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과 증오는 파괴하지만 사랑은 창조합니다. 우리는 일상의 체험을 통해서 이를 확인합니다. 명장(名匠)은 자신이 혼신을 다해 만든 작품 하나하나에 가득한 애정을 담습니다. 하물며 사랑 자체이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피조물들을 바라보시는 심경은 어떠하겠습니까? 구약성경 창세기 1장에서 ‘보시니 좋았다’는 표현은 괜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더욱이 당신 모습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참으로 좋았다’고 하시는 하느님이시니 인간에 대한 그 사랑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창조주 하느님이 인간을 보시는 그 마음은 마치 어머니가 품에 안은 갓난아기를 바라보는 마음에 비길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부족한 비유이지만 말입니다. 그 갓난아기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느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요놈이 젖 먹을 때가 됐는데’ 하면, 아기는 배가 고프다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기를 보는 어머니의 마음도 이러한데, 할 수 없는 것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의 작품인 인간을 향한 마음은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이 당신을 찾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느님을 찾게 돼 있는 존재입니다. 비록 “죄 때문에, 하느님과 비슷함을 잃어버린 뒤에도, 인간은 자신의 창조주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존재하도록 부르시는 분께 대한 갈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566항).
이렇듯이 인간은 하느님을 찾게 돼 있습니다만 사실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곧 인간을 “무(無)에서 유(有)로 불러내실” 때부터 먼저 인간을 부르십니다. 이렇게 창조와 함께 시작된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갈망과 또한 창조로 인간을 불러내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의 만남이 기도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를 잊거나 또는 창조주의 면전에서 멀리 숨더라도, 자신의 주장을 좇거나 또는 자기를 버렸다고 하느님을 비난하더라도, 살아 계신 참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를 기도의 신비로운 만남으로 끊임없이 부르십니다”(2567항).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에서는 인간을 부르시는 “하느님의 이 사랑의 행위가 언제나 앞서는 것이고, 인간의 행위는 언제나 이 사랑에 대한 응답”(2567항)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인 기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창조와 함께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 자체가 무에서 유로 불러내시는 하느님의 행위이고 인간의 존재 자체가 그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손오공이 아무리 애써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 인간의 존재가 그러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에게서 벗어나려고 부질없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려는 열려 있는 자세입니다.
성경, 특별히 구약성경은 이렇게 인간을 부르시면서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과 부르심에 응답하거나 때로는 응답을 회피하는 인간의 관계를 한 민족의 역사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교리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느님께서 점차 당신을 드러내시고 인간에게 차츰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심에 따라,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에게 하는 호소, 상호간에 맺어지는 계약이 되는 것이다. 말과 행위를 통하여 이 계약의 드라마는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이 드라마는 구원의 역사 전반에 걸쳐 펼쳐진다”(2567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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