춤 사목
코로나19 시기에도 문정본당에선 세례식이 매달 끊이지 않았다. 비결은 사회적 거리두기 맞춤 사목에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임 인원이 제한되면, 모임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숫자에 맞춰 세례반을 운영했다. 부활과 성탄 시기에 맞춰 대규모로 진행했던 세례식은 감염병 시대엔 더이상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안 신부는 모임의 인원을 줄이고 형태를 다양화했다.
“5명 미만으로 모이라고 하면, 예비신자 2~3명, 교리교사 혹은 봉사자 1명으로 세례반을 꾸렸어요. 그렇게 3~4인 체제로 세례반을 여러 개 운영한 거죠. 서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교육을 이어갔습니다. 소규모로 하니 오히려 친밀감도 높아지고 교육 효과도 더 좋았습니다. 덕분에 본당 신자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교중 미사 때 세례 갱신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게 됐고요.”
안 신부는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ecclesia)의 본질은 모임이고 집회”라면서 “아무리 비대면 시대라고 하지만, 신앙생활은 함께 모인 가운데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가 지닌 공동체성은 감염병, 비대면 시대라도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사는 사제의 전유물 아니야
공동체 미사가 중단됐지만, 사실 사제에게 미사 중단은 없었다. 사제들은 홀로 미사를 집전하고 성체를 모실 수 있었다. 때문에 사제 중심, 전례와 성사중심의 사목에 대한 비판이 일기도 했다. 결국 미사에서 배제된 건 신자여서다. 안 신부는 “굉장히 유감스럽고 신자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사제는 미사를 드려야 하는 의무를 지녔지만, 그렇다고 미사가 사제의 전유물은 아니거든요. 미사는 백성 전체의 이름으로 봉헌하는 것이고 공동체를 위한 일입니다.”
그는 “코로나19로 미사에 관해 많이 성찰할 기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기에 처하고 비판을 받을수록 교회 원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돌아봐야 한다는 의미다.
안 신부는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는 얘기를 계속 해왔지만, 문제가 지속되는 건 돌아가자는 말뿐이라 그렇다”며 초대 교회가 어땠는지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알았어도 실천하지 않은 현실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미사가 정말 은총의 시간이고 특별한 체험의 시간임을 전해줘야 한다”고 했다.
“매번 미사 경문을 읽을 때마다 떨립니다. 미사 경문, 기도문에 들어있는 역사와 신앙의 의미는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죠. 미사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 백성으로서,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속죄하고 화해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문헌 통해 과거 경험 배울 수 있어
코로나19처럼 전 세계를 휩쓴 감염병은 과거에도 있었다. 흑사병, 스페인 독감 등이 그 예다. 그 시절 교회가 어떻게 지냈는지를 알려면 교회 문헌을 봐야 한다.
“중세 때 흑사병이 있었죠. 당시 상황을 보면 누구도 원인을 몰라 모여서 기도하다가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고요. 감염병뿐만 아니라 기근이라든지 어려움이 있을 때 교회가 어땠는지를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 교회의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거죠. 교회가 시대 흐름에 따라 펼쳐온 사목의 경험들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니까요.”
과거 교회의 경험을 제대로 알려주고 오늘을 성찰할 수 있게 이끌어 주는 건 학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특히 초세기에 활동했던 교부들을 연구하는 교부학은 일반 신자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게 안 신부 생각이다. 그는 “교부들은 신자들이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교회 가르침을 제대로 가르쳐주려 했던 사목자이자 스승”이라면서 “그런 가르침을 오늘 우리가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고 했다.
안 신부가 틈날 때마다 교회 문헌과 교부학 관련 자료를 번역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책을 읽다 보면 알지 못했던 사목적 방법들을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본당에 오니 솔직히 책을 볼 시간이 잘 나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꼭 책을 보거나 번역 파일을 들여다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발버둥 치는 거죠. 남들보다 공부를 좀더 할 기회가 주어졌고, 그런 은총을 받았으니 그만큼 교회에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