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진석 추기경님과 인연은?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시사회에서 멀리서만 뵙던 정 추기경님과 함께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았어요. 제가 살인자를 용서하는 장면에서 정 추기경님께서는 눈시울을 적시셨어요. 정 추기경님은 영화가 끝난 후 제 손을 꼭 잡아 주시며 제 연기를 특별히 칭찬해 주셨어요. “저는 자매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오셨는지 잘 압니다. 하느님께서도 자매님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시니 용기를 내세요.” 저는 추기경님의 그 한 말씀에 평생 힘들고 아팠던 상처와 기억들이 정말 한꺼번에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어요. 너무 행복해 며칠 동안 계속 눈물이 그치지 않았어요. 제가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큰 축복이란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어요.
▶ 언제 신앙을 받아들이셨나요?
남편의 죽음이 제가 신앙에 입문한 계기가 되었죠. 저는 남편을 아주 많이 미워하며 살았어요. 불행하게도 남편은 결혼 후 생활비를 주기는커녕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면 저와 아이들에게 마구 행패를 부렸어요. 남편이 한번 집을 나가면 몇 달씩 감감무소식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방황하던 남편이 집에 들어왔는데 술에 찌들어 몹쓸 병에 걸려 있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13년간 남편의 병시중을 했어요. 그 당시 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남편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단역이라도 있으면 종일 일 해야만 했어요.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날에도 저는 촬영장에 있었어요. 촬영이 한참 진행 중인데 남편이 죽었다는 기별이 왔어요. 간신히 촬영을 마치고 병원으로 가는데 아는 길인데도 계속 길을 못 찾았어요. 당시 저는 불교 신자였는데 이상하게도 ‘하느님’을 혼자 미친 듯 불렀어요. 그때 저는 하느님께 기도했어요. “나는 당신을 믿지는 않지만 한 번만 도와주세요. 부디 제가 그토록 미워한 남편을 만나 화해할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 우리가 서로 죽일 듯이 욕하고 싸운 일을 서로 용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 저는 차 안에서 계속해서 빌고 또 빌었어요.
▶ 병원에서 남편을 마지막으로 만나셨나요?
제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남편은 이미 숨이 멎어 온몸이 보랏빛으로 변해가고 있었어요. 저는 죽은 남편을 붙들고 흔들며 절규했어요. “하느님, 우리가 화해할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너무하십니다! 너무하십니다!” 그런데 “한 번 더 불러 보아라”하는 소리가 제 귀에 들리는 것 같았어요. 저는 지금도 그때 그 소리가 하느님의 목소리라고 굳게 믿고 있어요. 제가 다시 남편을 붙잡고 부르자 정말 남편이 가늘게 눈을 떠서 힘없이 저를 보았습니다. 그 광경에 사람들이 모두 혼비백산했어요. 나는 남편의 귀에 대고 울면서 이야기했어요. “내가 당신을 용서하니 당신도 나를 용서해주어요. 아이들도 내가 잘 키울 테니 편안하게 눈을 감으세요.” 남편은 말없이 눈물을 흘린 후 세상을 떠났어요. 저는 그때 “아! 정말 하느님이 계시는구나”라고 확신했어요. 남편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고 1986년에 세례를 받았어요. 내가 그동안 평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하느님께서 진정 계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 영화배우로서의 활동을 간단하게 들려주세요.
처음에는 연극무대에서 주연 배우로 활동했어요. 그러다가 아버지의 강권으로 떠밀려서 연애도 한 번 못 해 보고 결혼을 했어요. 그런데 남편은 생활력이 거의 없어 살림은 당연히 어려웠고 사글셋방을 전전해야 했어요. 저는 연기를 접어두고 가장을 대신해 아이들을 키우며 돈을 벌어야 했어요. 영화가 새롭게 주목을 받을 때였던 1960년대 들어서야 다시 연기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주연급은 이미 젊은 배우들이 독점했고 저는 이미 30대에 접어들어 맡을 역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나 어떤 작은 역이든 마다치 않고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어요. 그러나 좋은 역할을 맡을 수는 없었어요. 당시에는 출연 배우들이 스스로 의상을 준비해야 했어요. 좋은 역할이 들어와도 옷이 없어 감독에게 역할을 바꿔 달라고 했어요. 남편의 병시중이 길어지면서 세간도 다 팔아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점심을 거르며 냉수 한 그릇으로 목을 축이고 일하는 날이 늘어났어요. 다른 배우들이 점심을 먹을 시간이면 저는 집에 와서 아픈 남편의 식사를 챙겨 주고 또다시 일하러 나가는 일상을 반복했어요. 차비가 없어 뛰어다닐 때도 많았어요. 그런데도 지금도 이상한데 슬프거나 비관적인 생각이 안 들었어요. 아마도 내가 하느님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자꾸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기도가 나왔어요.

나는 김지영 자매님이 호스피스 병동에 있을 때 염수정 추기경을 모시고 병문안을 갔다. 그때 오랫동안 자매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오며 염 추기경님은 “그분은 죽음을 이미 넘어서서 부활하신 삶을 살고 계시는 분이야”라고 하셨다. 며칠 후 김지영 자매님은 편안하게 선종하셨다. 그분이 뿌린 씨앗 ‘정진석 추기경 선교후원회’가 공개적인 모금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벌써 많은 분이 도움을 주고 계신다. 아주 작은 씨앗 하나가 떨어져 새들이 와서 지저귈 정도로 큰 나무가 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것이라 생각한다. 정 추기경님, 김지영 자매님 두 분의 마음이 그동안 드러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하게 선교를 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교회가 기억하고 있다는 응원이 되었으면 한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