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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도시들

[성경속 도시] 메드바

참 빛 사랑 2017. 9. 19. 12:47

이스라엘·모압 간 갈등의 불씨




‘메드바’는 요르단 동쪽 고지대에 있다. 고대의 중요 무역 통상로인 ‘왕의 대로’가 지나가는, 3500년의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나라들이 오가며 남긴 독특한 문명의 흔적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빛나는 문화적 유적들로 가득한 곳이 바로 이곳 메드바다.

신약시대 메드바는 나바테아 왕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나바테아 왕국의 뒤를 이어 기원후 106년 로마 제국에 의해 아라비아 지방의 도시로 편입된 메드바는 비잔틴 제국에 의해 그리스도교 문화의 중심지로 급속히 확산돼 나갔다. 그 후 이곳에서 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이 순교하기도 했다. 비잔틴 시대에 들어와서는 요르단 강 동편 지역에서 가장 중요하고 번성한 그리스도교 도시가 됐다. 특히 메드바는 당시 이름을 날리던 모자이크 장인들이 모여들면서 모자이크 예술의 중심 도시가 됐다. 세계적 고대 문화 유산의 하나로 손꼽히는 ‘메드바 모자이크 지도’ 가 대표적이다.

비잔틴 문화를 꽃피우던 메드바는 614년 페르시아의 침략을 받았고 635년 이슬람군에 함락된 후 무슬림의 지배하에 놓였다. 그리고 8세기 중반 이 지역을 강타한 지진으로 파괴되면서 버려진 도시가 됐다. 현재 무슬림이 약 92%이고 그리스도교가 6% 정도인 요르단에서 메드바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대표적 그리스도교 도시다.

성경에서 보면 민수기에서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면서 아모리인들로부터 빼앗은 땅을 이야기하면서 처음으로 ‘메드바’를 언급한다. “그러나 우리가 활을 쏘아 대자 헤스본에서 디본까지 다 망하였다. 우리는 노파까지, 메드바까지 다 황폐시켰다”(민수 21,30).

메드바는 아모리인들의 임금 시혼으로부터 이스라엘이 빼앗은 땅이었다. 이스라엘은 아모리인들의 임금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청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혼의 땅을 지나가도록 허락해주기만 하면 밭이나 포도원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물물도 마시지 않겠다고 서약한다. 오직 ‘임금의 큰길’만 따라 지나가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혼은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를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치려고 모든 군대를 모아 광야로 나와 전투를 벌였다. 이스라엘이 도리어 그를 칼로 쳐 죽이고, 아르논에서 야뽁까지, 곧 암몬 자손들의 영토에 이르기까지 그의 땅을 차지하였다(민수 21,21-35).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한 후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북쪽 헤스본에서 메드바를 거쳐 남쪽 디본에 이르는 아모리 족속의 땅은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됐다. “그들의 영토는 아르논 강 가에 있는 아로에르에서 시작하여, 그 강 중간에 있는 성읍, 메드바 곁의 고원 지대 전체…”(여호 13,16).

이스라엘 역사에서 메드바는 이스라엘과 모압 족속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근원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메드바는 요르단 강 동편에서 예리코를 거쳐서 요르단 강 서편으로 갈 수 있는 중요한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왕조 때에 자연스럽게 메드바가 모압 족속과 전쟁의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메드바는 요압이 암몬인과 그 연합군을 격파한 장소이기도 하다. “또 병거 삼만 이천 대, 그리고 마아카 임금과 그의 군대도 고용하였다. 그들은 메드바 앞에 와서 진을 쳤다. 암몬 자손들도 싸우려고 저희 성읍들에서 모여 왔다”(1역대 19,7).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