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교구종합

[염수정 추기경 특별 담화문] 낙태죄 헌법소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앞두고.

참 빛 사랑 2019. 4. 5. 07:42




+주님의 평화와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당신 생명을 바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묵상하는 이 사순시기가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깊이 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2년 전 시작된 낙태죄 헌법소원에 대한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2012년에 합헌 판결을 받았던 낙태죄 헌법소원이 수많은 대중들의 힘을 얻어 다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가 점점 연약하고 방어 능력이 없는 생명의 소중함을 잊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염려가 됩니다. 사실 우리 나라의 경우 낙태가 오늘날처럼 만연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급속한 경제 발전과 함께 정부가 추진했던 산아 제한 정책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40년 동안 산아 제한 정책을 실시하면서 국민들에게 피임약과 불임수술을 무료로 제공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외적인 경우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의 제정도 낙태죄가 사문화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성과 출산은 별개의 것이 되어 버렸고, 그러한 사고방식은 인간의 성행위를 무책임하고 가벼운 유희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성은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새로운 인격체가 탄생하는 자리입니다. 자녀들이 “부부애의 살 아있는 표상이고 부부 일치의 영원한 징표”(「가정 공동체」 14항)라면 부부의 성행위도 역시 사랑의 행위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성은 남자와 여자가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사랑의 일부일 경우에만 진정으로 인간적”(「가정 공동체」 11항)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낙태는 인간의 성이 지닌 사랑과 생명의 의미가 사라진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논란이 임신으로 힘들어하는 여성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관심을 증대시키는 계기가 된 것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한 배려는 낙태의 합법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여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형법의 낙태죄 조항이 아니라 낙태로 내몰리는 여러 가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낙태죄가 폐지되어 낙태가 합법적인 행위로 인정받는다면 자연히 낙태한 여성들의 아픔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와 사회는 낙태를 합법화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임신한 여성과 태아 모두를 낙태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노력하는 것이 그들의 몫입니다.



첫 번째는 출산이 여성만의 책임이 아니라 남녀의 공동 책임임을 강조해야 합니다. 그래서 남성에게도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합니다. 아울러 미혼모들이 아이의 어머니로서 떳떳하게 자녀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실제적으로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가정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사실, 낙태를 선택하게 되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적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자녀를 가진다면 부모는 낙태의 유혹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정부는 특히 저소득층 부부들의 출산과 양육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아이의 교육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안정적인 교육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세 번째, 교회와 학교에서 성, 생명, 사랑에 대해서 올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현재 많은 중고등 학생들이 배우는 피임 위주의 성교육은 성이 가진 참된 의미와 사랑의 자연스러운 결과인 임신을 당연히 피해야 하는 것으로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임교육만으로 낙태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와 학교는 더욱 적극적으로 인간의 성이 지닌 인격적인 의미와 참된 사랑과 책임을 가르쳐 자신의 성적 충동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하는 책무를 갖습니다. 여기에는 연령, 성별, 사회적 지위 등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국가는 국민 각자가 잉태되는 첫 순간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합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하셔서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께서는 부디 생명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현명한 판결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낙태죄의 존치는 가장 연약하고 방어능력이 없는 인간이라도 존중받을 수 있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이미 초대 교회 때부터 태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낙태와 유아살해가 지극히 부도덕한 행위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연약하고 무고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원을 보여주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회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금 일깨우고 죽음의 문화가 퍼지고 있는 사회에서 새롭게 생명의 불을 밝혀야 하겠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 마음을 모아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그리고 앞으로 생명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을 주님 앞에서 다짐합시다. 인간에게 참 생명을 주신 주님의 평화가 생명을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2019년 4월 2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