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대축일 아침, 탄광촌에서 보내온 편지 / 김영진 신부(원주교구 도계본당 주임)
▲ 김영진 신부
어머니의 틀니를 닦으며
치매를 앓고 계시는 어머니의 틀니를 처음으로 닦았다. 주무시기 전 아기 달래듯 살살 달래서 틀니를 뱉게 하고, 그걸 칫솔로 구석구석 닦았다. 살아오신 인생 굴곡만큼이나 복잡하게 생긴 어머니 틀니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생각하니, 틀니에 고맙고 어머니께 죄송했다.
어머니는 “사제관에 함부로 가는 게 아니다”며 2년 넘게 거절하셨는데 꽃구경 가자는 동생 내외 꼬임에 넘어가 아들 사제관까지 발걸음을 하셨다. 난 그새 잘 걷지도 못하는 아기가 되신 예쁜 내 어머니 틀니를 닦으며 속으로 흐느꼈다. ‘나는 틀니만도 못한 자식이구나. 김치 깍두기 드시는 건 틀니 덕분이고, 고양이 밥 만큼 드시는 것조차 틀니가 하는 효도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수백 수천 번 내 몸 닦아주시고 내 똥 치우고 닦아주신 어머니이신데, 나는 90이 다 되신 어머니 틀니를 이제 겨우 한 번 닦아드리며 눈물짓는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의 바이러스가 틀니를 통해 내 몸과 마음에 젖어들어 솟아나는 보은의 눈물이다.
요즘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느라 우리네 삶이 헝클어지고 있다. 만나지 말아야 하고, 간혹 만나더라도 간격을 둬야 하며, 말하는 것도 악수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만남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마스크 한 장에 운명을 내맡기고
또한, 바이러스를 옮길까 봐 서로서로 의심해야 하고, 손바닥만 한 마스크 한 장에 운명을 내맡기고 살아야 하는 인간 삶이 가련하기까지 하다.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하느님조차 우습게 여기건만, 눈에 보이지 않기는 매한가지인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하찮은 미생물을 두려워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교만한 인간에게 ‘네 꼬락서니를 알라’는 훈계 같기도 하다.
세상에는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 같은 감동과 환희를 전하는 바이러스도 많건만, 어쩌다 인류는 이런 고약한 바이러스와 맞닥뜨렸을까? 지금 이 순간 산소호흡기를 끼고 사투를 벌이는 분들의 고통과 환자들을 돌보느라 녹초가 돼가는 의료진과 봉사자들의 희생을 보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나는 왜 이런 재앙이 닥쳤을까, 혹은 어떻게 해야 이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이 재앙 속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면 좋을까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라
첫째,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라.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안아주어라. 그대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던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그대가 아닌가! 힘들어도 힘들다고 소리 한 번 못 내면서 맡겨진 일보다 더 많은 일을 요구받고 일해온 그대가 아닌가!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자신을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사람, 자신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라. 그리하면 그대 자신은 스스로 용기와 희망을 주는 따뜻한 바이러스가 될 것이다.
가까운 이웃에게 감사하라
둘째, 가까운 이웃에게 감사하라. 감히 말하건대 우리는 그동안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리고 위만 보고 달리고 나만 보고 달리지 않았던가! 이제 잠시 멈추고 뒤에 있는 이웃, 아래와 옆에 있는 이웃을 보고 그들에게 감사하라. 행여나 앞에 있고 위에 있다고 꼴값을 떠는 사람이더라도 사랑해주고 감사해주어라. 자리는 높을지 모르나 인격은 뒤에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 옆에 있는 이웃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온 이들이다. 그대가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와 사랑을 주는 따듯한 바이러스가 되라.
내가 사는 탄광촌은 아름다운 곳이다. 주민의 80%가 연탄불을 때는 가난한 마을이지만 가난이 아름다움을 막지는 못한다. 극장 하나 없는 문화의 불모지요, 석탄먼지 풀풀 날리는 마을이지만 문화와 환경이 앞선다고 아름다움까지 앞서는 것은 아니다.
내가 굳이 깊은 산 속에 있는 탄광촌을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 사는 사람들 마음 때문이다.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 거둔 한 움큼 푸성귀일지언정, 그걸 이웃과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 청국장을 한 뚝배기 끓여도 서로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나도 그들의 마음에서 전해진 바이러스 덕에 연탄 은행을 만들어 더 어려운 이웃과 연탄을 나누고 있다.
‘해피 바이러스’가 부활이 아닐까
아침 기도를 하러 성당에 가려고 방문을 여니 연탄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하지만 눈에는 간밤에 떨어져 마당 가득 흩날리는 꽃잎들이 들어온다. 문득 꽃잎 하나가 연탄 냄새나는 동네를 아름답게 해주는 ‘해피 바이러스’가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촌구석에 사는 신부가 주님 부활의 의미를 무슨 수로 유창하게 전해줄 수 있겠는가. “부활이 별거냐. 부활이란 게 죽음에서 생명이 비추어진 바이러스요, 절망에서 희망이 비추어진 바이러스 아니냐. 또 어둠에서 빛이 나오는 바이러스요, 미움에서 사랑이, 슬픔에서 기쁨이 나오는 바이러스 아니냐”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신학자들에게 꼬집어 뜯길 말이지만 코로나의 긴 터널 속을 걸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다독여주는 바이러스가 되고, 옆에 있는 이들에게 감사하고 안아줄 수 있는 바이러스가 된다면 나는 그것을 감히 ‘부활’이라고 말하련다. 석탄먼지 날리는 곳에서는 꽃잎 하나가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부활의 바이러스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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