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봉훈 주교 보며 처음 사제 성소 키워
성소가 빨랐던 건 아니다. 일반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던 그는 내덕동주교좌본당에서 봉사하다가 성소를 찾는다.
“대학 시절에 본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했는데, 그때 주임 신부님이 장봉훈 주교님, 보좌가 총대리이신 성완해 신부님이셨어요. 주교님은 본당 신자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으셨는데, 그 성소를 보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그런 것이 제 안에 쌓이며 성소를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뒤 대구가톨릭대에 들어갔다가 입대, 통신병으로 복무한 뒤 신학교로 다시 돌아와 9년 만에 졸업하고 1996년 사제품을 받았다. 수품 성구는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늦깎이 새신부’였다. 이어 청주 서운동·흥덕본당 보좌, 학산본당 주임으로 사목한 뒤 장 주교의 권고로 로마 유학을 떠나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에서 교회사를 전공했다. 석사학위 논문은 15세기에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장상을 지낸 바니가롤라 수녀의 삶과 그 시대를 주제로 썼다. 논문을 마치고 나서도 그는 로마에 5년 8개월 동안 머물러야 했다. 로마에 유학하는 사제들을 위한 베드로 기숙사와 바오로 기숙사 중 바오로 기숙사, 곧 성 바오로국제선교신학원 부원장직을 맡았기 때문이다.
“제가 바오로국제신학원에서 학생으로 3년, 부원장으로 6년을 살았는데, 부원장직은 제게 특별한 체험의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사람으로는 최초였는데, 많은 분에게 축하를 받았어요. 200명쯤 사는 기숙사인데, 거기서 몇천 명은 만난 것 같습니다. 많은 신부님을 만나 세계 교회나 선교지역 이야기를 들으며 사제로서 제 삶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그보다 1년 먼저 로마유학을 떠나 성서학을 공부하고 있던 신학교 입학 동기 정용진(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장) 신부는 “당시에 김종강 주교임명자께서 ‘교회 역사 안에서 교회가 걸어온 길을 묵상하고, 세상을 읽어나가는 방식을 교회사를 통해 보는 건 좋은 몫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던 걸 기억한다”고 회고했다. 이어 “요즘 기존 교회 모습에 실망하고 무력함을 느끼는 분들이 있는 상황에서 김 주교임명자께서 하느님의 온 백성과 함께 새로운 길을 여는 데, 주교님의 겸손과 신중함이 좋은 표양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