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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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그리스도의 향기’ 넘치도록

참 빛 사랑 2022. 2. 6. 17:59

[미카엘의 순례일기] (53)부제반 순례(하)

▲ 부제들이 갈릴래아 베드로 수위권성당을 순례하고 있다.
 
 

수십 명의 부제들 시선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을 때, 함께 순례하실 지도 신부님께서 반갑게 인사하셨습니다. 학창 시절 친하게 지냈던 분이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제 마음을 눈치채신 듯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지만,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부제들은 단 한 번도 단체로 해외여행이나 순례를 가본 적 없으니, 종교적 지식을 제외하면 사실 순례도 여행도 잘 모르는 사람들인 거예요. 그저 미카엘씨의 경험을 잘 전달해주시기만 하면 좋겠어요. 제 생각엔 어쩌면 늘 하던 순례보다 편하실지도 몰라요. 물론 순례 도중 곤란한 질문들을 던질 수는 있겠지만요.”

신부님의 따뜻한 말씀 덕분에 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설명회도 편안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얼마 후 부제반 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도 신부님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인원을 헤아리는 일부터 전례 준비나 숙소를 챙기는 일까지, 본래 인솔자가 해야 할 일을 모두 각자 알아서 하셨으니까요. 여행 중 일어나는 여러 사소한 문제들도 스스로 해결하셨습니다. 대표 부제님께 전달 사항을 말씀드리면 곧 모두에게 전달되었죠. 인솔자로 일하면서 겪은 중 가장 편안한 순례였습니다. 석사 논문 주제와 관련이 있는 순례지라며 깊이 있는 질문을 하신 부제님을 위해 저녁 시간 내내 자료를 뒤지고 공부를 하거나, 몇몇 부제님들께서 우연히 만난 유다교 랍비와 토론을 벌이는 예상치 못한 일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오히려 순례를 풍부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순례가 마무리되고, 어느덧 마지막 날 저녁이었습니다. 구 예루살렘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모여 몇몇 부제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사제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으로 이야기가 흘러갔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자니, 모두 한가득 걱정을 안고 계신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 부제님께서 갑자기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많은 신자가 저를 포함한 신학생, 부제들에게 ‘예수님의 향기가 나는 사제’가 되기를 기도한다고 자주 말해주세요. 그런데 이 말이 아주 부담스러워요. 제가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물어보고 싶어요. 사제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신 적이 있으시죠? 어떤 때 가장 실망스러우셨어요? 누구에게든 한 번쯤 묻고 싶었지만 그러기가 어렵더라고요. 흔치 않은 기회인 것 같아 질문을 드립니다.”

모든 부제님의 시선이 저를 향했고, 한쪽 구석에서 편하게 대화를 듣기만 하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다’는 부제님의 재촉에 입을 다물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순례를 떠나기 전에, 지도 신부님께서 혹시나 곤란한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렇군요.”

저는 멋쩍게 말씀드렸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신부님의 어떤 모습 때문에 실망한 적은 없어요. 다만 이런 기억이 있습니다. 모 본당 신자들과 함께 순례 중이었는데, 알고 보니 어떤 사건 때문에 신자들이 완전히 분열되어 있더군요. 주임 신부님께서는 강론 중에 ‘성당 활동 때문에 신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니, 교회의 모습이나 다른 신자들은 신경 쓰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 보고 성당에 다니시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정말 슬펐어요. 예수님을 따르는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찾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거든요. 저는 교회가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동체여야 한다고 믿고 있어요. 우리가 온몸과 마음을 다해 예수님을 따른다면, 그 향기가 나지 않을 리 없겠지요. 그래서 신학생과 부제님, 그리고 사제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기를 기도할 뿐 아니라, 꼭 그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기도 해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 한 부제님께서 미소를 띠며 말씀하셨습니다.

“왠지 동문서답인 것도 같고, 혹을 떼려다 도로 붙인 것도 같네요.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당연한 말이고요. 그나저나 김 부제는 왜 그런 걸 물어봐? 본전도 못 찾을 거면서…. 어쨌든 우리 몇 년 후에 서로 냄새 좀 맡아보자고. 그분의 향기가 나는지, 아니면 향수 냄새가 나는지 말이야.”

그날의 대화는 그렇게 한바탕 웃음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지난 몇 주간 교구, 수도회 별로 거행된 서품식을 인터넷 방송으로 지켜보고 있자니 그 날이 떠오릅니다. 이미 사제품을 받고 한껏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계실 그때의 부제님들, 2022년을 맞아 새로이 수품한 모든 부제님과 신부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쳐나는 사제가 되시리라 믿으면서 말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