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알고 계신 주님께 겸손되이 청하라”
앞에서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화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쉽게 나누자면 건성으로 하는 대화가 있고 진솔하게 나누는 대화가 있습니다.
건성으로 하는 대화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또 대화하고 나서도 대화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건성으로 하는 대화는 대화 자체에 몰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대화하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습니다. 그러면 대화가 끊어질 뿐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솔하게 나누는 대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진솔한 대화는 울림을 줍니다. 마음을 열고 속내를 나누기 때문입니다. 진솔한 대화는 서로 통하게 합니다. 서로 배려하고 경청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열고 배려하고 경청하는 것은 공감의 통로입니다.
마음을 열고 배려하고 경청한다는 것은 또한 겸손한 자세를 의미합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진솔한 대화는 비록 대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를 얻지 못한다더라도 대화 자체에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인 기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대화하려는 우리 마음의 진솔함과 겸손함을 필요로 합니다. ‘소화(小花) 데레사’라고도 하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저에게는 기도가 마음의 약동이며, 하늘을 바라보는 단순한 눈길”이라고 했습니다. 진솔함과 겸손함의 표현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이하 교리서)는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는 어떤 자세로 기도하는가? 우리의 교만과 우리 자신의 원의라는 고자세에서 하는가, 아니면 ‘깊은 구렁 속에서’ 뉘우치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는가? ” 교리서의 표현에 따르면 “겸손은 기도의 초석”입니다. “겸손은 기도의 선물을 무상으로 받기 위한 마음가짐”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인간, 겸손한 인간을 두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인간은 하느님께 비는 걸인”이라고 표현했나 봅니다.
걸인에게는 내놓을 게 없습니다. 걸인에게서 나오는 것은 청하는 것뿐입니다. 그 청함을 받아들인다면 그 걸인에게 무상의 선물을 준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래서 인간의 겸손한 청함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 무상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하느님의 뜻,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찾고 청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청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시며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청하기를 갈망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교리서는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목마름과 우리 목마름의 만남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열고 겸손하게 청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전문가들은 ‘성령께 마음을 열기 전에는 기도를 시작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을 열어 주시도록 성령께 청하는 것이 기도의 시작일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기도는 ‘성령께 마음을 열어 주시기를 청하며 겸손하게 낮추는 것’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559~2661항 참조).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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