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무료급식소에서 설거지 봉사하는 우제암 바오로씨
▲ 우제암씨가 설거지를 마친 대형 솥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설거지를 하다 보면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사순시기면 많은 이들이 결심한다. ‘이웃을 돕겠다’ ‘아내 대신 설거지를 하겠다’ 등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각자의 희생을 마음에 꾹꾹 눌러쓴다. 하지만 그런 희생을 기쁜 마음으로 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출ㆍ퇴근 전후로 노숙인 무료급식소에서 설거지 봉사를 하는 이가 있다. 우제암(바오로, 57, 수원교구 세류동본당)씨다. 그는 이틀에 한 번꼴로 서울 제기동 노숙인 무료 급식소를 찾아 봉사하고 있다.
▨설거지하는 남자
22일 오전 11시 작은형제회가 운영하는 서울 제기동 노숙인 무료급식소 프란치스꼬의 집(시설장 이상호 신부) 주방. 300인분 식사 준비에 주방 봉사자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각종 반찬과 밥, 국을 식판에 담아 나르고 한쪽에서는 빈 식판 등의 설거지가 한창이다.
주방 뒤에 딸린 두 칸짜리 싱크대 앞. 우제암씨가 방수 은색 앞치마에 장화를 신고 설거지 삼매경에 빠졌다. 밥알이 눌어붙은 커다란 밥솥과 대형 국솥, 기름기 가득한 프라이팬 등이 주방에서 쉴 새 없이 밀려온다. 하루 300여 명이 식사하는 곳이라 설거지 양이 보는 이의 기를 질리게 한다.
우씨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각종 그릇을 씻고 음식물 쓰레기에 섞인 뼛조각 등 이물질을 일일이 걸러내 처리하고 찜통의 천 등을 빨아서 널길 두어 시간. 잠시 짬을 내 커피 한 잔을 타 마시며 숨을 돌리는 그의 표정에서 개운함이 느껴진다.
그는 “남을 위해 봉사한다지만 여기서 그릇을 닦으며 내가 얻어가는 게 더 많다”며 “제가 좋아서 하는 거지 누가 시킨다고 이렇게 일할 수 있겠냐”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틀에 하루꼴로 이곳을 찾다 보니 직장에서는 “봉사도 좋지만, 몸 좀 챙겨라”라는 애정 어린 핀잔을, 프란치스꼬의 집에서는 “돈은 언제 벌고 봉사만 나오느냐”라는 농담도 많이 들었다. 봉사하는 날이 쌓이면서 2017년 서울 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주는 우수 봉사자 상을 받기도 했다.
주방 담당 김수희(라우렌시오) 수사는 “바오로 형제는 착하고 부지런히 일하며 말수도 없는 봉사자”라며 “시키는 일은 물론 시키지 않은 일도 잘하고 지금은 가끔 농담도 한다”고 웃었다. 말수가 적어 처음 몇 달은 올 때 ‘안녕하세요’, 갈 때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하던 게 전부였던 그다.
▨봉사에 대한 목마름
우씨는 2015년 프란치스꼬의 집과 인연을 맺기 전에도 꾸준히 봉사했다. 직장인 코레일에서 한 달에 두 번 보육원과 요양원 등 시설을 찾았지만, 봉사에 대한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시설에 물품을 건네며 사진을 찍는 것조차 그에게는 부담됐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봉사하고 싶었다.
답답한 마음에 40대 후반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위생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시간 나는 대로 인터넷을 통해 수업 과정을 이수하고 200여 시간 실습까지 마쳤다. 하지만 매달 근무 일자가 변하는 업무 특성상 그가 속한 본당에서는 봉사는 고사하고 주일 미사 참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혼인 주례 사제가 프란치스꼬의 집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프란치스꼬의 집을 찾았다.
우씨는 “날짜를 정해 봉사해야 한다는 말에 열차 근무표를 보여주며 시간에 맞게 봉사하게 해달라 부탁했다”며 “일단은 나와 보라는 신부님 말에 시간 될 때마다 봉사할 수 있는 기쁨을 얻었다”고 말했다.
봉사에 대한 애착은 몸을 다치며 더 깊어졌다. 2016년 서울 길상사에서 김치를 담그다 미끄러져 다리가 골절된 것이다.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자 건강의 소중함과 더불어 봉사의 소중함도 깨닫게 됐다. “60일 동안 직장도 못 나가고 봉사도 할 수 없으니 마음이 답답하더라고요. 봉사도 하느님께서 건강을 허락해 주셔야 할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죠.”
▲ 프란치스꼬의 집 주방은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대접하기 위해 늘 바쁘게 돌아간다.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 중인 프란치스꼬의 집 수도자와 봉사자들. |
▨남을 돕고 내 마음을 닦는 봉사
싱크대 앞에서 숨 돌리기도 잠시, 다시 설거지거리가 몰려 들어오고 우씨의 손길이 바빠진다. 우씨 뒤편 공간에서는 삼삼오오 둘러앉은 봉사자들이 담소하며 반찬용 감자의 껍질 벗기기가 한창이다. 묵묵히 설거지하는 우씨를 보니 말 한마디 없이 설거지하는 게 뭐가 그리 좋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우씨는 “사람을 상대하는 모든 직종이 그렇겠지만, 열차 내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늘 마음이 편치 않다”며 “취객은 기본이고 절도범, 성추행범 등 신속히 처리해야 할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화장실에 들어간 승객이 안 나온다는 민원이 들어왔죠. 문을 비상키로 열고 들어가 보니 자살을 시도했더라고요.” 그는 응급처치로 승객의 목숨을 살렸지만, 그때 받은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 프란치스꼬의 집에서 설거지 봉사를 하면 심신이 안정되며 마음이 평화로워진다”고 했다. 이곳을 찾는 횟수가 늘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지난해 처음 대부를 서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그보다 세 살 많은 프란치스꼬의 집 이용자의 신앙의 아버지가 된 것이었다. 근무 형태가 불안해 본당에서는 특별한 봉사 활동을 하지 못해 늘 대부 물망에서 제외됐던 터다. 생소하지만 기쁨과 함께 대부로서의 신앙적 책임도 무거워졌다.
오후 3시, 봉사를 마친 우씨가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족들이 이해해주니까 봉사할 수 있다는 고마움을 전한다.
“오늘까지 3046시간 봉사를 했어요. 동기부여지만 퇴직 전까지 5000시간 봉사를 채우고 싶어요. 퇴직 후의 일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려고요. 제가 쓰일 곳이 있으면 하느님이 부르시지 않을까요?”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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