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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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한 글자씩 배울 때마다 간판이 훤하고 마음이 환하다

참 빛 사랑 2021. 6. 27. 20:22

뒤늦게 한글 깨치고 글씨체 만든 경북 칠곡 이종희 할머니

 


“어머니, 우리 식구 중에서 어머니가 제일 똑똑해졌어요.”(아들 이은수)

“부끄럽지. 내 글이 얼마나 미숙하노? 요새 사람들 글 얼마나 예쁘게 잘 쓰노.”(어머니 이종희)



삐뚤빼뚤 정겨운 글씨가 춤추는 마을

경북 칠곡군 왜관읍 금남2리 마을회관. 회관 벽에 그려진 꽃들 사이사이에 삐뚤빼뚤한 글씨들이 꽃잎을 따라 춤춘다.

‘꽃피는 금남리’, ‘농가(나눠) 먹어야지’, ‘그만하마 잘 햇다’, ‘먼산에 꽃이 피듯 봄이 오니까 마음이 슬렁하지’….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는 길옆에 놓인 쓰레기 분리수거장에도 삐뚤빼뚤한 정겨운 글씨가 새겨졌다. ‘재활용 동네마당’을 시작으로 ‘플라스틱’, ‘잡병’, ‘종이류’ 등 재활용 분류 안내판이 모두 이종희(79, 크리스타, 대구대교구 가실본당) 할머니의 글씨체다. 재활용을 뜻하는 영문표기 ‘RECYCLE’도 할머니 글씨다.

1933년 왜관 달오동네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일흔 생을 넘게 살면서 한글을 깨칠 기회를 놓쳤다. 학교에 다닌 기억은 일제 강점기 시절이 전부다.

“그때는 학교에 가서 조선말을 하면 안 됐어.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웠는데, 학교 4년 다니니까 해방이 돼서 그 후로는 학교에 못 갔지. 아(아이) 여섯을 낳고 어찌 학교를 다녀? 지금도 툭 하면 일본어가 먼저 튀어나와.”

4남 2녀를 둔 할머니는 한글을 읽지 못해 생활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말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왔다.

“아이고, 그때는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나 몰라. 아 여섯 밥 해먹여야지, 어떻게 공부를 해…. 촌에서 먹을 거 입힐 것도 없재. 배부르도록 밥도 못 먹였지.”

할아버지와 오이, 토마토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할머니는 버튼 하나로 물이 나오고, 불이 나오는 이 시대를 산다는 것은 호강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 이종희 할머니가 한글을 연습한 공책.

 




칠곡늘배움학교에서 깨친 한글

할머니가 한글 공부를 시작한 건 한글을 배워보라는 손주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할머니는 2008년부터 10년 넘게 마을회관에 있는 칠곡늘배움학교(매봉서당)를 다니며 한글을 깨쳤다. 한 글자씩 배울 때마다 간판이 훤해졌고, 마음이 환해졌다.

“배워서 지식이 넓어지니까 마음이 넓어지는 거 같아. 이제 배워서 뭐하겠느냐마는…(웃음).”



칠곡군은 한글교육을 받은 할머니들이 쓴 시를 묶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3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1집 「시가 뭐고?」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문법도 틀리고, 문맥도 어색하지만 솔직하고 투박한 할머니들의 순수한 감성이 세상의 관심을 모았다.

1집 「시가 뭐고?」에는 이종희 할머니의 시도 실렸다.



쇠비름



둘째 딸이 쇠비름 무침이 먹고 싶답니다

온갖 좋은 것 다 먹고 살았을 텐데

딸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어릴 때 나물이 귀해

밭에 잡초처럼 자라 쇠비름으로

나물을 무쳐서 먹었습니다

그것이 먹고 싶다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짠합니다

이제 내 딸도 커서



추억을 더듬어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딸에게 보냅니다.

▲ 뒤늦게 한글을 깨친 이종희 할머니의 글씨는 글꼴로 개발돼, 마을회관 앞 재활용 분리수거장에도 새겨졌다.

 




개성 강한 이종희체의 탄생

칠곡군은 시집에 이어 지난해 400여 명 할머니 시인 중 개성이 강한 글씨체를 선정했다. 글씨체 원작자 이름을 넣어 칠곡할매 권안자체·이원순체·추유을체·김영분체·이종희체 등 5가지 글꼴로 제작해 무료로 배포했다. 이종희 할머니는 이 다섯 할머니 중 한 명이다. 최근 한글과컴퓨터는 이 칠곡 할머니들의 손글씨를 디지털로 전환한 ‘칠곡할매글꼴’을 공식 출시했다. 한컴오피스에서 칠곡할매글꼴을 검색해 다운로드하면, 이 할머니들의 글씨체로 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 또 국립한글박물관은 최근 칠곡할매글꼴로 제작한 표구와 글꼴이 담긴 USB를 유물로 지정하고 영구 보전하기로 했다.

코로나19는 매봉서당도 덮쳤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있던 수업은 멈췄고, 대신 한글 교사들이 할머니들의 집을 일일이 방문했다. 서체를 제작하는 과정은 할머니들에게 험난했다. 네임펜으로 한글의 자모음을 2000여 장이 넘는 종이에 가득 써야 했다. 받침이 있는 글자와 없는 글자를 구분해서 여러 번 연습해야 했다. 특수문자와 영어는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네임펜 7개를 썼다.

“선생님이 오셔서 숙제를 주고 가면 되게 오래 걸렸어. 3∼4달 걸려서 연습해서 쓰고. 꼬부랑 영어는 그야말로 그림으로 생각하고 그렸지.”

한글 교사와 아들, 며느리, 손주 등 가족은 응원군이 되어 줬다. 칭찬과 격려는 할머니에게 글을 쓰게 하는 힘이 됐다.

▲ 칠곡할매글꼴의 주인공 중 한명인 이종희 할머니와 아들 이은수, 며느리 김성호씨가 함께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 벽화에 새겨진 꽃피는 금남리는 이종희 할머니 글씨체다.

 




배움으로 더욱 꽃피는 행복

금남2리 이장이기도 한 아들 이은수(엑베르트)씨는 “어머니가 한글을 배우면서 재미있어하시고, 말동무들이 모여 이야기꽃도 피우면서 더 행복해지셨다”면서 “마을축제에서 직접 쓰신 시로 낭독도 하면서 자존감도 높아지셨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 할머니는 틈만 나면 본인이 한글을 연습한 공책을 쓰레기통에 갖다 버린다. 아들, 며느리는 다시 주워오기 바쁘다.

“늘 소중하게 여기시면서도 흔적이 남으면 자식들한테 누가 될까 봐 버리시는 거 같아요.”(아들 이은수씨)

할머니는 지난 5월 7일 제17회 군민의 날을 맞아 백선기(미카엘) 칠곡군수에게 자랑스러운 군민상을 받았다. 칠곡할매 글꼴 제작에 참여해 칠곡군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이바지했고, 인문학 도시 칠곡군의 브랜드 가치 향상에 기여한 공으로 주어진 상이었다. 상패는 이종희체로 제작됐다.

코로나 사태 전까지 주일 미사는 빠지지 않았던 이 할머니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마당 한 바퀴를 돌고, 해가 뜨면 마음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 한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배우는 건 좋은 일”이라며 “젊을 때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모르는 것은 서로서로 가르쳐 주면 된다”고도 했다.

할머니는 인터뷰 내내 “이 못난 할매를 와 이리 찍노” 하며, “오늘 죽을 둥, 내일 죽을 둥 모르는 사람을 그냥 대충대충 하라”고 만류했다. 그러면서 “나랑 같이 30년 넘게 살아준 며느리와 아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아들 이은수씨는 마을회관과 재활용 동네마당에 가면 어머니 글씨체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어머니의 글씨를 입은 마을은 마음의 고향이 됐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