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던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 만민에게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인류의 구세주이심이 공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5~6세기경부터 몇몇 지역 교회는 동방 박사들의 이름을 카스퍼(Casper)·멜키오르(Melchior)·발타사르(Balthasar)라고 전합니다. 동방의 박사는 세상 모든 나라를 상징하는 인물이라 볼 수 있고, 그들이 가져온 예물도 신학적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담습니다. 황금은 왕에 대한 고귀한 예물로 예수님께서 세상의 유일한 왕이심을 나타내는 것이고, 유향은 성전에서 제사를 올릴 때 하느님께 경배 드리며 태우던 향료로 기도를 상징하여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고백합니다. 몰약은 장례 때 사용하여 죽음을 상징하며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수난과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심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만민의 왕이시며, 메시아이시고,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구세주이심을 드러냅니다.
오늘 복음에 의하면 동방 박사들이 별을 따라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헤로데는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라고 부탁합니다.
헤로데의 이 말이 진실일까요? 아닙니다. 거짓입니다. 헤로데는 유다인에게 새로운 왕이 탄생하면 자신의 왕권이 위협받으리라는 두려움에 주님의 탄생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헤로데의 의도는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났다는 아기를 없애려는 데 있음이 오늘 복음 이후(마태 2,13‐23)의 그의 잔인한 행위를 통해 드러납니다. 헤로데는 아기 예수님을 결코 만나지 못합니다. 거짓으로는 선하신 하느님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과거에 병원에서 원목 사제로 지냈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 병실에 환자 방문을 다니면 고통스러워하는 교우들이 많이 기다립니다.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고통 앞에 힘들어하는 가족들과도 함께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고통 앞에 주위 사람들이 해주는 위로에는 거짓말이 많습니다. 나을 것이라고, 괜찮아질 것이라고,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합니다. 심지어는 임종 직전까지도 거짓 위로를 합니다. 결국엔 서로 사랑을 정리하고 하느님 자비에 의탁하며 마지막을 잘 준비할 기회도 못 갖는 경우가 생깁니다.
저는 언제나 교우분들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선의의 거짓말도 거짓입니다. 거짓은 결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밝게 만들 수 없습니다. 신앙인은 늘 진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물론 상대가 아직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에는 잠시 침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진리 안에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그리스도교 신앙인은 늘 진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내면서 예수님만이 세상의 참된 주인이시요 임금이심을 기억하며, 그분 뜻에 따라 세상이 다스려지고, 각자 자리에서 주님 뜻이 실현되도록 진실로써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봉헌할 예물은 사랑의 실천인 황금과 기도의 향기로운 유향과 고통 가운데에서도 참고 치유받는 인내의 몰약입니다. 우리 모두 거짓 없이 진실과 참됨으로 주님께 경배드리러 나아갑시다.
이계철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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