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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도시들

[성경 속 도시] (65) 예루살렘 (하)

참 빛 사랑 2017. 8. 21. 12:47


▲ 험난한 구세사의 역사를 지닌 예루살렘 전경.



정복·파괴·건설의 역사가 쳇바퀴처럼


고고학적으로 예루살렘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예루살렘에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기원전 3000~2000년경에는 제법 큰 도시를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모든 생활 문화의 중심지요 위대한 왕의 성읍이었다. 그러나 강대국 사이에 있었던 예루살렘은 역사적인 우여곡절을 겪으며 수 세기 동안 정복당하고 파괴되며 다시 건설되기를 반복했다.

성경에서 예루살렘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직전 여부스족이 예루살렘에 거주했으나 베냐민과 유다 지파에 의해 일시적으로 점령됐다(판관 1,8).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여부스족과 함께 거주했다. “벤야민의 자손들은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족을 쫓아내지 않았다. 그래서 여부스족이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서 벤야민의 자손들과 함께 살고 있다”(판관 1,21).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발전했던 다윗 시대에 예루살렘은 완전히 정복,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가 됐다(1역대 11,7). 이어 솔로몬에 의해 요새로 강화되고 성전이 건립됐다(1열왕 9,15).

예루살렘은 남쪽 유다의 르하브암 왕 때 이집트 왕 ‘시삭’의 침입을 받았다(2역대 12,2). 또 유다 임금 아마츠야 때 북이스라엘 왕 여호아스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는 아하즈야의 손자이며 요아스의 아들인, 유다 임금 아마츠야를 벳 세메스에서 사로잡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에프라임 성문’에서 ‘모퉁이 성문’까지, 예루살렘 성벽 사백 암마를 무너뜨렸다”(2역대 25,23). 그리고 예루살렘은 기원전 586년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함락된 뒤 약 70년간 황폐한 채로 바빌론 총독의 지배를 받았다(예레 25,11).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으로 포로들이 귀환해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시작했다(에즈 1,2). 그러다 기원전 333년에는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했다. 기원전 63년에는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정복당하고, 기원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에게 예루살렘은 함락됐다. 제2차 유다전쟁(135년) 때 하드리아누스는 다시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예루살렘 성전 자리에 주피터 신전을 건설하고 골고타 언덕 위에는 비너스 신전을 지어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를 동시에 말살하려 했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공인되면서 예루살렘은 각광을 받고 그리스도교의 중심 도시로 재건됐다. 그러다가 무슬림들이 637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진격했다. 1099년 십자군 군사들이 정복할 때까지 예루살렘은 이슬람 도시로 인식됐으며, 1517년에 투르크 족이 예루살렘에 침입해 도시의 성벽을 세웠다.

예루살렘은 이슬람과 십자군의 몇 차례에 걸친 탈환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1917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터키의 지배를 받다가 1923년 영국의 위임 통치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의 수도가 됐다. 예루살렘은 길고 험난한 구세사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성벽과 길바닥의 돌 하나하나가 수천 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