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43) 독서, 들어갈수록 자유로운 감옥. “10년 이상 감옥 생활을 버티게 한 건 책을 읽는 습관”이었다고 고백한 어느 칼럼니스트의 말이 생각난다. 감옥에는 자유가 제한돼 있다. 차갑고 어둡고 폐쇄된 공간이다. 하지만 감옥에서 책을 읽으면 수많은 인물과 자유로운 세상을 만난다. 책을 읽을 때 우리의 뇌는 직접 책 속 세상.. 살다보면 2018.12.11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42)과거를 업고 다니는 사람. 두 수도승이 비가 온 후 진흙탕이 된 시골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길을 건너려는데 한 여인이 진흙탕 길을 건너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그러자 한 수도승이 그 여인을 등에 업고 길 반대편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하며 걸었다. 다른 한 수도승이 참다못해 말을 했다. .. 살다보면 2018.12.04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41)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말 세 가지. 오래전 알았던 B씨를 우연히 만났다.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는데 돌연 그에 대한 불편한 기억이 떠올랐다. 순간 기분이 나빠지면서 ‘아직도 그때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뱉어낸 말이 맴돌았다. “다른 사람들이….” 평.. 살다보면 2018.11.27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40) 현재만이 살아 있는 순간임을 믿는다면. 동료 수녀의 언니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왔다. 특별한 지병이 없었는데 잠을 자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했다. 다음 날을 생각하며 들었던 잠이 영원한 죽음의 길로 바뀌었으니 가족들의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장례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의 경치가 유난.. 살다보면 2018.11.21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39) 오늘로 충분한 삶, 잘 죽는 삶. “무슨 일이 있어요?” 안색도 좋지 않고 말도 적어진 B씨는 퀭한 눈에 슬픔이 가득 차 보였다. “일은요. 그냥 컨디션이 안 좋아서…”라며 힘겹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B씨는 폐에 이상이 있다는 통보를 받고 재검진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몇날 며칠을.. 살다보면 2018.11.19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38)겸손한 사람이 되려면. 어떤 문제가 생기면서 L씨가 구설수에 올랐다. “이렇게 식별력이 없는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기면 안 되죠.” “센스가 하나도 없다니까요.” “게다가 느리기까지 하다고요.” 계속 듣고만 있던 S씨가 입을 열었다. “빠른 사람 옆에 있으니 느리게 보이는 거지요.” 예기치 않은 S씨의 반.. 살다보면 2018.11.05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37)왜 걸으면서 스마트폰을 볼까?. 한 젊은이가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어쩌다 다쳤느냐고 물었다. “그게, 그러니까 스마트폰 보고 걷다가…” 하며 말을 얼버무린다. ‘굳이 더 듣지 않아도 아시잖아요?’ 하는 듯 멋쩍게 웃는다. 나도 웃었다. 부상을 당한 사람을 당연히 위로해야 마땅하나 젊은이도 나도 그냥 웃고 말.. 살다보면 2018.10.28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36) 기도하는 마음 그대로 이웃에게 다가가기 . 아무 생각 없이 버스를 타고 가는데 앞에 앉은 할머니가 열심히 묵주 알을 돌리고 있었다. 보기가 참 좋았다. 나도 슬그머니 묵주를 꺼내 들었다. 묵주 알을 잡으니 마음도 평온해졌다. 할머니와 나는 열심히 묵주기도를 하면서 그렇게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할머니의 표정이 굳.. 살다보면 2018.10.18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34)다름, 그 자리가 사랑이 시작되는 지점. 추석이 다가오면 우리 가족은 돌아가신 어머니 생신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던 아픔이 떠오른다. 어머니께선 “바쁜데 뭘 오냐. 곧 추석인데…”라며, 가족이 모이는 걸 극구 말리셨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빠는 불효를 자책하며 “오늘은 돌아가신 어머니 생신입니다. 생전에 생신상 .. 살다보면 2018.10.08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33)조금은 둔해도 괜찮아. 불편한 감정을 비우려고 호흡을 크게 들이켰다. 천천히 성경을 펼쳤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루카 6,26) 깊숙이 감추어 두었던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마음이 출렁였다. 너무도 사소해서 아닌 척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소문이 나와 관련된 일이라 신경 .. 살다보면 2018.09.24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32)때로는 한 발 물러서서 세상을 보자. 가끔 눈빛만 주고받던 S수녀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평온하고 친절한 그의 모습이 매우 좋았고 존경스러웠다. 그러다 함께 살 기회가 생겼다. 기대가 큰 탓이었을까. 막상 함께 살다 보니 불편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매몰차게 거절할 때나 웃으면.. 살다보면 2018.09.17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31)사랑보다 필요를 원하는가?. 7살 여자아이가 낡고 꾀죄죄한 인형을 소중하게 안고 다녔다. 가만히 보니 코도 떨어져 나가고 옷도 너절해서 엉덩이가 다 보일 정도였다. 아이에게 “인형이 나이가 많아 보이네”라고 하자 아이는 겁먹은 표정으로 인형을 등 뒤로 감추며 단호히 말했다. “1살 때부터 내 친구라고요!”.. 살다보면 2018.09.10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30)마음은 마음에 이야기한다. 영성 공부를 하기 위해 국제 공동체인 미국 버클리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다. 그때 만난 미국인 폴은 아직도 인상 깊게 떠오른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많은 사람이 나에게 폴을 이렇게 소개했다. “폴은 책임감이 무척 강해요.” “성실하기 이를 데 없고요.” “머리도 비상하고 검소해.. 살다보면 2018.09.03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29)내 것 아닌데 자랑할 수 있을까. J가 한껏 멋을 내고 왔다. 평소 옷차림과 달라 나도 모르게 한 번 더 눈길이 갔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J는 약간 흥분된 어조로 “오늘은 기죽으면 안 되는 모임에 나간다”고 말한다. 게다가 “오늘 같은 날은 명품을 걸쳐줘야 한다”며 가방까지 흔들어 보였다. 내 눈에.. 살다보면 2018.08.28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28)가진 것에 감사하기. 오랜만에 L이 찾아왔다. 남편의 실직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여느 어머니가 그러하듯 자녀 교육에 욕심이 많아 보내는 학원도 많다. 그런데 점점 학원비 내기가 어려워지면서 고민이 많아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청소년 방과 후 학교’를 .. 살다보면 2018.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