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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85)고통이 행복보다 크게 기억되는 이유.

참 빛 사랑 2019. 10. 23. 21:41




▲ 고통은 크건 작건 나를 아프게 하니

괴물처럼 다가와 소소했던 많은

즐거움을 덮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CNS자료 사진]




“기억이 안 나요.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기억이. 하나도… 그래서 너무 슬퍼요.”

얼마 전 어머니를 잃은 M은 떨리는 목소리로 어린아이처럼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그 모습이 하도 슬퍼 가슴이 저려왔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엄마를 행복하게 해준 기억이 별로 없네요.” 그의 손을 붙잡고 함께 울면서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론 ‘그래도 무언가 있겠지’ 하면서 ‘행복의 순간’을 떠올려보려고 애썼다.

엄마가 폐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을 때도 그랬다. ‘아, 내가 엄마에게 해준 것이 없구나. 어떡하지?’ 그래서 조급한 마음에 부랴부랴 한 달 휴가를 받고 집으로 달려갔었다. 그럼에도 그때를 돌이켜 보면 엄마를 기쁘게 해준 것이 별로 없다는 죄책감이 불쑥 찾아오곤 한다. 아파서 움직이기도 힘든 엄마를 햇빛을 쐬어야 한다며 나가자고 재촉했던 것도 그렇고. 엄마가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회복에 좋다며 억지로 권한 것도. 밤새 기침 소리가 나면 달려가 끌어안고 “얼마나 힘드냐”고 위로하며 펑펑 울기라도 해야 했는데 엄마가 신경 쓸까 봐 못 들은 척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도 그렇다. 엄마가 곧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고통스러운 ‘생각’ 때문에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을 감사하며 보내지 못했다. 사실 하늘 아래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행복한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왜 자꾸 안 좋은 기억만 나는 걸까? 과연 고통스러운 일이 더 많았을까? ‘행복’은 엄청나게 장엄해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막연한 ‘상상’ 속에 꽁꽁 가두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게다가 고통이란 놈은 크건 작건 강하건 약하건 나를 아프게 하니 괴물처럼 다가와 소소했던 많은 즐거움을 모조리 덮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고통이 행복보다 더 크게 기억되는 것일까?

때론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기억 때문에 더 아프다. 고통에 대한 기억 때문에 새롭게 찾아온 현재의 기쁨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한다. 마치 작은 먹구름만 봐도 번개와 태풍이 몰아치리라는 두려움 때문에 해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살 때도 있다. 찬란한 햇살 아래 서 있어도 지나간 먹구름에 대한 기억 때문에 오늘도 마냥 어둡기만 하다. 현재를 부정하면 두려움은 커지고 그럴 때 고통은 더 증폭되기 마련이다.

엄청나게 커다란 행복이 찾아와도 “이거 꿈 아냐? 나에게 이런 일이…” 하면서 어리둥절하다가 그 순간마저 놓치고 만다. 그러다 일상에 들어서면 ‘그럼, 그렇지’ 하면서 소소한 기쁨의 순간마저 알아채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일상 자체가 행복일 텐데. 이렇게 원고를 쓰고 사람을 만나고 밥을 먹고 이야기하고. 이 모든 것이 다 기쁨의 순간일 텐데. 모든 사람의 일상이 다 이런 것은 아니지 않을까. 누군가 누리고 싶어도 누리지 못하는 이 소중한 시간을 꼼꼼하게 하나하나 챙기고 보듬고 감사하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과거의 끝이 현재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 현재를 맞이한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기억하며 사느냐가 바로 오늘 내가 무엇을 할지 알려준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바로 지금이고 내일일 수도 있겠다.

주님께서 살아 숨 쉬며 살도록 허락하신 지금 이 자리가 참 좋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도. 내일 아침에도. 물론 그러다 어느 순간 분명 넘어지고 깨져 상처가 날 것이다. 많이 아플 것이다. 그때 꼭 기억해야겠다. 그동안 걸어왔던, 행복했던 작은 일상의 순간순간들을.



성찰하기

1. 고요한 마음으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요.

2.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오르면 내버려둬요. 동시에 지워졌을지도 모르는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해요. 가능한 한 아주 작은 것도 놓치지 마세요.

3. 살아 숨 쉬게 해주신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께 감사해요. 행복하게 기억하도록.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