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잊지 말자’보다는 순교자들의 삶과 성덕 기억하고 현양
▲ 6·25 순교자 시복 추진은 ‘가해자를 잊지 말자’는 이념의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성덕을 기억하고 우리 신앙을 되돌아보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 사진은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동료 37위’를 가리키며 설명하는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장초득 수녀.
6ㆍ25전쟁 발발 직후, 서울대목구 도림동본당 보좌 이현종 신부는 일시 몸을 피한다. 그러나 ‘양들 때문에’ 다시 본당에 돌아온 그는 7월 3일 인민군에게 붙잡혀 총살당한다. 사제품을 받은 지 79일 만이었다. 이처럼 당시 전쟁 전후, 많은 순교자가 피를 흘렸고 그 핏자국은 오늘까지도 선연하다.
한국 교회는 2000년 대희년에 앞서 이를 기억하며 순교자 160명을 기록한 「현대 그리스도인 순교자 명부」를 작성해 교황청에 보냈고, 2007년에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38위, 2009년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 결정을 통해 한국 교회 차원에서 81위에 대한 시복 추진에 들어간다.
전쟁은 끝났고, 세월도 66년이나 흘렀다. 그럼에도 분단과 대치, 질곡과도 같은 ‘이념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런 가운데 여전히 이념의 눈으로 ‘시복’을 바라보면서 갈등을 부추기는 주장이 교회 안에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가해자를 잊지 말자’보다는 “순교자들의 삶을 기억하면서 신앙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그렇다면 전후 60여 년 만에 추진되는 시복의 의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준비위원회 역사위원회 위원장 조한건 신부는 “이념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지만, 가해자의 잔학한 행위나 보복이라는 시각으로 시복을 바라보기보다는 희생자의 신앙적 측면을 먼저 바라봐야 한다”며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북녘 형제들과 소통하고 대화하고 이해하는 것이 앞서야만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추진의 의미가 살아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공산주의와도 대화에 나선 보편 교회의 모범을 한국 교회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권고도 있다. 노길명(요한 세례자) 고려대 명예교수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은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다시는 그러한 역사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분단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예수님의 뜻이 뭔지, 또 민족사 안에서 그 뜻을 어떻게 구현해 나갈 것인지를 먼저 성찰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역사 안에서 민족 화해와 일치, 용서와 평화를 우리가 제대로 구현해 왔는지, 이념적 양극화를 메우려는 노력을 해왔는지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한다.
순교자들의 영웅적 삶과 성덕에 주목하면서 시복을 북녘 교회의 재건, 나아가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이정표로 삼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평양교구 담당 장긍선 신부는 “피란을 떠날 수 있었는데도 순교 사제들은 ‘착한 목자는 양 떼와 함께한다’며 본당을 지켰고, 자신을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로 바쳤다”면서 “이들의 희생을 북녘 교회 재건의 밑거름이자 오늘의 한국 교회의 삶과 신앙을 되돌아보는 시금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가해자를 잊지 말자’보다는 순교자들의 삶과 성덕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복시성주교특위 대전교구 담당 김성태 신부도 “6ㆍ25 순교자들이든, 18∼19세기 박해시대 순교자들이든 너무나 분명한 건 순교자들은 ‘신앙 때문에’ 피를 흘렸다는 것”이라며 “그분들의 순교는 이념 문제라기보다는 구원을 향한 의지이고,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반대하는 데 대한 증거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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