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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

성추행 신부의 작품, 철거냐 존치냐

참 빛 사랑 2024. 5. 20. 20:22
 
휠체어를 탄 순례자와 봉사자가 루르드 성모 발현지 로사리오대성당 정면에 설치된 루프닉 신부의 모자이크 작품 앞을 지나가고 있다. OSV


성학대 범죄 행위로 고발된 모자이크 화가 마르코 루프닉 신부의 작품 철거를 두고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서 찬반 논쟁이 뜨겁다.

루프닉 신부는 창작 활동을 하면서 많은 여성, 특히 여성 수도자들을 성적·심리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사법 당국에 고발됐다. 피해자들 증언과 언론 보도가 잇따르면서 교회 여론은 이미 ‘유죄’로 기운 상태다.

예수회 출신의 루프닉 신부는 독특한 모자이크와 그림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 겸 신학자다. 서구 사회에서는 당대 최고의 성미술가로 꼽힌다. 그의 작품은 유명 성지와 교회 등 성스러운 공간 200여 곳에 설치돼 있다. 루르드 로사리오대성당 정면을 장식한 초대형 모자이크 ‘빛의 신비’, 교황청 사도궁에 있는 구세주의 어머니 경당 모자이크, 자비의 해(2015년)와 제10차 로마 세계가정대회(2022년) 공식 이미지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온라인 여론 광장에선 작품을 당장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미국 신자 마이클 하인라인은 “그의 작품이 보이는 성지에서 어떻게 치유와 은총을 구할 수 있겠는가”라며 루르드 순례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고 털어놨다.

미국 가톨릭 매체 NCR은 ‘루프닉 신부의 작품을 철거해야 할 때’(It’s Time to Remove Father Rupnik’s Art)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그의 모자이크는 하느님을 향한 마음과 정신을 고양하는 목적을 더는 달성할 수 없다”며 파기를 촉구했다. 사법부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그는 적법한 사법 절차를 밟을 권리가 있지만, 그의 작품은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감독 권한이 있는 주교들의 고민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루르드 성지를 관할하는 주교의 책상에는 전 세계 신자들이 보낸 항의 편지가 수북이 쌓여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주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전례헌장」을 펴놓고 고심하고 있을지 모른다.

“신앙과 양속 또 그리스도교 신심을 거스르고, 형상의 왜곡이나 예술성의 부족이나 저속함이나 허식으로 올바른 종교적 감정을 해치는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하느님의 집과 다른 거룩한 장소에서 멀리하도록 힘써야 한다.”(124항)

그렇다고 작품 철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작품을 해체하고 더 나은 작품으로 교체하려면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작품을 떼어내고 빈 벽 또는 페인트칠한 채 놔둬 일종의 ‘징표’로 삼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예술은 예술 자체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루프닉 신부의 예술이 가치가 있다면 그의 개인적 죄와 상관없이 예술은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게 보존론자들의 의견이다.

한 예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 사도좌와 제대를 덮고 있는 발다키노(Baldacchino, 天蓋)를 제작한 17세기 조각가 로렌초 베르니니도 자신의 내연녀와 동침했다는 이유로 동생을 죽이려다 미수에 그치는 추문에 휘말렸다. 하지만 그 때문에 발다키노를 허물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아직까지 그의 작품이 철거된 곳은 없다. 예수회는 수 년 전에 관련 혐의를 인지했다고 시인한 후 그를 파면했다. 한편, 피해 여성들의 법률 대리인은 4월 3일 판결 및 보상 청구에 관한 소장을 교황청 신앙교리부에 제출했다.





김원철 선임기자 wckim@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