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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승려의 황제에서 ‘교화왕’ 거쳐 ‘교황’으로

참 빛 사랑 2024. 6. 30. 19:10
 
‘Papa’(파파)와 ‘교황’(敎皇). 각각 라틴어와 한국어로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자,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곧 보편 교회 수장이다. Papa는 ‘아버지’를 뜻하는 그리스어 πάπας(파파스)가 어원이다.
 
페루지노, '성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는 그리스도', 1481~82, 시스티나 소성당, 바티칸.


‘아버지’가 ‘교황’으로 불린 사연

본래 주교 등 지역 교회 최고 장상을 일컫는 단어였는데, 중세부터 로마교구 교구장에게만 사용해 지금에 이른다. 영어로는 Pope(포프)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버지’를 뜻하는 Papa가 우리나라에서 ‘황제’를 의미 하는 교황이 된 걸까? 교황 주일(30일)을 맞아 그 연원을 되짚어봤다.

교황을 한문으로 처음 번역한 이들은 16세기 중국 내륙에 최초로 진출한 예수회 선교사였다. 미카엘 루지에리(Ruggieri, 羅明堅, 1543~1607) 신부와 마태오 리치(Ricci, 利瑪竇, 1552~1610) 신부다.

이들은 1588년 당시 식스토 5세 교황 명의로 중국 황제(명 만력제)에게 전교 허용을 요청하는 서한을 썼다. 이때 교황을 ‘도승황(都僧皇)’이라고 표현했는데, 승황은 곧 ‘승려 황제’란 뜻이다. 당시 예수회 선교사들은 머리를 깎고 불교 승려 복장을 한 채 스스로 “천축(서역)에서 왔다”고 소개했다. 일본에서 승려 지위가 높은 것을 고려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유교 국가 명나라에서는 별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이후 선교사들은 승려 대신 유생처럼 차려입고 ‘서양 선비’로 거듭났다. 그리고 선진 기술을 선보이며 식자층을 상대로 선교를 펼쳤다. 리치 신부가 1602년 제작한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도 그 결실 중 하나다. 한문으로 된 최초의 과학적인 세계 지도다.
 
1602년 제작된 「곤여만국전도」에 적힌 교황을 의미하는 ‘교화왕’(붉은선)이라는 단어. 이듬해 출간된 「천주실의」에는 ‘교화황’으로 표기된다.

교화하는 왕 ‘교화왕’에서 ‘교화황’으로

이 지도에서 교황을 뜻하는 새 단어가 등장한다. 교화하는 왕, ‘교화왕(敎化王)’이다. 승려라는 표현을 뺐지만 황제에서 왕으로 낮춘 점이 눈에 띈다. 황(皇)이 지닌 무게감을 의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진시황 이후 중화를 다스리는 천자에게만 써 온 단어이기 때문이다.

리치 신부는 이듬해인 1603년 한역 서학서 「천주실의(天主實義)」를 펴낸다. 그는 이 책에서 황(皇)을 다시 살린, ‘교화황(敎化皇)’이란 명칭을 처음 사용한다. 이 교화황이 바로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진 교황의 명칭이다. 이수광은 1614년 쓴 「지봉유설(芝峰類說)」을 통해 「천주실의」를 소개하며 조선에 천주교를 처음 알리는 동시에 이렇게 설명했다.

“그 풍속에는 임금을 교화황이라고 일컬으며, 혼인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교황의 지위를 승습(承襲)하는 아들은 없고, 어진 이를 선택하여 세운다.”

곧 중국 본토에서는 교화황을 줄인 ‘교황(敎皇)’이라는 기록도 등장했다. 1623년 출간된 세계 인문지리서 「직방외기(職方外紀)」다. 저자인 예수회 율리오 알레니(Giulio Aleni, 艾儒略) 신부는 이렇게 전한다.

“유럽 여러 나라의 왕들은 비록 그(교황)의 신하는 아니지만 모두 공경을 다하고 예의를 다하여 ‘성스러운 아버지’, ‘성스러운 스승’이라고 하고, 천주교를 대표하는 임금임을 인정하여 큰 일이 있으면 결정하지 않고 반드시 그에게 분부를 내려 줄 것을 요청한다.”

「직방외기」는 1630년 중국에 다녀온 사신을 통해 조선에 반입됐다. 성호 이익을 비롯한 많은 학자가 이 책을 읽었다. 이로써 ‘교화황’과 ‘교황’이라는 단어가 17세 중반 이미 조선에 알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영향으로 조선 신자들은 교화황과 교황, ‘교종(敎宗)’을 혼용한다.

교종 역시 중국에서 출간된 한역 서학서에 등장하는 단어다. 알레니 신부가 또 다른 저서 「척죄정규(滌罪正規)」에서 교황을 일컬은 ‘성교종주(聖敎宗主)’의 줄임말로 추정된다. ‘성교(聖敎)’는 가톨릭, ‘종주(宗主)’는 우두머리를 의미한다. 종주는 본래 중국 봉건 시대에 패권을 쥔 제후를 뜻하는 것으로, 훗날 천자와 황제로 대체된다. 속국에 대비되는 ‘종주국’이라는 표현도 여기서 유래했다.               


황사영 백서, ‘교황’과 ‘교종’ 사용

황사영이 쓴 1801년 백서에도 ‘교황’과 ‘교종’이 번갈아 등장한다. ‘교황’은 박해 시대 천주교 신자들을 문초한 기록은 물론, 조선왕조실록(헌종실록)에도 나온다. 기해박해 시기인 1839년 10월 18일자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저들은 곧 교황(敎皇)·교주(敎主)라고 칭호(稱號)를 만들어서 융적(戎狄)의 추장(酋長)과 적도(賊盜)의 괴수 같을 뿐만이 아니다.”
 
1889년 출간된 교화황륜음 표지 사진.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1889년 「교화황륜음」이 출간되는 등 한국에서는 교화황이 교황·교종과 함께 사용됐다. 1947년 「조선말큰사전」에도 교화황이 표제어로 나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황이라는 말이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