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한 경계심(2729~2733항)
기도할 때에 가장 흔히 겪는 어려움은 분심입니다. 분심이란 기도 중에 온갖 잡생각이 일어나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입으로는 기도를 바치는 데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심이 생길 때에 “분심을 몰아내려고 쫓아다니는 것은 오히려 함정에 빠지는 것이 됩니다”(2729항). 쫓아내려고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 아니라 그냥 다시 처음 기도하는 상태로 돌아오면 됩니다.
교리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분심은 우리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알려 주므로, 이것을 하느님 앞에서 겸손되이 깨달으면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우선적인 사랑이 일깨워질 것이다”(2729항). 내가 분심이 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겸손하게 하느님께 다시 돌아와 마음을 집중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정화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 분심에 빠져든다면 기도의 싸움에서 지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생기는 또 다른 어려움은 마음의 메마름입니다. 마음의 메마름은 특히 마음을 다해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부닥치는 어려움입니다. “이 메마름은 관상 기도의 한 부분”(2731항)이라고 교리서는 설명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메마를 때는, 생각도 기억도 느낌도 의욕도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영적인 감흥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뇌와 무덤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참된 신앙의 순간”(2731항)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메마름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요한 12,24) 메마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마음의 메마름이 돌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라면 회개가 필요합니다. 이메마름은 시련을 만나면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루카 8,13 참조).
기도할 때에 경계해야 할 또 다른 유혹은 신앙의 부족입니다. 이는 가장 흔하면서도 매우 은밀하게 다가오는 유혹입니다. 기도를 시작하지만 다른 급한 일이나 걱정거리가 떠올라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는 “또다시 무엇엔가 집착하고 있는 마음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2732항)입니다. 말하자면 주님께 의탁하고 기도한다고 했는데 믿음의 부족으로 근심거리가 계속 생각나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에 대해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주님을 우리 최후의 피난처로 여겨 그분께 갈 때에도, 우리는 참으로 그분을 믿는가? …이 모든 경우에서 우리 신앙의 부족, 곧 우리가 아직 겸손한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2732항).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너희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는 말씀을 되새기며 주님 안에 굳건히 머물러 있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게으름도 자주 빠지게 되는 유혹입니다. 게으름은 “금욕 정신이 해이하고 경계심이 감퇴되어 마음이 태만해짐으로써 나타나는 일종의 의기소침”(2733. 2755항)입니다. 자만 또는 교만함에서 빠지게 되는 유혹일 수 있습니다.
교리서는 “높은 데서 떨어질수록 더 많이 다치게 된다”면서 “고통스러운 좌절감은 교만의 이면”이라고 지적합니다(2733항). 이런 유혹에 맞서 요구되는 자세는 겸손함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비참함에 놀라지 않는다. 자신의 비참함을 느끼는 겸손한 사람은 더 깊은 신뢰심을 갖게 되고 더욱 끈기있게 참아 견딘다”(2733항).
이창훈 기자 changhl@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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