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프랑스

프랑스 파리 오르쉐 미술관

참 빛 사랑 2010. 3. 21. 13:39

 

 

 

 

 

 

 

 

 

 

 

 

 

 

 

 

 

 

 

 

 

 나폴레옹 여기 영원히 잠들다!

 

 

 

 

 

 

 

 

 

 

 

 

 

 

 

 

 

 

 

 

 

 

 

 

 

 

 

 

 

 

 

 

 

 

 

 

 

 

 

 

 

 

 

 

 

 

 

 

 

 

 

 

 

 

 

 

 

 

 

 

 

 

 

 

 

 

 

 

 

 

 

 

 

 

 

 

 

 

 

 

 

 

 

 

 

 

 

 

 

 

 

 

 

세상의 근원 (l’Origine du monde)



File:Gustave Courbet auto-retrato.jpg
Self-portrait (The Desperate Man), c. 1843–1845 (Private collection)


나부와 앵무새, Woman with a parrot, 1866

사슴의 은신처, Plaisir Fountain, 1866

샘[泉], The Source, 1868

File:Gustave Courbet 020.jpg

The Wave, 1870

File:Courbet, Gustave - Woman with White Stockings - c. 1861.jpg

Les Bas Blancs, (Woman with White Stockings), ca 1861 (Barnes Foundation)

File:Gustave Courbet, Femme nue couchee, 1862.jpg

Femme nue couchee, 1862


오르랑의 큰 떡갈나무




















파이프를 물고 있는 남자(자화상)

부상병


File:Gustave Courbet 018.jpg

The Stone Breakers, 1849, 돌깨는 사람(1849년. 2차 대전으로 파괴)

해머를 두드리는 나이든 오른쪽 인물과 돌덩이들을 힘써 들어 올리는 젊은 남자는 시선을 돌린 채

묵묵히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다. 화면을 꽉 채운 인물들의 단순한 윤곽선과 거친 듯한 무채색의

표면으로 인해 화면에 바짝 다가선 두 인물의 현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오늘날 우리들이 보기에 이 그림에는 '건강한 노동의 모습'이라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사회적인 메시지

가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그림이 1850-51년 살롱에 출품되었을 당시에는

노동자의 모습을 화면에 당당하게 그렸다는 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되었다.

File:Courbet.jpg
Plage de Normandie. (c. 1872/1875). Washington D.C.: National Gallery of Art.
File:Courbet, Un enterrement a Ornans.jpg
Gustave Courbet, A Burial at Ornans, 1849-1850, oil on canvas, 314 x 663 cm.
(123.6 x 261 inches), Musee d'Orsay, Paris. Exhibition at the 1850–1851
Paris Salon created an "explosive reaction" and brought Courbet instant fame.[9]
File:Courbet LAtelier du peintre.jpg
The Artist's Studio (L'Atelier du peintre): A Real Allegory of a Seven Year Phase
in my Artistic and Moral Life, 1855, 359 × 598 cm (141.33 × 235.43 in), oil on canvas,
Musee d'Orsay, Paris

구스타브 쿠르베에게 「세상의 근원」을 의뢰하기도 했던 터키의 외교관

칼릴 베이가 하루는 쿠르베의 화실을 방문했다. 이때 그의 눈길을 끄는 그림이

「질투심 때문에 프시케를 쫓는 비너스」(소실됨)라는 그림이다.

그 내용은 비너스가 아들인 큐피드의 애인 프쉬케가 자고 있는 모습에 반해

넋을 잃고 바라보는 장면으로 여성간의 동성애를 나타내었다.

베이가 그림을 사겠다고 나섰으나 이미 임자가 정해져 있다고 하므로 그림을 복제해 달라고

요구하자 쿠르베가 새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약속한 작품이 바로 「잠자는 사람들」이다.

File:Courbet Sleep.jpg

Le Sommeil (Sleep), 1866, Petit Palais, Musee des Beaux-Arts de la Ville de Paris

The Sleepers, 잠자는 사람들
1866, Oil on canvas
Musee du Petit Palais, Paris.

쿠르베가 활동하던 무렵 프랑스에서 화가가 여성의 누드를 그릴 때는

신화나 전설을 핑계삼아야 가능했다.그런데 쿠르베는 레즈비언을 그리면서

아무런 핑계나 구실을 대지 않고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이것은 사실주의 화가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화풍을 다시 한 번 고집했다고 할 수 있다.

「잠자는 사람들」에서 두 여인은 서로를 사랑하느라 피곤한 나머지 깊이 잠자는 사람들에 빠져 있다.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워 잠자는 사람들든 후 여인은 무방비 상태로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

침대 위에 널려 있는 진주 목걸이와 머리 핀,탁자 위의 고급스러운 물병과 물잔,

어둠을 배경으로 빛나는 화병과 꽃 등을 볼 때 이들은 부유층에 속하는 여성들이다.

쿠르베는 사실주의 화가의 눈으로 19세기 말 파리 부유층 여성들의 실상을 가감없이 묘사하고 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머리 핀,진주 목걸이,팔찌 등은 심한 몸부림 때문에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 같다.

이것으로 짐작하건대 두 레즈비언은 서로의 클리토리스를 마찰하는 트리바비아 행위를 즐겼다고

여겨진다.그림속에 등장하는 검붉은 머리의 앞쪽 여인은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정부였던

조안나 히피넌으로 보이는데,금발의 여인을 끌어안고 다리를 올려놓은 체위로 보아

남성 역활의 레즈비언인 것 같다.

동성애는 크게 세가지 형태가 있다.

①페더라스티(pederasty) :두 사람이 사이에 나이 차가 많아

마치 아들이나 딸 같은 상대를 사랑하는 것.

②비시시즘(viscism):두 사람 가운데 어느 한쪽이 성 전환 또는 여장을 해서 평소에도 여자처럼

말하고 행동하거나 반대로 여성이 남장을 한 뒤 마치 남자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동성애를 뜻한다.

③호모필리아(homophillia):두 사람 가운데 남자나 여자 역활로 정해진 것 없이 그때그때의 상황과

기분에 따라 역활을 바꾸는 것이다.그런데 유럽의 동성애자들은 '호모필리아'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잠자는 사람들」의 경우 두사람은 나이 차가 별로 없는 것으로 느껴지므로

'호모필리아' 관계인 레즈비언들을 그린 것이라 해도 무방할 듯 싶다.

Gustave Courbet taking down a Morris column, caricature

published by the Pere Duchene illustre

18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쿠르베는 많은 누드화를 그린다.
그 가운데 터키 대사이자 수집가였던 ‘칼릴 베이’가 자신의 욕실에 걸어 놓기 위해 청탁한 그림으로
그가 쿠르베에게 부탁했던 또 다른 누드화, 바로 위에 본 서로 포옹한 자세로 잠이 든 두 여인을 묘사한 [잠자는 사람들]과 함께 그의 소장품 중 가장 백미로 꼽혔던 작품이 있다.
그 그림의 제목은 [세상의 근원]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1889년 공쿠르 형제 중 한 사람인 ‘에드몽 공쿠르’가 이 그림을 보았다고 하는데
당시 그림은 성(城)을 그린 풍경화로 가려져 있었다고 한다(이 그림은 칼릴 베이가 소장할 때부터
라캉이 소장하기까지 모두 덧대기용 그림에 가려져 있었다고 한다.)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10년경에는 ‘베른하임’이라는 사람이 구입하여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소장하고 있었고
이 그림을 1955년 ‘자크 라캉’과 그 부인인 ‘실비아 바타유’가 구입 소장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시골집에 이 작품을 놔두고 귀한 손님들에게만 보여 주었다.
그리고 초현실주의 화가 ‘앙드레 마송’에게 덧대기용 그림을 부탁했다.

마송은 당시 그의 여러 그림에서 나타났던 신화적인 이미지를
단순화한 선으로 표현한 덧대기용 그림을 그려 준다.
세상의 근원」은 1988년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박물관에서의 전시회 때
처음으로 일반관객에게 공개된 후, 상속세 대신 국가에 기증되어
1995년 19세기 미술관인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들어오게 된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잠자는 사람들]과 [세상의 근원]

쿠르베가 누구를 모델로, 어떻게 이 그림을 그렸으며 제작 시점으로 추정되는 1866년 이후

누구의 손을 거쳐 소장돼 왔는지도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위의 말한 경로도 일부일 수도 있다.

당시 터키 대사로 엄청난 부호였던 ‘칼릴 베이’의 부탁으로 그려진 것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모델도 누구인지 정확하지는 않으나 칼릴 베이의 아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는 유명한 '앵그르'의 그림 [터키 탕]을 소장하기도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위 그림을 주문하였던 터키의 전직 외교관 카릴 베이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에로틱 미술 수집가였을 것이다.
프랑스 사실주의화가 구스타브쿠르베 (1819-1877)는 이 터키인 후원자의 주문으로
일련의 에로틱한 그림들을 그렸다. 그 중에는 침대에서 잠들어 있는 레스비언 커플을 보여주는
[잠자는 사람들]과 시트로 머리를 가린 여자의 복부, 벌린다리, 생식기, 가슴, 곤두선 유두,
음모를 묘사한 [세상의 근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세상의 근원]The Origin of the World
(원 타이틀;L'Origine du monde) 1866,
Oil on canvas, 18 1/8 x 21 5/8 in. (46 x 55 cm)
Musee d'Orsay, Paris
역사책을 읽다가 보면 조금씩 미술사에 대해서도 언급이 된다.
정치사에 비해 아주 조금이지만.
오래 전에 '귀스타프 쿠르베'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의 그림 중에 [돌깨는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세상의 근원]이란 그림은 언급은 되나 도무지 그림을 쉽게 볼 수가 없었다.
쉽게 볼 수 없었던 것이 나를 더 재미있게 했지만...
도서관에서 잘 보지도 않던 미술화보집을 뒤지게 하고...
이 그림의 제목인 [세상의 근원]은 일류를 유지시키는 여성의 출산능력에 보내는 찬사이며,
또한 쿠르베의 성(性)에 대한 집착과 여성의 누드를 보는데 대한 열망을 나타내기도 한다.
춘화 외의 회화에서는 절대 그려지는 법이 없었던 음모가 묘사된 것은
주문자 카릴 베이가 이그림을 춘화로 의도했다는 증거인 동시에
쿠르베가 개척한 사실주의의 증거이기도 하다.
쿠르베는 회화에서 사실성을 엄격하게 고수할 것을 촉구했다.
이 그림이 전시되자 악평이 쏟아졌으며 화가 그리고 호색가로서 쿠르베의 악명도 높아졌다.
쿠르베는 그 당시 보수주의자에 대항하여 예술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예술가 연합'을 결성하였는데, 앙드레 질, 오노레 도미에, 마네 같은 화가들이 동참하였다.
20세기 들어오면서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세상의 근원]을 여성을 대상화시킨
대표적인 예로 간주하여 분노했지만 많은 화가들이 이 그림을 이용하고 참고 하였다.

여자의 음부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그림을 보고
섹스나 생물학적 의미만을 생각하는 이들은 드물 것이다.
이 소설은 모델인 조안나 히피넌의 회고록 형식을 빌려
‘세상의 근원’에 얽힌 의문들을 추적하면서
쿠르베의 작품과 삶의 일면을 새롭게 들춰내고 있다.

쿠르베는 자신의 삶과 작품세계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작품으로 옮긴다는 것이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과 같았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 예술의 경계를 넓히려 했고, 꿈꿔왔던 모델을 찾아냈다.
조안나는 휘슬러의 모델이자 연인이었다.
어느 날 쿠르베는 그녀에게 모델을 서 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평소 쿠르베를 믿지 못하던 휘슬러는 자존심 때문에 마지 못해 허락한다.
그러나 휘슬러는 집에 돌아와 태도를 바꾸고서 쿠르베는 상상력만으로도 색을 칠할 수 있다며
조안나에게 데생할 때까지만 포즈를 취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휘슬러의 실수였다.
그림을 그리면서 조안나는 점차 쿠르베에게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트루빌의 바닷가에서 그녀는 쿠르베의 연인이 된다.

휘슬러가 떠난 후, 조안나는 프랑스로 돌아와 쿠르베의 화실에서 지내게 된다.
그가 동료화가의 모델이었던 조안나 히피넌이었다.
조안나 역시 쿠르베를 만난 뒤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을 뜬다.
치장하지 않은 투명하고 가릴 것 없는 미.
쿠르베는 조안나에게 “당신은 몸 속에 혁명을 일으킬만한 그림을 담고 있어.
당신은 마치 회오리처럼 내 인생으로 들어왔어”라고 했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 키스를 퍼붓는 이유를 알아.
그것은 당신의 음부를 이해하기 위해서야.
그것의 끌어당김, 그것의 시, 그것의 부드러움을 이해하기 위해서야”라고도 했다.

마침내 쿠르베는 “난 네 섹스를, 너의 벌린 두 다리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조안나는 망설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지 못할게 없지만,
그것을 화폭에 담아서 영원히 고정된 상징으로 남겨두는 것은 잔인한 요구였다.
하지만 쿠르베에게 육체적인 사랑이란 그 자체가 곧 생명의 기운을 뜻한다는 이해에 이른다.
박물관에 내걸릴 목이 잘린 여인의 육체일뿐인데, 쿠르베는 “그 음부는 바로 나”라고 했다.
"남자들은 감히 성기를 그리지 않았어. 그건 바로 남자들이 거기서 나왔기 때문이지.
그들은 자기들이 나온 곳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거든…
나는 네 보물을 돌려주고 싶어. 인류에게 주고 싶어."
L’Origine du monde (The Origin of the World) is an oil on canvas painted by Gustave
Courbet in 1866. Measuring about 46 cm by 55 cm (18.1 by 21.7 inches),
it depicts the close-up view of the genitals and abdomen of a naked woman,
lying on a bed and spreading her legs.
The framing of the scene, between the thighs and the chest, emphasizes the eroticism
of the work. Moreover, an erect nipple and the redness of the vaginal lips suggest
that the model just had a sexual encounter.

“이것이 세상의 근원이다”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세상의 근원(l’Origine du monde)> 1866

지난 2001년 5월 열린책들은 크리스틴 오르방의 ‘세상의 근원’을 번역 출판했다.

당시 일간지들은 다투어 그 책을 기사화했다. 와이? 도대체 ‘세상의 근원’이란 책이

무엇을 다루고 있기에 언론들이 주목한 것일까? 2001년 5월 23일자 문화일보에 게재된

오승훈 기자의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의 삶과 작품세계’의 첫 단락을 읽어보자.

“1981년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이 사망한 뒤 그의 유품 가운데 ‘X’로 불린 그림이 있었다.

여성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이 그림은 국가에 환수돼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됐는데,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1819~1877)가 그린 ‘세상의 근원’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그림은 비밀을 담은 수수께끼 같았다. 보통의 누드와는 달랐다.”

‘정신분석학자 라캉’과 ‘리얼리즘의 대가 쿠르베’ 그리고 ‘여성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누드’는

일간지 기자에게 글쓰기를 자극하는데 충분하고도 남을 것 같다. “왜 라캉은 이 그림에 그토록

관심을 보였을까?” “쿠르베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이 그림의 모델은 누구일까?”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은 당시 터키 대사 칼릴 베이의 주문에 따라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칼릴 베이는 앵그르의 <터키탕>을 소장한 컬렉터이기도 하다.) 소문에 의하면 라캉은 1955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150만 프랑을 주고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을 구입했단다.

기사에서 읽을 수 있듯이 라캉이 사망한 뒤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은

국가에 환수되어 1995년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하신 분은 아시겠지만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은 오르세 미술관을 찾는

관객들에게 기념사진 촬영 1순위로 꼽힌다. ‘여성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누드’가 인기 짱?

물론 여기서 필자는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추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궁금하신 분은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 모델인 조안나 히피넌의 회고록 형식을 빌려 쓰인

소설을 읽으시길 바란다.

여성의 성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누드. (물론 그 그림에서 당신은 여성의 성기뿐만 아니라

유방 그리고 허벅지도 볼 수 있다) 글타!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은 모델의 부분만 화폭에 담았다.

마치 여성의 성기에 카메라가 초점을 맞추듯 그려진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은

그 적나라함 때문에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

그러나 그 충격은 오랜 시간을 필요치 않고 (특히 남성) 관객에게 관음증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적잖은 여성들은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에 대해 비판을 가할 것이다.)

와이? 적어도 필자가 생각하기에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에 관음증을 박탈할 모델의 시선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조타! 거꾸로 물어보자. 만약 쿠르베가 <세상의 근원>에, 마네가 <올랭피아>에 표현했던

모델의 시선을 그려놓았다면? 이를테면 두 다리를 벌리고 성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모델이

당신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다면, 당신은 관음증을 즐길 수 있을까?

File:La belle Irlandaise (Portrait of Jo).JPG
Portrait of Jo (La belle Irlandaise), 1865-1866, Metropolitan Museum of Art,

a painting of Joanna Hiffernan, the probable model for L'Origine du monde and for Sleep.

File:Monet dejeunersurlherbe.jpg

Claude Monet, Le dejeuner sur l'herbe, (right section), with Gustave Courbet,

1865-1866, Musee d'Orsay, Paris

File:Selbstbildnis mit schwarzem Hund.jpg

Self-portrait with black dog, 1842

Gustave Courbet - Ophelia 1842

File:Gustave Courbet Bather Sleeping by a Brook.JPG

Bather Sleeping by a Brook, 1845, oil on canvas, The Detroit Institute of Arts

File:Courbet Selfportrait.jpg

The man with a pipe Self-portrait, 1848-49

File:Die Hangematte.jpg

The Hammock, 1844

File:Gustave Courbet - Zelie Courbet.jpg

Zelie Courbet, 1847

File:Gustave Courbet 033.jpg

Portrait of Charles Baudelaire, 1848-1849

File:Gustave Courbet 031.jpg

After Dinner at Ornans, 1849

File:Gustave Courbet 002.jpg

Farmers of Flagey on the Return From the Market, 1850

File:Alfred bruyas.jpg

Portrait of Alfred Bruyas, 1854

File:Gustave Courbet 010.jpg

The Meeting ("Bonjour, Monsieur Courbet"), 1854

File:Gustave Courbet 025.jpg

The Rock of Ten Hours (to Ornans), 1855

File:Louis Guymard.jpg

Louis Gueymard(1822–1880) as Robert le Diable, 1857, Metropolitan Museum of Art

File:The Trellis Gustave Courbet 1862.jpeg

The Trellis, 1862, Toledo Museum of Art, Toledo, Ohio

File:Courbet.karoly.550pix.jpg

Portrait of Countess Karoly 1865

File:Proudhon-children.jpg

Proudhon and his children, 1865

File:Gustave Courbet 030.jpg

Sea Coast in Normandy, 1867

File:Gustave Courbet 009.jpg

The Bather, 1868,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부모와 어린이들이 그림 설명을 듣고 배우는 모습

 

 

 

 

 

 

 

 

 

 

 

 

 

 

 

 

 

 

 

 

 

오르세 미술관

(1) 설립배경

대형 기차 역사에서 미술관으로

1986129일에 개관된 오르세 미술관은 원래는 오르세 기차역이다. 지하철의 개통으로 도심지의 역으로써의 존재가치를 상실한 오르세 역은 1940년 폐쇄된다. 오랜 공백기간이 지나고, 미테랑 대통령에 의해 대대적인 보수 작업 끝에 198612월에 미술관으로 문을 열게 된다.

루브르가 유리 피라미드를 통해 자연광을 끌어들인 것처럼, 오르세의 내부는 기차 역사의 커다란 창과 32m 높이의 거대한 유리돔을 이용해 자연 채광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자연광의 변화에 따라 컴퓨터로 조정되는 인조광이 함께 어우러지는 조명은, 인상파 그림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인상파 화가들의 의도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과 사람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옛 역사의 벽에 걸려진 큰 시계는 오르세 미술관의 상징이 되었다. 관람객에게 보다 친근감을 주는 미술관으로 꾸며져, 관람과 휴식을 위한 공간이 잘 배려되어 있다. 오르세 역 식당이 현재의 미술관 식당으로, 세느강이 보이는 테라스가 있는 카페 등이 인상적이다.

 

(2) 특징

오르세 미술관은 1814~1914년까지 서양 미술계를 지배했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곳에 전시중인 작품들은 이전에 루브르미술관과 죄드뽐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작품을 이전한 것이다.작품면에서는 일반인들이 가장 친숙하게 여기는 인상파 작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이탈리아 건축가 아울렌티가 설계한 것으로 모두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규모에 비해 작품수가 많고 또 대부분이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작품이다.

전시작품은 크게 회화, 조각, 정식미술품으로 구분된다.프랑스 근대 조작가를 대표하는 아르누보 작가들의 독특한 장식미술세계와 미술관 콜렉션을 대표하는 회화작품을 대표한다.자연조명을 최대한 활용하여 작품이 갖는 원래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