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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 나의 기업](23) 박재환 도미니코 사비오 (주)종합건축사사무소 도성건축 대표

참 빛 사랑 2016. 12. 11. 12:44

하느님 집 짓기 40년, 구도자의 길을 걷다

▲ 서울 잠실성당을 설계한 이후 해마다 하나 이상의 성당을 설계해 온 박재환 대표는

성당을 설계할 때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구체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성찰이 먼저 필요하다고 말한다.



▲ 배론성지 대성당 내부.


▲ 서울대교구 잠실성당.




40년 가까이 40여 개 성당을 설계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성당을 설계하는 건축가는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순례자’라는 사실이다. (주)종합건축사사무소 도성건축의 박재환(도미니코 사비오, 75, 인천교구 통진본당) 대표이사의 삶이 그러하다.



박재환 대표가 성당 설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0년대 후반, 서울 잠실성당 설계를 맡으면서다. 본당 신자 중에 건축가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주임 신부(고 이병문 신부)가 불러서 직접 설계를 의뢰했다.

“단순히 전통 양식을 답습하거나 어설프게 모방하지 말고 시대상을 드러내는 기능과 조형성을 갖춘 성당이었으면 좋겠다는 게 신부님의 특별한 당부였습니다.”

건축 분야에서 10여 년 경력을 쌓았고 건축연구소 대표로 활동한 지 5년이 넘었지만, 성당 설계는 처음이어서 박 대표는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나름의 사명감과 함께 기대감도 있었다. 주변 환경을 고려해서 성당의 측면을 정면처럼 보이게 하고, 신자석에서 제대로 향하는 상승감을 강조했다.

처음으로 설계한 성당이 몇몇 사제들에게서 호평을 받으면서 박 대표의 성당 설계 인연은 계속됐다. 이후 지금까지 박 대표가 설계한 성당은 40여 개소에 이른다. 한강, 천호동, 이문동, 옥수동 등 서울대교구의 성당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그가 설계한 성당들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배론성지 대성당, 청주교구청 청사와 사제 숙소, 지난 5월 말에 축복식을 한 안동교구청사도 박 대표의 작품이다. 그의 설계로 리모델링한 서울 송파동성당은 서울시 건축상 본상과 가톨릭미술상 건축 부문 본상 수상작이 됐다.

박 대표는 강원도 삼척 도계 출신이지만 어려서 인천으로 이사와 대학까지 인천에서 마쳤다. 교우 집안은 아니었지만, 가톨릭에 귀의한 누나들의 영향으로 인하대 2학년 때 세례를 받았다.

인하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던 1966년에 안영배건축연구소에서 입사, 건축 분야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건축사 면허 취득을 계기로 1973년 안일건축연구소를 등록하고 1980년 ‘도성건축연구소’로 상호를 바꿨으며, 2000년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이름은 다르지만 50년 동안 한 우물을 판 ‘장인’ 건축사인 셈이다.

웨스턴 조선 비치 호텔 등 수많은 건물을 설계했고 10년 전부터는 해외까지 진출, 수십 개 건축물을 만들어냈지만 40여 곳에 이르는 성당을 설계했다는 박 대표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신자로서 하느님의 집을 하나만 설계하는 것도 큰 영광일 것입니다. 저는 첫 성당을 설계한 이후 1년에 하나 이상의 성당을 설계한 셈이니 얼마나 더한 영광이며 보람이겠습니까. 사람이 감히 하느님의 집을 짓는다고 생각하면 감당키 어려운 짐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매번 부족함과 한계를 느끼면서도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이 일이야말로 제가 짊어져야 할 소명이 아닐까 하며 살아왔습니다.”

성당 설계와 인연을 맺으면서 보람과 함께 안타까운 일, 답답하고 가슴 아픈 일도 적지 않았다. 현상 설계에 당선됐지만, 해당 본당 측에서 아무런 설명이나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다른 건축가와 작업을 했을 때, 설계 계약을 하고 설계를 진행하다가 의견이 맞지 않아 중단되는 경우, 설계대로 공사를 시작하다가 중간에 설계자와 협의 없이 공사를 변경하는 일이 생길 때는 화가 났고, 때로는 서글프기도 했다.

“시골 본당의 경우 성당 신축 설계를 해드렸는데 돈이 없어서 설계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돈이 없다면서 설계비 대신 산나물을 잔뜩 보내주더군요. 시간과 경비를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지만, 돈이 없어 나물을 보내주신 그곳 신부님 마음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면 오히려 위안이 되더군요.”

그래도 감사할 일이 훨씬 더 많았다. 그중에서도 박 대표는 많은 사제, 수도자들을 알게 된 것이 무엇보다 큰 축복이고 은혜라고 여긴다. 대부분이 성당이나 교회 관련 건물 설계로 인연을 맺은 이들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업무적인 만남 이상으로 제 삶에 영성적인 가르침을 주신 분들”로 되새기고 있다.

박 대표는 건축사로 평생을 살아오는 데에 도움을 받은 또 한 분으로 안영배(유스티노, 84))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를 꼽는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부터 지금까지 사실상 건축가의 길을 함께해 오고 있다는 안 교수에 대해 박 대표는 “때로는 스승으로 때로는 협동 설계자로서 모든 성당의 계획에서 마무리까지 최선의 방안을 찾기 위해 진지한 구도자의 자세로 설계해 온 분”이라고 소개한다.

이런 만남과 인연은 박 대표에게 성당 설계만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삶을 제대로 설계하고 설계한 대로 짓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또 하나의 자극이 되고 있다. 자녀들의 학교 생활을 계기로 신자들과 교류하고 본당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게 됐다는 박 대표는 본당 총회장을 비롯해 예비신자 교리교사 등 여러 분야에서 봉사했으며, 신앙의 지식과 이해를 더 넓히기 위해 성서 못자리와 교리신학원을 통해 성경과 신학 공부도 했다.

신앙의 지식과 체험은 또한 본업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돼 성당 설계에도 반영되고 있다. 박 대표는 “성당 설계에 앞서서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성당을 설계할 때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지역 사회에 열린 교회

△삶의 근원인 빛의 도입을 주제로 하는 성스러운 내부 공간과 비유를 통한 상징성의 표현

△화려한 외형보다는 절제되고 소박한 균형미를 통한 조형성 추구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다.

그래서일까. “성당 설계자는 보이지 않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순례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박 대표의 말에는 신앙인 건축가로서 삶의 연륜이 함께 실려 있는 것 같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