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동구의 한 태권도장 방학돌봄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퇴근 후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 바빠
양육기관 장시간 머물 때 스트레스 증가
온가족 피곤한 상태로 저녁에 만나
퇴근 시간만 당겨져도 출산율 높아져
대한민국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48분.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하루에 48분 ‘시간제 부모’의 돌봄을 받는 대한민국 아이들의 양육 환경을 다룬 cpbc 특집 다큐(연출 전은지 / 글·구성 김현경)는 한국의 양육 환경을 시간과 정서 관점으로 조명하며, 저출산 문제를 함께 진단했다. ‘시간제 엄빠의 나라’ 다큐를 지면으로 만난다. 본 다큐멘터리는 cpbc 플러스에 공개돼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작 지원했다.
학원 뺑뺑이 돌며 부모의 퇴근 기다려
“엄마는 새벽 5시에 출근하고, 아빠는 6시 반에 출근해요.”(김한별, 초3)
“태권도학원에서 방학 특강 마친 후에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공부방에 갔다가··· 다시 태권도 갔다가 영어학원에 가요. 집에 가면 저녁 7시예요.”(서준형, 초3)
“저희 엄마가 가끔씩 말씀하시는데 엄마 아빠가 맞벌이니까 나혼자 있으면 심심할까 봐 학원을 보내신대요. 집에 가면 8시예요.”(도경민, 초3)
인천시 남동구의 한 태권도장. 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태권도장에 펼쳐진 테이블에 모여 앉아 선생님과 함께 점심 도시락을 먹는다. 방학 중 아이들은 태권도장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식사도 하고, 하루 평균 2~3군데의 학원을 오가며 부모의 퇴근을 기다린다.
남편과 함께 5살 남자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 박소현씨는 “아이와 같은 공간에 있는 시간으로 치면 2시간 반이지만 밥 차리고 틈틈이 집안일을 하는 시간을 빼면 아이와 대화하고 밥 먹는 시간은 30분 정도”라며 “아이랑 하루에 실질적으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매우 짧다”고 털어놨다. 매일 아침, 차로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출근하는 박씨는 “아이와 더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지금은 부랴부랴 퇴근해서 씻기고 재우는 것만 반복하고 있어 항상 마음이 아프다”며 “오후 4시에는 아이를 만나러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아이가 예뻐서 둘째를 낳고 싶지만 이 상황을 또 겪고 싶지 않아 낳기가 꺼려진다”고도 털어놨다.
두 아이를 출산한 워킹맘 박현정(플로라)씨는 “두 아이의 어린이집과 유치원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등 아이를 키우는 데 꼭 필요한 시간이 있는데, 한정된 휴가 안에서 잘 계산해서 써야 하는 답답함이 있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정부는 아이를 낳으라고 하지만 막상 뒷받침은 아직 많이 약하다”면서 “(육아휴직 후) 복직하고 나서 아이들을 직접 데리러 가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관찰한 맞벌이 부모를 둔 5살 도하의 하루
저출산 원인··· 일과 가정 양립의 어려움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하루 48분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OECD 국가 평균인 151분(약 2시간 30분)에 휠씬 못 미치는 수준이며, 한국 아빠와 아이의 교감 시간은 하루 6분으로 가장 짧았다. 또 올해 7월에 발표한 OECD 한국경제보고서에서는 대한민국의 저출산 원인으로 일과 가정의 병행을 어렵게 만드는 근무환경과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직장 문화를 지적했다.
2022년 기준, OECD 회원국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은 평균 연 1719시간이다. 2023년 우리나라 임금 근로자 평균은 1874시간으로, OECD 평균 보다 155시간을 더 일한다. 한 달 기준으로 봤을 때 13시간 더 많다.
노혜진(강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은 시간 빈곤 그 자체인 국가”라며 “장시간 근로로 부모들이 퇴근 후에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 자체가 길지 않다”고 진단했다. 노 교수는 “부모가 오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만 집에 있는 것은 안전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기에 아이들도 바깥에서 좀 지내다 와야 하는 상황”이라며 “온 가족이 저녁에 피곤한 상태로 만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김영훈(루카) 교수는 “보고에 의하면 아이들이 양육 기관에 있는 동안 스트레스 호르몬이 좀 높아지는데, 그 시간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결국 뇌 발달이 저하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부모들의 퇴근 시간만 당겨져도 출산율이 높아진다”면서 “문제는 직장과 집의 거리가 멀고, 아빠들이 사회 초년생이기에 열심히 일해야 하는 시기적인 입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현재 정부의 저출산 정책이 부모의 부담을 줄여주고는 있지만, 저출산 정책의 무게 중심은 부모가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갖게 해주는 것에 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부모가 빨리 퇴근해 아이를 일찍 만나고, 주말에 잔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하고 온종일 지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이전이 경기도교육연구원 부연구위원 인터뷰
“일·육아 병행하려면 일을 위한 시간 줄여야”
아이들이 원하는 양육·돌봄 무엇인지 직접 묻고 정책 반영을
경기도교육연구원 부연구위원 이전이(교육학) 박사는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일과 육아가 병행이 어려운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절대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일하는 데 보내는 시간도 써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려면 일을 하기 위해 보내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36조는 국가가 국민의 혼인과 가족생활을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가족생활을 구성하는 핵심 요인 가운데 하나가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어떤 방식으로 교육하고, 양육할지를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증거는 자녀의 행복입니다.”
이어 이 박사는 “좋은 돌봄 정책은 부모가 자녀를 어떤 방식으로 양육할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돌봄 정책도 부모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은지, 아이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돌봄을 받고 싶은지 적극적으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설문조사가 가능한 연령대의 아이들에게 이전에 받았던 양육 돌봄의 내용이나 방식이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등을 질문하는 것은 앞으로의 돌봄 정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모는 자신의 가치관과 교육관에 따라 자녀를 어떤 방식으로 양육할지 선택하고 이행해나갈 권리를 갖는다”며 “그런데 이때 부모에게 주어지는 권리는 자기결정권 측면이 아니라 자녀의 행복을 위해 부여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돌봄 정책이 맞벌이 부부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부분은 조정이 필요하다”면서 “정책도 중요하지만 가정 안에서 자녀 돌봄에 대한 공평성이 버려지지 않도록 부부가 치열하게 노력하는 부분도 필요하며, 이를 위해 노동시장도 더 관대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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