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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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82)편견이 만들어낸 딱지 붙이기.

참 빛 사랑 2019. 10. 2. 20:29


▲ 많은 사람들을 대하면서 타인에 대한 편견과 판단을 가질수록 그 사고가 고착돼 딱지를 붙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CNS 자료사진




“아예 입을 콱 잠가버리고 싶어요….”

H가 화난 어조로 내뱉은 말이다. 누군가 H에게 “당신은 너무 불평이 많아요. 듣기가 거북해요” 하면서 사납게 쏘아댔다고 한다. 사실 H는 머릿속 생각도 구시렁대듯 불평을 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다 보니 그가 입을 열면 다른 사람들은 동시에 입을 닫는 모양새다. 그러니 그가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H가 불편해서 평소 약간의 거리 두기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순간 그가 무척 안쓰럽게 느껴졌다. “속상했겠어요” 하자 그가 공감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신세 한탄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 나올 기세다. 점점 듣기가 불편해졌다.

시작은 이랬다. “이것은 절대 불평이 아니고요. 답답해서 그냥 하는 말인데…” 하더니 결국 다른 사람에 대한 불평으로 이어졌다. 나도 모르게 그에 대한 선입견이 작동하면서 더 이상 그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저 빨리 끝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시계를 보았던 것 같다. 그도 느꼈는지 목소리에 힘이 빠지더니 “이제 갈게요…” 하면서 일어섰다. 미안한 마음에 평소보다 더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런데 나를 함부로 하는 사람들에겐 도저히 참기가 어려워, 정말로….” 중얼거리듯 내뱉는 그의 말에 뒤통수가 뻣뻣하게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 내가 그를 함부로 대했을까? 그에 대한 나의 마음속 판단과 편견이 그렇게 느끼게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H에 대한 판단이 나의 머릿속 투덜거림으로 이어졌고 결국 나는 그가 불평한다면서 내가 불평한 셈이 되었다.

불평이란 것이 그렇다. 내가 할 때는 정당한 것 같고 시원하기도 하고 내가 더 우월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때로는 억울하다는 감정이 올라오면 풀릴 때까지 생각하고 또 말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불평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예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불평하는 소리는 나 스스로 잘 듣지 못한다. 어쩌면 내가 불평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H가 불평하는 소리는 참 잘도 들린다. 아마 내가 H가 아니라서.

가만히 머릿속 생각을 들여다보면 마치 그 속에 불평하는 어린아이가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 “이게 왜 여기 와 있지?” “말 좀 곱게 하면 안 되나.” “반찬이 짜네.”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지.” “에그, 저 사람 또 시작이네.” 나도 모르는 사이 머릿속에 불평하는 아이가 들어앉아 뒹굴뒹굴 놀면서 구시렁대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게다가 머릿속 불평쟁이는 편견과 판단이 들어서면 여지없이 ‘딱지’를 붙이기까지 한다. ‘수다쟁이’ ‘멍청이’ ‘좀비’ ‘쓸모없는 사람.’ ‘잘난 박사님’ ‘독서광’ ‘완벽한 선생님’ 좋든 나쁘든 딱지를 붙이는 순간 내가 바라보는 사람은 내가 만든 작은 상자에 들어간다. 그러면 있는 그대로의 고유성과 인간다움을 음미하고 느낄 수 있는 여유도 공백도 사라진다.

그렇다. 내가 붙인 딱지로 인하여 있는 그대로의 H를 바라볼 수 없었고 그래서 그의 아픈 상처도 판단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난 H와 대화한 것이 아니고 내가 붙인 딱지와 대화했던 것이다.

살레시오 성인은 “사실이라 생각해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딱지를 붙이는 말이다. 사람들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죄인’이라 하며 딱지를 붙였지만, 그 순간 그녀는 죄인이 아닌 통회자였다. 바리사이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세리를 부정한 자이며 도둑이라 했지만, 그 순간 예수님은 세리를 ‘의인’으로 인정해주었다.

지금 만나는 사람들, 늘 처음 만나듯 그렇게 대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사람이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성찰하기

1. 머릿속에서 맴도는 불평을 잘 들어봐요. 그 불평소리가 내가 되어버리지 않도록.

2. 남에 대한 편견과 판단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 사고에 고착되기 마련이지요. 그러니 단지 지금 일어난 상황과 사실만 말해요.

3. 어제 그가 한 말과 행동으로 딱지를 붙이지 않고 지금 여기 있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처음 보듯 바라봐줘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