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한국 천주교회는 바티칸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참가했다. 1925년 성년(聖年)을 기념하여 열린 만국박람회는 ‘선교’를 주제로 한 최초의 종교박람회였으며 당시 한국에서 일본을 거쳐 배로 실어 보낸 출품물은 1000여 건이었다.
일제 강점기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 천주교회의 만국박람회 참가는 한국 교회사는 물론이고 한국사, 한국 만국박람회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한국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잃기까지 세 번의 만국박람회에 참가했는데 1893년 미국 시카고 박람회, 1900년 프랑스 파리 박람회, 1902년 베트남 하노이 박람회였다.
1925년은 한국 순교자 79위의 시복식이 열린 해이기도 하였으니 한국 천주교회의 박람회 참가 결정은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성년 선포와 박람회 개최는 ‘선교의 교황’으로 불린 비오 11세 교황의 결정이었다. 1924년 12월 21일 전시를 관람한 교황은 “마치 세계대백과사전 전집을 본 것 같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박람회 참가를 결정한 한국 교회 주교들은 서울 명동 주교관에 모여 어떤 물품을 보낼 것인가, 어느 정도의 예산을 집행할 것인가, 실무는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여러 차례 논의했다. 회의에 참석한 주교는 서울대목구의 뮈텔 주교와 계승권을 가진 드브레드 부주교, 대구대목구의 드망즈 주교, 원산대목구의 사우어 주교였다. 세 대목구가 힘을 모아 준비하되 출품물을 정리하고 목록을 작성하는 일은 드브레드 주교가 맡고 베네딕도회의 신부들이 돕기로 하였다.
주교들은 박람회 개최 소식을 「경향잡지」를 통해 신자들에게 알리고 각자 힘이 닿는 대로 출품하거나 헌금하도록 독려했다. 한글로 출품 목록도 작성했는데 ‘로마 박람회 출품 목록’에는 가정교육회·평양 천주당 부인회 등 단체 5곳과 개인 112명의 이름이 적혀 있고 금품 기부자는 1116명으로, 제일 많은 돈을 낸 사람은 원산대목구 신자였다.
100년 전에 작성된 출품 목록을 보면 한글로 출판된 책, 농기구, 옹기나 자기를 만드는 도구 일습, 「동국문헌록」 「진찬의궤」 등 고서, 「조선전도」 「조선리정전도」 등 지도류, 무교나 도교·불교 등 종교용품 및 경전뿐만 아니라 고분에서 발굴되었다는 골동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망라되었다. 구체적인 내력을 알 수 있는 출품물도 있었다. 「천주성교공과」는 순교자 정치도 요한의 필사본으로 양평 마룡리에 살던 그의 큰아들 정 프란치스코가 기증하였다.
정치도 요한은 내포 출신이며 1839년 기해박해 때 전주에서 순교한 정태봉 바오로가 그의 종조부다. 「선생복종」은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손선지 베드로 성인의 필사본으로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 수류(水流) 본당의 손 바오로 회장이 출품했다. 제주 홍로본당의 이필경 신부는 개가죽으로 만든 복식과 제주 해녀들의 물질 도구인 테왁, 망사리, 빗창과 아기구덕, 갈옷, 정동벌립 등 제주도의 생활사를 다양하게 볼 수 있는 물품을 출품했다.
운송 중 일본 고베에서 침수 사고를 당해 두 번의 운송 작업이 이루어졌다. 천신만고 끝에 바티칸에 도착한 우리 출품물은 박람회 종료 후 1927년에 세워진 바티칸민속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그 후 조사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히 몇 점이 남아 있는지, 보존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다. 그 과제는 우리에게 남겨진 것이 아닐까?
송란희 가밀라(한국교회사연구소 학술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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