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즉통이라 했던가, 궁하면 통하고 닥치면 하기 마련이라고... 그저 충실히, 열심히 하다 보니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시고 천사들을 보내시어 은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후원자들을 보내주셔서 보잘 것 없는 이 사제의 갈망을 기묘하게 갚아주신 것이라 확신한다.
기금 마련 초기에 기금이 늘어나는 것에 재미가 들려 열심히 재미있게 하는 중에 디스크 협착이 발생해서 한 2년간 죽는 줄 알았다. 전철을 갈아타러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발걸음 걸음마다, 뼈가 울리고 심지어 숨 쉬는 순간마다 통증이 올라와 정말 고통스러웠다. 더욱이 기금 마련 미사 중에 웃고 싶어도 통증이 심해서 도저히 웃음이 나오질 않아, 공지사항 시간에 ‘제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것은 여러분들이 맘에 안들거나 미워서가 아니라, 허리가 너무 아파 숨만 쉬어도 죽을 지경이라 그러니 양해해 주시라’고 한적도 있었다.
통증을 줄여보려고 나아보려고 별짓을 다했다. 약 복용부터 사혈, 교정치료, 침 맞기... 별별 짓을 다 해봐도 효과가 없어 포기하려다가 교구의 몇몇 신부들이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나았다는 증언을 듣고 손해 보는 셈 치고 가봤다. 세상에~ 그렇게 아픈 침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도 맞고 나면 한 이틀은 실컷 두들겨 맞은 듯 더 아팠다. 그러다가 다섯 번째까지 맞아도 별 효험이 없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맞아보고 그래도 효과 없으면 그만두려다가 여섯 번째 맞고 한 이틀 있더니 감쪽같이 나았다. 한의사의 실력인지, 천사의 손길인지... 정말 오랜 어둠에서 빛으로 해방되는 듯 했다. 우리 교우들에게도 공표하고, 나와 비슷한 경우라면 꼭 가보라고 연락처까지 알려줬다. 그 과정에서 서울의 어느 자매님이 치료를 받도록 경제적 도움을 주시기도 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새삼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알렐루야~!
기금 마련을 하러 가는 본당에는 빈손으로 가기가 송구스럽고 감사한 마음에 주임 신부님과 수녀원, 사무실, 관리원까지 인견 이불과 반바지를 감사의 선물로 드렸다. 이불과 반바지를 구입한 교우들은 매우 만족하며 재차 구입하는 분들도 많았다. 어떤 분은 미국에 가져가고 싶다고 구매를 하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아예 공장을 차려서 회사를 운영해볼 걸 그랬나...싶은 생각도 든다... 그랬다면, 꽤 많은 수익을 올렸을 것이란 착각 아닌 착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이사장을 맡아서 가난한 우리 교우들 매장 하나씩 차려주고 일자리를 마련해주면 먹고 사는데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ㅜㅜ 돈맛을 보더니 별 생각을 다해봤다.
기금 마련을 허락해준 본당 신부님께는 가시는 임지를 알아내서 성탄과 부활 축하 인사와 메시지를 꼬박꼬박 보내드리고 감사를 표시했다. 큰 금액을 봉헌하신 분께는 대한민국 최고의 밤 ‘공주밤’을 좋은 것으로 골라 감사의 선물로 보내드렸다. 만족도가 높았다. 유구 성당에 재임하는 동안에는 계속 보내드렸다. 고마운 마음에 뭐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드릴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도 성전을 더욱 정성껏 건립하게 되었다. 나중에 그분들이 와서 성당을 보셨을 때 ‘아, 참 예쁘다... 아름답다, 거룩하다... 내가 봉헌한 후원금이 이렇게 은혜롭게 쓰였다니...’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기뻐할 수 있게...
돌아보니, 처음 보는 신부를 따뜻이 맞으며 ‘고생 많다’고 격려하며 즉시 허락해주는 신부가 있는가 하면... 어떤 신부는‘가방을 매고 땀을 찔찔 흘리며 안된다는 데 여러 번 찾아가니...’ “혹시 미친 거 아니냐~(또라이냐?)”라고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내가 진짜 신부인지 못 믿겠으니, 교구 주교님께 확인서와 신부 증명서를 보내고, 당신 동창 신부님들의 증언서도 제출하라고 한적도 있었다... 워낙 많은 곳에서 많은 신부들이 도움을 청하러 손을 빌리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으면서도 살짝 야속하고 서럽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또 본당에 부채도 적지 않게 남아 있으면서도 기꺼이 오라고 환영하는 신부도 있었고, 두 번이나 기회를 준 신부도 있었고, 결과가 약하지 않냐며 별도로 추가 지원비를 주는 신부도 있었다. 심지어 공지사항 시간에, 자기 본당에도 큰 사업을 앞두고 있음에도, 교우들을 앉혀놓고,“얼마나 어려우면 여기까지 와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도움을 청하겠느냐?... 서울 신자들이 다 어디서 왔느냐, 다 시골에서 낳아 키워서 보내지 않았느냐, 우리 고향 성당에 벽돌 한 장 얹는 마음으로 우리가 성심껏 도와야 한다~”면서 감동의 일장 연설을 하여 우리를 울리고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뜨린 신부님도 있었다... 참으로 나만의 힘이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한다. 그런가 하면 강론 시간을 주지 않고 공지사항 시간에 3분만 홍보하라고 하는 신부님도 있고... 그런 경우는 그냥 갈까 싶다가도 어떻게 왔는데... 한 푼이라도 더 마련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끝까지 버티기도 했다.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극성스럽게 다녔다.
이렇게 늘 기금 마련을 다니다 보니, 비어있는 본당은 어찌할 것인가~ 누군가 와서 내 대신 주일미사(특전~주일)를 봉헌해 줄 신부님이 있어야 했다. 이게 또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우리 성당은 수리치골(성모성심수녀회)이 가까이 있어서 거의 매년 안식년 하는 신부가 와서 있었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워낙 오랜 기간을 하다 보니... 한두 번도 아니고 그도 어려워서 아예 시간 여유가 되는 신부를 찾았다. 그러다가 은퇴신부님(원로사제→지금은 성사전담사제로 바뀜)을 찾다가 내가 가끔씩 찾아뵙곤 하는 원로 신부님께 찾아가서 부탁을 드렸다. “걱정 하지 마, 뒷방 늙은이라 할 일도 없는데 할 일 생겨서 좋고, 후배 신부가 어려운 형편에서 성당을 짓겠다고 그 고생을 하는데 늙은 신부가 가서 공기 좋은 산골에서 순박한 교우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보람있는 일이냐”며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그분이 우리 본당에 미사를 봉헌해주신 기간이 몇 년인지 모를 만큼 오랫동안 미사를 봉헌해 주셨다. 그리고 그분은 어김없이 30분 전에 오셔서 고해 성사를 주시고 미사를 봉헌하시고는 일체 식사 대접이나 미사 예물도 안 받으시고 바로 가셨다. 회장단에게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신부님이 그냥 가시는데 어쩌냐’고 하니~ 답답하고 죄송하고 민망했다.
한 번은 ‘제 마음도 좀 받아주시고 우리 신자들 마음도 좀 생각해 주셔야 되지 않느냐’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씀 하셨다. “절대 그런 소리 하덜 말어~ 할 일없는 신부가 공기 좋은 산골에서 순박한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하는 일이 나에게는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야~ 그 자체가 나에게는 선물이고 보람이라구~”그분은 단 한 번도 식사 대접을 안 받으셨고, 미사 예물 한 푼도 받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만일에 미사 예물을 준다거나 그러면 안 갈 거야~”라고 무서운 말씀을 하셨다.
- 대전교구 정필국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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