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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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이해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빛으로 쏘아 올린 스테인드글라스...상상의 날개를 펴다

참 빛 사랑 2016. 9. 29. 22:49

공연예술과 스테인드글라스

▲ 폴 매카트니의 월드투어에서 브라이언 클라크의 스테인드글라스 이미지를 활용한 공연예술이 펼쳐지는 모습. 스테인드글라스가 공연예술에 접목된 좋은 사례다. 

 출처 : 브라이언 클라크 스튜디오1



▲ 폴 매카트니의 월드투어에서 브라이언 클라크의 스테인드글라스 이미지를 활용한 공연예술이 펼쳐지는 모습. 스테인드글라스가 공연예술에 접목된 좋은 사례다.

 출처 : 브라이언 클라크 스튜디오1

     


올해 2016년은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으로 미술, 음악, 연극 등 교회의 각종 문화 행사가 한창이다. 그중에서 얼마 전 명동성당 앞마당에서 있었던 순교극 ‘요셉 임치백’을 관람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야외에서 펼쳐졌던 이 극을 관람하면서 무대 바닥이나 전면 어딘가에 ‘극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영상이 펼쳐질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직업병인지 그 순간에도 무대 예술에 스테인드글라스의 빛과 이미지가 도입될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 있었다.

서양에서는 이미 공연예술에서 스테인드글라스의 독립적인 역할이 주목을 받았다. 공연예술 일부로 포함된 스테인드글라스는 배경으로서 무대미술 개념이 아닌,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존재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폴 메카트니 월드투어 공연에 선보여

영국의 대표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브라이언 클라크는 자신의 스테인드글라스 이미지를 영상작업으로 전환해 공연예술에 접목한 바 있다. 그는 1983년과 1992년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의 월드투어 공연에서 스테인드글라스 이미지를 이용한 무대미술을 선보였다. 그는 대표적인 스테인드글라스의 작품 이미지를 콜라주 형식으로 종합해 스테인드글라스 역사를 보여 주기도 하고, 자신의 작품 이미지를 영상 이미지로 제시하면서 강렬하고 인상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이처럼 공연예술과 접목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선보인 바 있다. 브라이언 클라크가 스테인드글라스 이미지를 영상으로 전환하여 제시한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선보인 작품은 스테인드글라스를 직접 무대에 도입해 빛과 색의 효과를 직접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되고 있다.

2006년 4월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열렸던 타악기 연구자 최종희의 독주회 ‘봄, 그 빛과 소리’에서는 국내 최초로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공연에 도입돼 눈길을 끌었다. 이남규, 마르크 수사 등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의 주요 작품을 제작해온 ‘유리재’의 조규석 선생은 작곡가이자 타악기 연주가인 박동욱과 최종희와 함께 타악기의 소리와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반사되는 빛의 조화를 탐색하는 공연에 참여했다. 이 공연에서는 부분적으로 강렬한 색을 넣어 제작한 1인치 두께의 달드베르(현대 스테인드글라스 기법)를 세 방향으로 길게 이어 설치한 구조물을 선보였다.

▲ 타악기 연구자 최종희의 독주회 ‘봄, 그 빛과 소리’의 한 장면.




한지와 유리화의 만남

작품은 빨강, 노랑, 파랑, 녹색 등 강렬한 색감과 무색투명한 유리의 부분들이 적절히 혼합된 형태로 이뤄졌다. 서양화가 방혜자의 시 ‘어둠과 빛’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봄, 그 빛과 소리’ 공연은 자연의 소리와 빛의 생명력을 주제로 두 연주자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여러 종류의 악기를 설치해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물소리, 곡식의 낱알이 굴러가는 소리, 대나무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악기들을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가운데 작품 전면에 설치됐던 한지 걸개 작품이 사라지면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갑자기 한순간에 모습을 드러내며 색과 빛의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황홀경을 무대 벽면 전면에 드리우게 된다. 나비의 형상 같기도 하고, 피어나는 꽃 같기도 한 추상적인 색 그림자의 갑작스러운 출현으로 자연의 소리에 몰두해 있던 관객들은 시각적인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자연의 소리와 어우러지는 빛의 극적인 연출은 보통의 어두운 그림자와는 달리 다채로운 색상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투명한 색유리 작품을 통해 극대화됐다.

이처럼 공연예술과 접목된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은 탈 장르 형태의 공연 문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영상, 퍼포먼스 등과 결합한 다양한 실험적 형태로 선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박승찬의 다시 보는 중세
고딕건축

“어, 이 분위기는 뭐지?”

공간의 무게가 느껴지는 웅장한 성당 안을 신비한 무지갯빛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어두운 색깔의 육중한 돌기둥을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들어온 다채로운 빛이 어루만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필자에게는 아직도 독일에 유학 가서 프라이부르크 대성당에 처음 들어섰을 때 느낀 빛의 신비로움이 생생히 남아 있다. 이후 유럽에서 머문 10년 동안 가는 곳마다 뾰족한 첨탑과 거대한 석상으로 장식된 고딕성당을 만날 수 있었다. 도대체 이런 고딕성당은 누가, 왜 세웠으며, 어떤 의미와 상징을 가지고 있을까?

1248년 완공된 파리의 생 샤펠 경당. 콘스탄티노플에서 선물받은 그리스도의 가시관과 십자가 조각을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 왕가 일족을 위한 2층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다.
1248년 완공된 파리의 생 샤펠 경당. 콘스탄티노플에서 선물받은 그리스도의 가시관과 십자가 조각을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 왕가 일족을 위한 2층은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다.

쉬제르 수도원장이 발견한 빛의 매력1130년경 파리 북부의 생드니 수도원성당은 당시 유행하던 로마네스크(Romanesque) 양식에 따라 건축 중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두터운 벽과 탑은 견고한 성채를 연상시킴으로써, 세상의 암흑 세력과 ‘전투하는 교회(Ecclesia militans)’의 모습을 보여준다. 생드니 수도원성당은 본체가 완성되고 제대 뒤의 반원형 부분(apse)을 짓고 있었는데, 쉬제르(Suger, 1081?~1151) 수도원장에게 새로운 영감이 떠올랐다. “이제 도시가 번성하고 온 세상이 신을 믿게 되었는데, 왜 세속과의 전투만 생각해야 할까? 우리가 받은 신의 축복을 함께 나누면 어떨까?” 쉬제르는 두꺼운 교회벽들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커다란 창문을 집어넣기로 했다. 그는 물질과 비물질의 성격을 모두 지닌 ‘빛’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통해 그리스도의 계시를 보여주고 싶었다. 1144년 완공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 빛의 ‘새로운 발견’에 모두 놀랐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전혀 다른 시대정신이 실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고딕성당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외관.
고딕성당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외관.

스테인드글라스가 표현한 신비‘로마네스크’는 로마를 닮았다는 칭찬의 의미로 쓰였지만, ‘고딕(Gothic)’이라는 단어는 르네상스 비판가들이 기괴하고 낯설다는 이유로 폄하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러나 고딕 양식은 정신적인 측면과 기술적인 측면에서 대단한 혁신을 이루었다.

쉬제르 수도원장이 설계한 생드니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특히 장미창은 이 혁신을 잘 보여준다. 쉬제르는 “어리석은 마음은 물질을 통해 진실에 이르고, 깊은 마음은 진리의 빛을 보고 다시 살아난다”고 말했다. 빛과 색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스테인드글라스는 그리스도의 계시가 인간의 정신을 비추는 것을 상징했다.

고딕 양식이 추구하던 빛의 예술이 가장 인상적으로 표현된 곳은 1248년 완성된 파리 생트샤펠(Sainte-Chapelle) 경당이다. 왕가 일족을 위한 경당의 2층으로 올라가면, 15개의 벽면을 가득 채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다채로운 빛이 쏟아져 내린다. 방문객들은 자신이 신비한 빛으로 가득 찬 보석상자 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찬찬히 둘러보면, 스테인드글라스에 성경책의 1134가지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경당 안에서 인간과 신, 물질과 비물질은 절묘하게 합일되는 경지에 이른다.

12세기 ‘전투하는 교회’ 상징
로마네스크양식 건축 탈피해

‘신의 축복’ 나누려는 뜻에서
스테인드글라스로 성경 묘사

100년간 80개 고딕성당 건축
높이 경쟁…천장 무너지기도

생 드니 수도원의 북쪽 장미창. 장미창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를 둥그렇게 감싸고 있는 장미 모양은 인간을 대표하는 성모 마리아를 형상화했다.
생 드니 수도원의 북쪽 장미창. 장미창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를 둥그렇게 감싸고 있는 장미 모양은 인간을 대표하는 성모 마리아를 형상화했다.

고딕성당에서 이루어진 기술적 혁신생 드니 성당에서 시작된 고딕 양식은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다. 곧 파리와 파리 인근(Il-de-France)부터 시작해서 영국과 독일을 거쳐, 로마네스크 전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스페인과 이탈리아에까지 퍼져나갔다. 12세기 후반부터 약 100년 동안 무려 80개나 되는 고딕대성당이 지어졌다. 이후 고딕 양식은 15세기까지 유럽 전체에서 가장 선호하는 건축양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팽창은 새롭게 번영을 이룬 도시들의 막대한 경제력을 통해 촉진되었다. 도시들은 경쟁적으로 더 높은 대성당을 건설하려고 했다. 1150년 기공된 누아용 성당은 천장 높이가 22.7m였는데, 120년 동안 거의 2배까지 치솟았다. 이처럼 경쟁 속에서 보베 대성당(1271년)은 지어진 지 12년 만에 천장이 무너지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고딕성당은 이제 각 도시의 경제적인 자부심을 표현하는 동시에 종교와 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중심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데가주망 구조’라고 불리는 건축 혁신이 정확한 역학 계산도 없이 건축가들의 체험에 의지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 모든 개혁에는 인간적인 상승욕망과 함께 신의 계시를 상징하는 빛을 더 많이 받아들이겠다는 열망이 작용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들만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고딕대성당들에서 위로 높이 오르고자 하는 열망은 끝이 뾰족한 아치, 즉 첨두아치(pointed arch)로 표현되었다. 기둥 간격에 따라 높이가 제한되는 반원아치와 달리 첨두아치를 사용함으로써 높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다. 이에 덧붙여 천장의 무게를 가볍게 하기 위해 늑재궁륭(rib vault)이라 불리는 갈비뼈 모양의 부재(部材)를 사용해서 지붕을 떠받치고 그 사이를 가벼운 소재로 채워 넣었다. 이 자전거 바큇살과 같은 작은 기둥들이 쭉 내려오면서 기존의 기둥과 연결돼 다발기둥을 이루어 역학적인 기능이 개선되었다. 또 고딕 양식에서는 빛을 더 많이 받아들이기 위해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사용된 두터운 버팀벽을 공중부벽(flying buttress)으로 대체했다. 이 기술들을 통해 훨씬 넓어진 창 안으로 엄청난 양의 빛이 쏟아져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지상에 내려온 천상 예루살렘고딕성당에는 요한 묵시록(21,9-27)에 나오는 천상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에서 차용된 상징이 많이 등장한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빛의 놀라운 기적과 함께, 우리가 나중에 받게 될 하늘에서의 영광을 체험하도록 설계되었다. 고딕성당의 수많은 첨탑들은 높게 솟은 시온산을 표현한다. 또한 십자가 모양으로 된 성당 전체의 설계는 바로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한다.

많은 고딕성당이 노트르담(Notre-Dame), 즉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고 기른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는 의미로, 종종 천상 모후의 관을 쓰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서 마리아는 자주 오해받는 것처럼 여신으로 숭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완성되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점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런 상징들을 통해 건축물은 더 이상 ‘전투하는 교회’가 아니라 ‘개선(凱旋)하는 교회(Ecclesia triumphans)’를 선포한다. 이처럼 고딕성당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를 눈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생 드니 수도원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된 쉬제르 수도원장. 1300년경 제작.
생 드니 수도원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된 쉬제르 수도원장. 1300년경 제작.

원대한 이상과 구체적인 현실을 조화시킨 고딕 양식고딕성당은 인간이 이룬 기술혁신을 통해 빛으로 채워졌고 이를 이용하여 세상을 벗어난 하늘나라에 대한 열망을 가장 훌륭하게 구현해낸 건축물이다. 이뿐만 아니라 고딕 양식은 당시의 시대정신인 온건 실재론에 따라, 개체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보편적인 이상의 중요성을 보존했다. 즉 스테인드글라스는 얼핏 외형적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의 문양이 각기 다르다. 또한 고딕성당의 조각상은 전에 비해 훨씬 더 인체와 유사하고 생동감 넘치게 표현되어 있다. 더 나아가 고딕성당은 도시의 번영과 자부심으로서, 전례공간일 뿐만 아니라 공적인 모임이나 공연이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고딕성당은 단순히 기능을 강조한 건물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정신과 그리스도교의 이념을 잘 드러낸 공간이었다.

신앙의 열기가 식은 오늘날 유럽의 고딕성당들은 신자들이 아니라 관람객들로 채워져 있다. 비록 지금의 텅 빈 성당에서는 느끼기 어렵지만, 중세인들은 신적 계시와 인간 능력의 조화를 추구했고 보편적인 이상과 개체들의 고유함을 모두 중시했다. 중세인들의 노력은 예술로 승화되어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이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 앞에서 반문하게 된다. 우리는 오늘날의 기술혁신을 통해 어떤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있으며, 이 둘 사이에는 과연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