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 작가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 작가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소개하였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폭력과 그에 따른 상처, 그리고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함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넘어 참된 인간다움을 찾았던 것이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은 것이다.
사실 한 작가가 다룬 주제는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이며, 신앙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다. 보통 의식하지 못하지만, 주님의 기도 후반부에 나오는 기도는 모두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다. 인간은 일용할 양식을 얻지 못하면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 인간은 죄를 지으며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 인간은 유혹과 악에 빠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 그렇기에 우리를 먹여주시고 용서해주시고 유혹과 악에서 보호해주시기를 하느님 아버지께 청하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다.
얼마 전 한 작가의 ‘괜찮아’라는 시를 읽고 깊이 공감한 적이 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가 밤마다 울어 어찌할 바를 몰라 같이 눈물을 흘리던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그날 이후로 아이는 울음을 멈추었고, 힘들 때 스스로에게 ‘왜 그래’가 아닌 ‘괜찮아’라고 하며 자신을 달래는 지혜를 배웠다고 했다.
이처럼 한 작가는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전해주며 연약함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연약함을 보듬어 안아주는 것에서 인간다움을 찾고자 하였다.
연약함은 인간의 모든 차원을 관통한다. 믿음·희망·사랑, 이 세 가지는 인간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간을 살게 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덕인 동시에 인간의 연약함으로 점철되어 있기도 하다. 인간의 연약함을 관통하기에 우리 믿음은 그토록 불안하고, 우리 사랑은 그토록 많은 상처와 눈물을 남기며, 우리 희망은 시련과 위기 속에서 휘청거린다.
그러나 그 연약함이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이며, 서로의 연약함을 보듬어 안아주는 연약함을 통해서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지금껏 그런대로 잘 살아온 것이며, 그래서 우리 자신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 안에 믿음·희망·사랑이 새롭게 움트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자랑할 것이 있다면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겠다고 하셨다.(2코린 12,5-10 참조) 하느님의 힘이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는 체험 때문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똑같은 은총을 베푸시지만, 자신을 약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수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 더욱 큰 힘을 발휘하신다. 한 작가의 말대로 ‘괜찮아’라고 말하며 연약함을 보듬어줄 수 있지만, 신앙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동정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주님의 눈길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리고 ‘괜찮아’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그렇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연약한 분이시다. 연약함은 동정의 마음이며, 그분의 연약함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며 우리를 살게 하신다. 괜찮다! 살다 보면 안 되는 게 있고, 고칠 수 없는 게 있다. 그래도 실망하지 말자. 주님께서 괜찮다고 하신다. 연약함을 인정할 수 있다면, 이제 우리는 다시 시작해도 좋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한민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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