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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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종합

[전문] 춘천교구장 김주영 주교 2024년 사순·부활 메시지

참 빛 사랑 2024. 4. 2. 17:30
 


성체와 가난!
  
친애하는 춘천교구 하느님 백성 여러분!
 
우리는 은총의 때인 사순시기를 맞으며 신앙의 정점인 부활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사목교서인 <말씀살기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후속 권고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함께 걷는 우리의 여정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교 메시지는 나에게 소비 강박 심리를 거슬러, 소비로부터의 자유를 가르쳐 준다. 자신의 행복을 오로지 향유와 유복함 위에 구축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사람은 위세와 경쟁 법치에 지배되어서는 안 되고 또 잉여 숭배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한스 큉, 『나는 무엇을 믿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꽤 많은 것을 소유합니다. 할인하면 당장 필요치 않아도 사서 쟁여두고, 물건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며 때마다 사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유한 것들이 필요 이상으로 늘어나면 왠지 모를 죄책감과 많은 물건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중고 물건을 사고파는 ’당근 마켓‘이라는 앱이 활성화된 것도 이러한 소비 심리를 방증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소비가 미덕이라고 외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건을 사지 않고 사는 삶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검박한 삶을 영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단순한 생활방식인 ‘미니멀리즘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단순한 생활방식은 자발적으로 불필요한 물건만을 줄이고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건을 적게 소유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소비에 시간을 들이지 않는 것이며, 그 잉여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데 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건을 적게 소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정신적 풍요로움을 경험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신앙인의 참된 풍요로움과 진정한 행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우리는 올 한 해 성체를 향한 응시와 묵상을 하며 내적인 풍요로움과 외적 삶의 은총을 청하기로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성체성사의 제정과 세상을 향한 헌신으로, 우리의 내적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분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성체를 영하거나 응시하는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나의 삶 속 일상으로 옮겨 놓을 때 우리는 진정한 성체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난한 삶은 경쟁 법칙과 잉여 숭배에 동참하지 않고, 소비와 낭비로부터 자유로운 그리스도인으로 가난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체와 가난의 삶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복음서는 그것을 증명해 줍니다. 자신을 따르겠다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마태 8,20)”고 하시고, 복음선포 여정에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마르코 6,8)”하시지만,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진복팔단(眞福八端)으로 알려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우리의 신앙 여정에 사랑의 신비인 성체와 가난이 결여된다면, 이상과 현실의 충돌이 생겨 크나큰 어려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소비로부터 자유로울 때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있으며, 이때 비로소 신앙인의 참된 풍요로움과 진정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은총의 시기를 맞아 성체와 가난의 삶에 대한 응시와 묵상과 실천으로, 우리의 삶을 영적 풍요로움으로 가득 채우시고 신앙의 정수인 부활의 기쁨을 맞이하시길 희망합니다.
 
 
춘천주교 김주영 시몬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