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주일 - 청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음성분회 농가를 찾아가다
▲ 청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음성분회 이용희(마태오), 김경순씨 부부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근대와 호박을 들고 희망의 미소를 짓고 있다. |
코로나19로 가톨릭 농민들이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생명농산물을 팔 수 있는 주요 판로인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명동 보름장이 막힌 까닭이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농민들을 돕기 위해 우리농은 지난 6월 24일 꾸러미 특별 나눔행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잠시 숨통이 트였을 뿐, 농민들의 위기감은 나날이 깊어져만 가고 있다. 농민 주일을 맞아 생계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톨릭 농민을 만나기 위해 충북 음성으로 향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가톨릭농민회 음성분회
음성군 대소면과 삼성면 경계에 위치한 작은 비닐하우스는 청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음성분회 이용희(마태오, 71)ㆍ김경순(70)씨 부부의 보금자리다. 딸린 식구는 개 2마리와 오골계 9마리. 자녀 삼 남매는 각자 독립해 살고 있다.
청주에서 건축업에 종사하던 이용희씨는 2013년 부인과 함께 귀농했다. 10년 넘게 암 투병으로 지친 몸을 쉬기 위해서였다. 위와 쓸개, 맹장을 잃고, 척추까지 잘라 장애 6등급 판정을 받은 그였다. 배수진의 의지로 매일 구슬땀을 흘려 마침내 1500평이 좀 넘는 농지를 가꾸는 ‘작지만 어엿한’ 농부가 됐다.
지금은 주력상품 블루베리를 비롯해 근대, 아욱, 가지, 오이, 참깨, 호박, 대파, 옥수수, 감자, 토마토, 땅콩, 대추, 블랙베리 등을 재배하고 있다. 친환경 농부답게 비료로는 오로지 닭똥을 사용한다. 경작물 군데군데 새가 파먹은 자국과 그 위를 오고 가는 노린재ㆍ거미 등 벌레들의 존재가 진정한 생명농산물임을 증명한다.
▲ 부부가 키우고 있는 작물들. |
판로 없는 생명 농산물
땡볕을 피해 쉬던 이씨는 점심 즈음 수레를 끌고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가 호박을 땄다. 종자가 달라 둥그런 놈도 있고 기다란 놈도 있는데, 하나같이 싱싱하고 때깔이 고왔다. “호박이 참 좋아 보인다”고 하자 이씨가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럼 뭐혀. 팔아먹을 데가 없어. 판로가 있으면 신나는디. 지금은 재미가 없고 힘만 드는겨.” 반대쪽에서 오이를 따며 뒤따라 오던 부인 김경순씨가 볼멘소리로 거들었다. “진짜 따면 뭐혀. 다 배릴 수도 없고. 아이고, 지겨워. 이놈의 코로나.”
매일 부부가 따는 호박·오이만 각각 40~50개. 저장성이 낮은 채소 특성상 서둘러 처분해야 하지만 팔 곳도, 사는 곳도 없다. 매년 명동 보름장 외에도 농민 주일과 추수감사절에 음성분회와 자매결연을 한 서울 불광동성당에 장터를 열었지만, 올해는 감감무소식이다. 그렇다고 공판장이나 도매시장에 갈 순 없는 노릇이다. 생명농산물이나 일반 농산물이나 같은 조건으로 값을 매기는 데다 워낙 적은 양이라 애초에 사주지도 않는 까닭이다. 이씨가 바닥에 있는 호박과 오이를 보며 망연하게 말했다.
“차로 한참씩 싣고 가야 거기서 받아주지, 우리처럼 이렇게 쬐금 갖다 주면 받지도 않여. 소농이 그래서 죽는 거여. 큰일이여.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모르겄어.”
매일 쌓여가는 채소를 처리하는 길은 두 가지. ‘주거나, 버리거나.’ 우선 그나마 이따금 주문이 들어오는 블루베리를 보낼 때 함께 담아 보내는 방법이 있다. 이씨는 “신선한 채소를 덤으로 받은 고객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도 이왕이면 제값을 받고 팔면 더 좋을 노릇. 쪼그려 앉아 감자와 호박 등을 신문지로 싸던 부인 김씨는 연신 “속상하다”고 중얼거렸다.
문제는 이렇게 처분하는 채소의 양보다 하릴없이 버리는 양이 더 많다는 점이다. 마침 마당 아궁이 앞에도 아욱과 근대가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땡볕에 말라 비틀어져 거름으로도 못 쓸 모양새다. 버려지는 채소 만큼 생활고는 심해진다. 명동 보름장이 막히면서 매달 고정수입 200~300만 원이 사라졌다. 아무리 시골에 살아도 생활비와 농자재값, 전기료, 기름값 등 100만 원은 넘게 나가는 실정. 결국, 부부는 어쩔수 없이 맏딸에게 500만 원을 빌렸다. 하지만 올해 안에 갚기가 어려울 전망이라 딸에게 미안하고 민망할 따름이다. 여러 각도로 판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신통한 대안은 없다. 계속 이렇게 되면 내년에는 농사를 포기해야 될 처지. 이씨는 “그래도 매주 기도를 하며 희망을 갖고 버티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명동 보름장 짐 풀기 전에 차를 대놓으면 사람들이 ‘청주 어딨어’ 하고 찾느라 줄 서 있고는 해. 맛있으니께 떨어지기 전에 사 놀라고. 재밌잖아, 감사하고. 계속 농사를 짓고 팔고 덤도 많이 주고 그렇게 다시 남들하고 나누면서 앞으로 살고 싶어.”
▲ 청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음성분회 총무 최순호씨가 비닐하우스에서 수박을 수확하고 있다. 최순호씨 제공 |
꺼지지 않는 희망
대소면에서 아버지와 함께 수박 농사를 짓는 가농 음성분회 총무 최순호(야고보, 40)씨도 판로가 막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비지땀을 흘리며 수박 포장을 하던 최씨는 “요즘 매일 차 몰고 수박 팔러 다니느라 농사를 제대로 지을 시간도 없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수박은 블루베리와 달리 부피가 크기 때문에 택배 판매를 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택배비ㆍ포장비ㆍ포장 인건비를 합치면 수박 1통 보내는데 7800원이 든다. 특히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가 줄어 껑충 뛴 인건비가 부담이다. 하릴없이 서울 가락시장 같은 도매시장에 팔아보지만, 마음만 상하기 일쑤다. 유기농 재배로 인해 모양이 예쁘지 않고 상처가 있다며 기형으로 분류해 값을 치러준다. 시중가격이 한 통에 보통 2만 원이라면, 최씨가 판 수박은 한 통에 3000원밖에 받지 못했다.
그는 “앞에서 남고 뒤에서 깨진다는 말이 맞다”며 농협에 땅 담보로 진 빚 3000만 원 갚기도 어려울 판이라고 토로했다. “힘만 들고 돈은 못 버는 농사가 되니까, 유기농을 포기할까 고민도 많이 돼요. 수박 가격도 올리면 소비가 줄까 봐 20년 전 그대로 가격을 매기고 있거든요. 여기에 코로나19까지 타격을 주니까 1년에서 2년 정도가 한계예요.”
최씨를 지탱해주는 건 바로 ‘하느님은 농부이시다’는 구절이다. “하느님이 농부시니까 어느 정도 고통이 있어도 이 정도로만 해주시고 앞으로는 잘해주실 거야. 그런 생각을 해요. 거기에 위안으로 삼고 희망을 품고 버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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