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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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22. 모든 것은 그분의 계획이었다

참 빛 사랑 2021. 12. 19. 20:29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이제 제법 겨울바람이 성글게 부는 겨울이다. 우리 공동체는 산 밑에 자리해서 그런지 마을의 다른 집들에 비해 기온이 4℃ 정도 더 낮다. 그러니 처음 이곳에서 겨울을 맞이하시는 수녀님들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마치 양파껍질 포개듯 옷을 많이 껴입는다. 보일러도 거의 안 틀거나 아주 최소로 켜고 지내니, 수녀님들은 아주 두꺼운 이불을 덮거나 이불 몇 개를 포개어 덮는다. 겨울철에 다른 곳에 가면 우리 공동체 수녀님들 얼굴만 빨갛다. 얼었다가 녹아서 사과처럼 빨개진 것이다.

첫해 겨울을 맞이하면서 나는 농사짓는 이 일이 나에게 적합한지, 아니면 다른 사도직을 청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그때에 나는 한 수녀님과 통화하면서 “저는 저 자신이 너무 작다고 생각해요. 특별한 전망을 가지고 계획할 수 있는 분이 오시면 이곳이 더 성장할 텐데…. 구유에 계신 예수님께 뭘 드리기에는 저 자신이 너무 가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씀드렸었다. 수녀님은 내 이야기를 다 들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녀님, 지금은 수녀님 자신이 구유예요. 이미 모든 것을 예수님께 다 드렸잖아요? 수녀님에게 예수님이 오시고, 수녀님의 가난함 위에 예수님이 눕혀지신 거예요. 수녀님 자신이 구유예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힘들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가난하게 산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자신처럼 알아봐 주시고, ‘구유’라고 봐주시는 것이 황송하고 감사했다. 나는 문득, 부족함을 느끼지만, 묵묵히 살아가려는 나 자신의 숨 안에서 이 땅의 어린 아기로 태어나 새근새근 숨을 쉬고 있는 예수님의 그 숨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니 어렵다고 생각되었던 모든 일은 그저 예수님이 누우실 구유를 가능케 하는 필요한 일들이었다.

최근에 나는 몇몇 가지 일들에 직면하면서 “주님 당신은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라고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 여쭙고 있었다. 그런데 한 선배 수녀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듣게 되었다. “아주 분명한 것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하는 계획은 그때그때 하게 되지요. 하느님께서 아주 오래전부터 수녀님을 위해 계획하신 일이라면 그것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이 말씀으로 나는 눈에 드러난 길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께서 마련하신 어떤 길을 더 구체적으로 의식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내 삶의 중요한 시기마다 누군가가 있었다. 담대함이 따르는 결정을 해야 할 때, 식별 후 한 발자국을 내디딜 때, 나에게 올바른 지지로서 ‘그래도 계속 가라’라고, ‘주님의 계획이었어’라고, ‘네가 바로 주님이 머무실 구유야’라고 이야기해주는 벗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벗이 되게 한다. 이것은 성모님이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신 후 서둘러 엘리사벳에게로 달려가셨을 때, 엘리사벳이 성모님께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이라고 외친 것과 같이 다가온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종교나 국경을 넘어서, 우리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형제들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운명의 주역임을 자각할 수 있도록 관계해야 함을 우리 모두에게 요청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직접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통해서 나와 관계하시고, 나에게 말씀하신다. 사실 우리 삶의 매 순간순간들이 이 계획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 순간순간마다 의식한다면, 너와 나의 모든 일을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노래처럼 서로를 하느님 구원 계획안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그분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