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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야 놀자] 장터에 핀 푸른 봄(靑春), 청년들의 전통시장

참 빛 사랑 2016. 5. 20. 15:12



'겨울잠 자던 장터에 푸른 봄(靑春) 피었네' 청년들의 전통시장
‘appogiatura(아포자투라)’
불협화음으로 화음을 내는 꾸밈음을 뜻한다. 조화롭게 흐르던 화음에 뜻밖의 코드가 불쑥 끼어드는데, 오히려 음악의 개성이 뚜렷해진다. ‘부조화’가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키는 셈이다.

전통시장에서 ‘아포자투라’의 향연이 연주되고 있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 소도시에도 대형마트가 들어선 지 오래. 재래시장은 사라지고 있었다. 텅 빈 시장에 앉은 나이 든 상인의 무표정한 얼굴은, 젊은 세대에겐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전통시장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인적이 뜸했던 지방의 한 시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재기가 번뜩한 간판, 정갈히 손질된 수제 물품, 오밀조밀한 실내 장식. 도무지 시장과 어울리지 않는 가게들이 시장 구석에 들어서면서부터 손님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울 근교의 또 다른 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스럽지 않은' 음식을 파는 가게가 하나 생겼는데, 시장을 찾는 발걸음이 되레 늘었다.


두 시장의 공통점이 있다. 시장을 바꾼 가게들의 주인공이 청년이다. ‘불협한 꾸밈음’ 같은 젊은 장사꾼들이 기존 상인들과 어우러져 연주하는 ‘시장교향곡’. 오래 겨울잠 자던 낡은 장터에 푸른 봄(靑春)이 활짝 피었다.


이야기는 버려진 공간에서 시작된다.

누가 봐도 목이 좋지 않은 시장 모퉁이. 발걸음이 뜸해 먼지 쌓인 구석 자리를 기회의 터전으로 삼은 청년들이 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청년'과 '전통시장'의 조합은, 예상보다 큰 동반 상승 효과를 낳았다. 시장은 청년에게 기회를 줬고, 청년은 시장에 숨을 불어넣었다.

시장과 청년. 그들은 어떻게 서로 녹아든 걸까?


첫 번째 이야기.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시작은 위기였다. 5년 전, '전주의 부엌'이라 불리던 전주 남부시장 인근에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시장 매출은 금세 절반으로 떨어졌다. 어떻게 시장을 살릴지 고민하던 상인들과 시민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전성시 사업(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 사업)' 대상으로 남부시장이 선정된 것이다.


여기에 전국에서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소규모 자본으로 어엿한 가게 하나 차릴 수 있다'는 매력에 끌린 것이다. 2012년 5월, 임대료가 싼 시장 2층에 12곳의 가게가 문을 열었다. '청년몰'의 시작이었다.

전통시장에 모인 청년들 이야기는 SNS와 언론을 타고 퍼졌다. 청년몰을 가득 채운 글귀와 벽화들은 촬영 명소로 거듭났다. 시장을 찾는 관광객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4년이 지난 지금, 가게는 32곳으로 늘었다 .

겉보기엔 일단 성공. 무엇이 그들을 꽃피게 했을까. 꽃피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을까. 직접 찾아가봤다.


구수한 냄새와 아기자기한 풍경의 '콜라보'
생선 냄새, 나물 반찬 냄새로 꽉 찬 시장의 5월. 골목 중간 어드메, 귀여운 글씨체의 간판이 보인다. '청년몰로 가는 길.' 계단을 따라 오르니 정사각형 모양의 '또 다른 시장' 풍경이 펼쳐진다. 일본 가정식 백반부터 약과까지 다양한 음식점, 직접 만들어 파는 옷가게, 디자이너 소품점. 예사롭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32곳 가게가 저마다 개성을 뽐내고 있다. 벽에는 이곳에서 오늘 저녁 열리는 미니 콘서트 포스터가 붙어 있다. 가게 주인들은, 하나같이 '젊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젊을 예정이다'
'니들은 참말로 열심이다'

가게마다, 벽마다 적힌 문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유쾌해진다. 그 중에서도 청년몰 가운데 걸린 큼지막한 문구가 유독 눈에 띈다. 담백하지만 가볍게 느껴지진 않는 한 마디.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저희는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해야 했지요. 지금 벌이는, 글쎄 모르겠어요. 잘 벌고 있는지는 몰라도, 잘 살고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꿈을 이뤘거든요. 우리만의 공간에 우리의 이름을 내건 작품을 만들어 선보이고 있으니까요. 내 생각이 실현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요."
- 황수연(디자이너 소품점 '미스터리 상회' 대표)

돈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청년들.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겠지만, 그들의 '행복찾기'는 진행 중이었다.

그들의 행복을 설명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이 시장의 터줏대감, 1층 상인들이다.


부조화를 조화하는 법
"1층 상인분들과는 매주 반상회를 해요. 청년몰의 방향이나 이벤트, 혹은 보수와 관련한 구체적인 얘기까지 상인분들과 상의하죠. 매달 소규모로 콘서트나 행사를 여는데, 보다 재미있게 구성할 방법에 대해서도 여쭤봐요. 1층 상인분들도 저희보다 인생 경험이 많다보니 많은 조언을 해주세요. 특히 요리 비법을 알려주실 때는 정말 감사하죠."
- 홍정애(일본 음식점 '백수의 찬' 대표)

청년몰과 남부시장이 올곧게 나아가는 토대에는, 기존 상인들과 청년들의 상생정신이 있다. 자칫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집단은, 배려와 소통으로 상생의 교집합을 하루하루 조금씩 더 찾아나가고 있다.


물론 청년몰이 아무 어려움 없이 성장했을 리 없다. 지금도 끊임없는 갈등과 봉합의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지나치게 '사진만 찍는' 관광지로 여겨지면서 실질적인 매출은 크게 늘지 않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이곳에 둥지를 트려는 사람은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새 입주자를 뽑을 당시 경쟁률은 50대 1에 달했다. 시장의 특성 탓에 정확한 매출 통계는 잡히지 않지만, 청년몰로 인해 남부시장 전체가 전주 관광의 뜨거운 감자로 다시 부각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은 그렇게 힘을 합쳐, 함께 '젊어 지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
'화덕 달구는 총각들' 강화 풍물시장 청풍상회

이번에는 바다 내음 풍기는 강화도의 풍물시장이다.

2층 먹거리 시장. 밴댕이회덮밥, 잔치국수, 수수부꾸미 등 '시장'하면 떠오르는 음식들이 눈과 코를 자극한다. 시장 끄트머리에 다다르니 젊고 우렁찬 목소리가 손님을 반긴다. "어서오세요!" 다섯 청년의 합창. 이들이 파는 음식은 도무지 시장과 조화하지 않는다. '화덕피자'다.


"재래시장에 젊은 바람을 몰고 오겠다"

섬 시장에서 화덕에 불을 지피는 청년들. 이들의 가게 이름은 '청풍상회(청년들의 풍물시장)'다. 강화도에서 화덕피자를 파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2013년 중소기업청이 공모한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청년창업 프로그램'에 뽑힌 젊은이들이 풍물시장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인천 지역에서 활동하던 문화기획자, 힙합음악 래퍼, 강화 토박이 대학생 등,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청년 다섯 명이었다. 모두 재래시장과도, 피자와도 상관 없는 삶을 살아온 이들이다. 도대체 왜 여기에서 머리를 맞댄 걸까?


"누구든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나고 싶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그럼에도 젊은 사람들이 지방을 뜨고 서울로 향하는 이유가 있어요. 고향에는 젊은이가 꿈을 펼 기반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꿈을 펼치는 지방을 만들자'로 정했어요."
- 김토일, 청풍상회 대표


상인회와의 갈등
바람을 견디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는가. 다섯 청년의 '시장인생' 3년은 순탄치 않았다. 지난해 12월에는 급기야 화덕의 불길이 꺼졌다. 임차 재계약하는 과정에서 기존 상인회와 갈등이 불거졌던 탓이다. 청년들은 정부 지원이 끝나는 이듬해에도 계속 같은 곳에서 장사를 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지자체에 수의계약을 요청했는데, 상인회의 추천서가 필요했다.

상인회는 조건을 내걸었다. 상인회장에게 아침 문안 인사를 드려야 하고, 시장 허드렛일을 도맡는 등의 조건이었다. 협의가 되지 않는 만큼 가게 문을 닫는 시간도 늘었다. 화덕에는 먼지가 쌓여갔다.


부푼 꿈이 한낱 일장춘몽으로 사라질 무렵, 갈등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청년들은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고, 상인회도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지역 여론과 언론도 '젊은이들의 꿈'을 응원했다.

청년들은 피자를 상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필요한 식자재는 최대한 시장 안에서 구매했다. 상인회도 요구사항을 철회하고, 일부 논란에 대해서는 오히려 먼저 사과까지 하고 나섰다. 청풍상회가 생기면서 시장을 찾는 젊은 발길이 늘었다는 건 분명하기에, 상인회도 다섯 청년을 '전통의 일원'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새댁과 오래된 터줏대감은 다시 손을 맞잡았다. 가게 문은 다시 열렸다.


"젊은이들이 참 착해요. 본인들이 만든 음식을 먼저 나눠주기도 하고. 시장에는 어르신들이 많잖아요. 항상 그분들 의사를 먼저 묻고 얘기를 귀담아 들으려고 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했던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어요. 문제가 생겨도 먼저 참고 배려하는 모습이 좋아보였어요."
- 신봉자, 풍물시장 '옛날집' 사장

청풍상회 다섯 청년은, 이렇게 시나브로 풍물시장의 마스코트가 되어가고 있다. 밴댕이 피자, 강화도 속노랑 고구마 피자, 4월 고려산 진달래 축제 때만 특별히 만드는 '진달래 피자'까지. 선보이는 메뉴도 '시장'스럽고, '강화도'스럽다.


피자 가게를 넘어, 문화를 만들기
이들의 꿈은 시장 가게 한 곳을 차리는 일에 그치지 않고 있다. 2년 전부터는 시장 근처에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이번 달 말부터는 역시 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커뮤니티 펍'을 운영할 계획이다. 맥주도 팔면서, 벼룩시장도 함께 여는 형태의 가게다. 진열대에는 젊은 강화도 창작자의 물품이 놓일 예정이다.

강화도는 바람이 세기로도, 하늘이 맑기로도 유명하다. 다섯 청년의 꿈은 그렇게, 강화도를 닮아가고 있다.


젊은 시장, 트렌드가 되다
'청년들의 전통시장'은 이제 전주 남부시장과 강화도 풍물시장의 얘기만이 아니다. 재래시장에 부는 젊은 바람은 어느새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인천 서구 재래시장, 원주 중앙시장에도 청년들의 가게가 문을 열었다. 앞으로 조성 예정인 곳까지 포함하면, 전국 17곳 재래시장에 청년들이 둥지를 틀 예정이다. 서울시도 '전통시장 청년상인 육성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머지 않은 미래에, 시장이 젊어지는 현상이 시대의 흐름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얼핏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전통시장의 오래된 상인들 중에는 수십 년 전 이곳에 청춘을 송두리째 던진 이들도 숱하다. 지금은 '전통'이라는 명찰을 목에 건 재래시장들도, 젊음이 펄떡거리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을 테다.

사람은 낡음을 거스를 수 없지만, 시장은 다르다. 청년들이 변화시키는 옛 시장의 민낯은 단순히 '젊은 척'하기 위한 분칠을 넘어, 시장의 나이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

청년과 시장의 낯선 어울림. 그들의 화양연화는 끝나지 않았다.


만든사람들

글 : 강연주
사진 : 김수현
디자인 : 최수영
퍼블리싱 : 신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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