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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거듭난 반세기… “밖으로 나가라”

참 빛 사랑 2024. 10. 23. 20:32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최초의 선교사’이신 예수 그리스도 말씀을 따라 복음화가 필요한 곳은 세계 어디든지 기쁘게 찾아가 전교했다. 그렇게 반 세기 동안 9개국 13개 교구에서 현지인들과 ‘가족’이 돼 동고동락해왔다. 1975년 2월 26일 한국 가톨릭교회가 최초로 설립한 ‘해외 선교 전문 공동체’, 한국외방선교회 이야기다.

한국외방선교회 발족은 곧 ‘선교사들의 피땀’으로 성장한 한국 교회가 해외 선교를 시작한 순간이었다. 200년 만에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거듭난 전환점이다. 전교 주일(20일)을 맞아 내년 설립 50주년을 맞는 한국외방선교회와 한국 교회 해외 선교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본다.
 
1987년 6월 한국외방선교회 정두영 신부 등 2명을 파푸아뉴기니 마당대교구로 파견하는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한국외방선교회 제공

감사와 보은으로 탄생한 한국외방선교회

1975년 당시 한국 교회는 해외로 선교사를 파견하기엔 ‘작은 교회’였다. 총 신자 수는 105만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3%에 불과했다.(2023년 12월 31일 현재 각각 597만 명과 11.3%) 그런데도 한국외방선교회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감사’와 ‘보은’을 강조한 설립자의 굳은 의지가 있었다. 초대 부산교구장을 지낸 고 최재선(요한 사도, 1912~2008) 주교다.

1973년 부산교구장 사직과 동시에 교황청 직속 성직자 포교연맹(전교연맹) 한국지부장을 맡은 최 주교. 당시 세계 교회는 성소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한국 교회의 성장과 잠재력을 본 그는 “연대적 차원에서 이젠 우리가 도움을 베풀 차례”라고 역설했다. 주님 그리고 이 땅에 목숨 걸고 복음을 전파한 선교사들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서다.

“도움이란 여력으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닐진대 아직은 우리 힘에 벅찬 외방선교회를 시도해 보는 것은 한국 가톨릭의 자만도 허영도 아니며 오직 하느님께 받은 막중한 은혜에 대한 응답이요 답례입니다.”(최재선 주교, 「한국외방선교회 취지 설명」)

아시아에서 교세가 가장 큰 필리핀 교회도 불과 10년 전인 1965년에야 외방선교회를 설립할 수 있었다. 한국보다 가톨릭 역사가 260년이나 더 길고 인구 80%가 가톨릭 신자였는데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외방선교회 탄생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교회사적으로도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2014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맞아 파푸아뉴기니 마당대교구 왈륨본당 신자들이 십자가를 들고 공소를 순례하고 있다. 한국외방선교회 제공
2013년 필리핀 바기오교구 레판토공소 신자들이 수호성인 기념일 미사 후 잔치를 즐기고 있다.

한국 교회 200년 만에 첫 선교사 파견

이어 1979년 선교에 필요한 모든 재정적 지원을 하는 한국외방선교회 후원회가 조직됐다. 그리고 1981년 설립 6년 만에 첫 사제가 탄생했다. 김동기(훗날 대구대교구로 이적) 신부다. 한국외방선교회는 그해 11월 김 신부와 준회원(교구 협력사제) 3명을 파푸아뉴기니 마당대교구로 파견했다. 이 4명이 바로 한국 교회 200년 사상 첫 한국인 선교사들이다.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과 함께 파리외방전교회 출신 브뤼기에르 주교가 초대 대목구장에 임명된 지 150년 만의 일이었다.

남태평양에 위치한 파푸아뉴기니는 1975년 호주로부터 독립해 한국외방선교회와 동갑내기인 신생국가. 문명의 이기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태초의 땅이었다. 첫 선교지로 환경이 열악해 선교 사제가 절실한 곳을 바라던 한국외방선교회엔 적격이었다.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파견 미사를 주례한 김수환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이웃을 위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봉헌할 만큼 성장한 오늘의 모습이야말로 온 세계와 인류를 위해 자신을 남김없이 바치는 성숙한 그리스도교회의 모습입니다.”(김수환 추기경, 1981년 11월 8일 한국외방선교회 제1차 선교사 파견 미사 강론 중)
 


이어 6년 뒤인 1987년 6월, 한국 교회 두 번째 선교 사제가 마당대교구에 파견됐다. 현재 한국외방선교회 총장인 정두영 신부 등 2명이었다. 지난 50년간 한국외방선교회 선교지는 오세아니아와 아시아를 넘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까지 확대됐다. 현재 9개국 13개 교구에 선교사가 파견돼 있다. 회원 수는 모두 86명(평신도 선교사 2명 포함)이다.

한국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은 현지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익혀 주민들과 ‘가족’이 되는 것을 중요시한다. 이러한 친교를 바탕으로 교육·사회사목 등 다채로운 활동을 펼친다. 한센인 등 특히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우물 파기와 더불어 무료 직업 기술학교와 진료소 등을 세워 자립을 돕는다. 아울러 본당 사목과 현지인 사제 육성에도 힘쓰며 세상의 복음화를 실천하고 있다.
 
2019년 캄보디아 프놈펜교구에서 선교하는 윤대호 신부가 썸롱톰본당 성가대, 캐나다 토론토 한인본당에서 온 자원봉사자와 성가 연습 중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윤일 신부가 파푸아뉴기니 멘디교구 신자들과 성 금요일을 맞아 십자가의 길 기도를 시작하기 전 사진을 찍고 있다.


현실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

한국외방선교회 설립으로부터 50년이 지난 현재. 한국 교회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해 있다. 인적 자원, 즉 성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날로 심해지는 저출산과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 깔려있다. 한국외방선교회 역시 성소자와 후원자 급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해 동안 선교사들 활동에 드는 비용은 작은 교구 예산 이상. 비슷한 처지였던 캐나다 교회 스카보로외방선교회는 결국 2018년 100년 역사의 막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초창기 한국 교회는 가혹한 박해와 사제가 없는 상황에서도 굳건한 믿음과 용기로 신앙을 지켜냈다. 선교 반세기 한국외방선교회는 시대의 도전 앞에 물러섬 없이,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실천으로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다짐했다.

첫 방안은 성소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협력 사제 프로그램’ 활성화다. 한국 교회 모든 사제(교구·수도회)들이 계약을 통해 한시적으로 한국외방선교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제도다. 계약이 끝나면 소속 교구나 수도회로 복귀해 사제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한국외방선교회 문턱을 낮춰 보다 편하게 선교사제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목적이다. 현재 서울·부산교구 소속 사제 5명이 협력사제로 활동하며 낮은 곳에서 기쁜 말씀을 전하고 있다.

두 번째 방안은 ‘평신도 선교사 양성’이다. 사회 다양한 자리에서 활동해온 평신도들은 귀한 인적 자원들이다. 선교지에서 고유한 경험과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외방선교회는 성소 부족과 선교 확대를 위해 평신도 선교사를 발굴, 양성할 방침이다. 아울러 이들이 현장에서 원활하게 전교할 수 있도록 지원에 힘쓸 계획이다. 지금도 평신도 선교사들은 사제 회원과 동등한 지원을 받고 있다. 현재 한국외방선교회 소속 평신도 선교사는 2명. 김상집(라파엘)·김은경(도미니카) 부부로, 캄보디아 프놈펜 코미소 직업기술학교에서 제과제빵을 가르치고 있다.
 
10월 4일 한국외방선교회 본부에서 열린 설립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총장 정두영 신부(가운데)를 비롯한 선교사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외방선교회 설립 50주년 행사

한국외방선교회는 2025년 설립 50주년을 앞두고 ‘밖으로 나가라’를 모토로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 직후 사제들에게 당부한 말로,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한 세상 밖으로 나가라”는 의미다.

첫 시작은 10월 19일 주교회의 해외선교·교포사목위원회와 협력해 여는 ‘한국외방선교회 설립 50주년 및 해외 선교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이다. 선교회의 50년 활동사 등을 돌아보는 자리다. 장소는 가톨릭대 진리관과 한국외방선교회 본부. ‘윤대호 신부와 친구들(Fr.Daniel & Friends)’의 흥겨운 노래 공연도 펼쳐진다.

2025년 1월은 한국외방선교회 설립 50주년 기념 책자가 배부된다. 이어 2월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과 함께 제작한 해외선교 50주년 특집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그리고 설립 50주년 당일인 2월 26일은 명동대성당에서 기념 미사가 거행된다. 10월은 한국 교회 첫 성모성지인 수원교구 남양성모성지에서 ‘특별한 손님’을 초청해 감사 미사와 함께 풍성한 음악회를 연다. 한국외방선교회 후원회원과 파견지(9개국 12개 교구) 주교들이다. 지속적인 기도와 사랑·지원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도전의식과 친화력으로 세상 복음화에 헌신”

[한국외방선교회 총장 정두영 신부 인터뷰]

“선교사들의 모범이신 주님의 가르침이 반세기를 버틴 원동력이었죠. 저희를 응원해주시고 영적으로 동행해주신 한국 교회 모든 구성원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외방선교회가 50년 뒤에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순명하며 살아가는 선교 공동체로 남아있기를 기도합니다.”

한국외방선교회 총장 정두영 신부는 “‘보은’과 ‘감사’가 창립 카리스마”라며 “정신과 영성 등 많은 걸 몸소 보여주고 가르쳐주신 선배 선교사들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또 50년 동안 계속 선교를 이어가는 것이 보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파리외방전교회부터 메리놀외방전교회·성골롬반외방선교회 그리고 과달루페외방선교회까지. 이분들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은혜를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한국외방선교회 선교사로 활동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정 신부는 “‘도전의식’과 ‘친화력”’이라고 말했다.

“도전 정신이 있다면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오는 많은 역경을 주님과 함께 넘어서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또 선교는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혼자 열 걸음을 가는 것보다 열 명이 한 걸음을 함께 걷는 것이 더 중요하죠.”

정 신부는 선교에서 얻는 가장 큰 기쁨은 바로 ‘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교지를 내 집처럼, 주민들을 부모나 형제자매처럼 느끼는 일체감이다. 삶 그 자체가 바로 복음의 기쁨인 것이다.

“선교하면서 그 기쁨을 얻기까지 최소한 10년은 걸립니다. 우리 인간의 시계로는 조급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 수 있지만, 침묵의 시간 속에서 주님만을 믿고 기다리고 버틴다면 어느덧 그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