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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한일 그리스도인 탈핵 평화를 외치다

참 빛 사랑 2024. 10. 23. 20:36
 
 
제10차 한일 탈핵평화 순례단이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인근에서 ‘탈핵’을 외치고 있다.

순례단 40여 명 월성·고리 원전 찾아
현지 주민·활동가들과 이야기 나눠
전력생산 대안 공유·지속적 연대 다짐




지난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핵발전소(원전) 방사능 누출사고를 계기로 시작된 ‘한일탈핵평화순례·간담회’가 올해로 10회째를 맞았다. 매년 양국에서 번갈아 열리는 순례는 올해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시작해 경주 월성·부산 고리 원전 밀집지역으로 이동하며 진행됐다.

10~13일 열린 이번 순례에는 40여 명이 참여했다. 한국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박현동(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 아빠스와 종교환경회의 상임대표 양기석(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장) 신부, 순례 집행위원으로 생태환경위 박유미(수산나) 위원 등이 참여했다. 일본에선 일본 주교회의 정의평화협의회 탈핵소위원장 미츠노부 이치로(예수회) 신부와 일본 예수회 소속 나카이 준 신부, 일본 원자력자료정보실 연구원 다카노 사토시씨 등이 함께했다.

10회째를 맞이한 한일탈핵평화순례에 참여해 직접 현장을 찾아 원자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순례단의 활동 소회와 앞으로의 방향을 들어봤다.



“창살 없는 감옥”

“월성 지역이 넓어요. 동서남북 흩어진 주민들 40명을 대상으로 방사능 검출 조사를 해봤는데도 검사자 모두에게서 몸속에 방사능이 있어요.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값싸게 전기를 공급한다면 좋겠죠. 그런데 그러는 동안 희생되는 사람이 있어요. 여기는 ‘창살 없는 감옥’입니다. 이주밖에 답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이주를 외쳐온 지 10년 넘는 동안 정치인들은 우리의 얘기를 들어주지도 않아요.”(월성원전 이주대책위원회 황분희 부위원장)

순례단과 함께 찾은 경북 경주 월성과 부산 기장군 고리 해안가 한적한 마을. 바닷가에선 해안을 따라 캠핑하는 사람들과 모래사장 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이들이 보였다. 그곳에 자리잡은 우람한 원자력발전소는 여유로운 해안가의 모습과 대조됐다. 거리를 조금만 거닐면 원전 인근을 따라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 즐비했다.

월성원전 인근에선 10년간 천막 농성을 펼치다 철거 위기에 처한 월성이주대책위원회를 만나는 자리가 마련됐다. 농성장 천막은 지역 주민들의 삶이 무너져 내린 광경이었다. 지역 토박이들이 10년간 외쳐온 자리는 비닐하우스 속 퀴퀴한 냄새로 뒤덮였다. 농성장 천막은 파란빛이 바랬다. 월성원전 체험관 앞에는 화단이 조성됐는데, 농성장 천막 앞이었다. 주민들의 집회를 막고자 했다는 게 이주대책위의 설명이다.

이주대책위와 동행한 활동가도 정치인들이 자본의 논리만 앞세운다고 일갈했다.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사무국장은 “원전의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데도 약 4000억 원에 달하는 지방교부금만 바라고 원전 수명을 연장하려 한다”며 “정치인들이 주민들을 만나주지도 않으면서 현수막을 강제철거하는 등 탄압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분희 부위원장도 “대도시의 일상을 위해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경주 지역 주민 중 3000여 명은 월성원전 파견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 주민 중 피폭돼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이들도 있다. 이 사무국장은 “주민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해보니 월성 1호기 수명 연장 당시 원자로 교체 작업 때 고용된 일용직 근로자 중 피폭돼 암 판정을 받은 분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오세희 의원이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원전 시설 출입 근로자 중 하청업체 소속 직원이 받는 방사선 피폭량은 한수원 소속 직원보다 최소 4배에서 최대 27배까지 높았다.
월성이주대책위원회 황분희 부위원장이 순례단에게 10년 동안의 소회를 전하고 있다.

월성원전 체험관 앞에 화단이 조성돼 있다. 환경단체와 이주대책위 측은 한수원이 이들의 농성을 막고자 설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력 발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

순례 중 열린 간담회에선 현재 한일 양국의 원전 문제를 짚는 자리도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교계 생태환경 전문가들은 원전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로 원자력 산업이 정부 및 기업 등 소수의 이익과 관련 있다고 입을 모았다.

양기석(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장) 신부는 “핵발전소는 대도시로부터 먼 곳에 위치하며 그들을 위해 지역이 희생당하는 구조”라며 “핵 산업을 새롭게 확장하려는 이들은 전문가 영역이라는 논리로 시민들의 참여와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 신부는 “현재의 핵 산업은 국가 이익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 힘없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희생을 강요한다”면서 "사회교리에 근거해보면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우리에게 바라시는 세상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총 26기로 총 전력 생산량 대비 29%를 공급한다. 일본은 2018년까지 42기가 운영됐다. 하지만 전력 생산량에 비해 방사능 누출 피해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1978년부터 2021년까지 우리나라 원전 사고 및 고장 건수는 755건에 달한다.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의원이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한수원이 운용 중인 원전 27기 중 14기가 원전 고장 등의 사유로 가동을 중단했다. 수선유지비는 매년 1조 원 이상이다. 핵폐기물 처리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에서 녹아내린 콘크리트 잔해는 800톤에 달하는데 방사능 피해가 우려돼 진입조차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츠노부 이치로 신부는 강연에서 핵 산업 유지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츠노부 신부는 “표면적인 이유로는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 전력 생산 비율을 전체 대비 20~22%까지 올리려는 것”이라면서도 “역사적으로 보면 국가와 관료·재벌·군이 하나가 된 ‘원자력 마피아’가 독점 산업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안적 목소리

최근 인공지능(AI) 혁명으로 전력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원자력 산업이 가속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력 생산의 대안은 있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국가 에너지 계획에 따라 세계 각국은 탄소 감축 목표와 이행 방안을 제출해야 한다. 이미 유럽연합 전체의 재생에너지 생산 비율은 올해 들어 50%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국가의 생산성을 위해서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기석 신부는 “태양광 발전은 낮에만 생산하기 때문에 현재 요구되는 게 대용량 저장장치(ESS)의 효율성과 안전성 문제”라며 “이런 장치들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기술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태양광 패널의 가격도 낮아지고 보급이 늘어나고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도시 주택과 아파트 주차장 등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할 여력이 충분하다”며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럽 국가의 선행모델을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부산 성분도 명상의집에서 열린 강연에서 다카노 사토시 연구원은 “독일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와 관련해 국가시민사회이사회(NBG)를 두고 있다”며 “조사 초기 단계부터 시민에게 참여와 독자적 권한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민들은 정부와 사업자 선정에 참여하고 연방의회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순례에 참가한 한일 양국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잘 가꿔나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되새겼다. 이에 원전 및 생태환경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연대하기로 다짐했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