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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 나의 기업] (30) 김광열 아벨 (주)제이케이테크 대표

참 빛 사랑 2017. 4. 20. 21:03

직원 아끼는 사장님은 ‘의리의 돌쇠’, 일할 맛 나네




창업 이래 30여 년을 한결같은 자세로 살아왔다. 그를 보증하는 수표는 성실과 신뢰였다. 어떤 이들은 그를 ‘의리의 돌쇠’라고 부른다. 전자장비 부품 수리와 검사장비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주)제이케이테크의 김광열(아벨, 71) 대표다.



서울 구로구 디지털로31길 이엔씨 벤처 드림타워 3차 건물에 입주해 있는 (주)제이케이테크는 반도체 장비의 전자 부분 수리와 전자부품 검사장비 개발 및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사업 영역은 반도체, 엘시디(LCD), 피디피(PDP), 휴대폰, 피시비(PCB, 인쇄회로기판) 분야를 아우른다.

▲ 김광열 대표가 직원이 전자 부품을 수리하는 모습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성실과 신뢰 돋보이는 중소기업

임직원 40명 남짓한 중소기업이지만 해당 분야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성실성과 신뢰도를 겸비했다. 이를 말해 주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20여 년 전 협력업체로 삼성반도체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후 현재까지도 그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전 직원의 3분의 1이 넘는 15명이 파견돼서 일하고 있을 정도로 신뢰 관계가 두텁다.

또 다른 특징은 회사의 이직률이 2%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광열 대표는 “결혼과 출산 등으로 인해 그만둔 경우와 병역 특례로 의무 근무기간을 채우고 떠난 이들을 제외하면 이직한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회사와 직원들 간의 신뢰 관계가 그만큼 잘 형성돼 있음을 방증한다.

성실 납세자로 3월 초 제51회 납세자의 날에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한 것은 또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주)제이케이테크는 1984년 청계천에서 김 대표가 청계천 전자상가에서 일하던 전문 기술자 몇 명과 함께 ‘대건전자’라는 상호로 시작했다. 당시에 유행하던 갤러그 비디오 게임기의 회로를 개발, 설계하고 부품을 사들여 하드웨어 기판을 완성해 판매하고, 주문자 상표 부착(OEM) 방식으로 수출도 했다.

처음에는 일본을 통해 수출했으나 경쟁력이 생기면서 독자적으로 수출을 시작했다. 1987년 회사를 서교동으로 옮기고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주)재경물산으로 사명을 바꿨다. 제이케이(JK)라는 현재 이름이 여기에서 나왔다. ‘서울에서 물건을 잔뜩 선적해서 많이 수출하자’는 뜻이 담겼다.

비디오 게임 하드웨어 수출은 순조로웠다. 해마다 거의 100%씩 신장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수출하는 나라가 23개국에 이르렀고, 홍콩ㆍ독일ㆍ스위스ㆍ브라질 등 10개국에 기술자를 파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적 저작권 문제로 국제 분규가 생기고, 게임 산업이 비디오 게임기에서 컴퓨터 게임으로 옮겨가면서 회사도 타격을 받게 됐다.

“기술력만큼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진출할 제조업 시장은 자꾸 좁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기술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독자적인 개발, 국산화였습니다. 그러다가 반도체 생산 관련 장비들의 수리 분야에 진출하게 됐지요.”

1995년 삼성 반도체의 전자장비 수리 및 국산화 사업에 참여하게 된 것은 회사에 새로운 전기가 됐다. 삼성 반도체에 상주 직원을 파견했고, 1997년에는 삼성으로부터 반도체공장 수리 능력 평가와 관련해 신경영실천상 금상을 받았다. ‘국내의 모든 전자 장비는 순수 우리 기술로 수리한다’는 회사의 최고 기술력 추구 노력과 삼성의 신경영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삼성과의 인연은 반도체만이 아니라 삼성전기, 삼성전자와도 연결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자부품 검사장비 국산화 ‘고삐’

김 대표는 그러면서도 ‘모든 국내 전자부품은 국산 검사장비로 검사해야 한다’는 방침으로 검사장비의 국산화에도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휴대폰 카메라 렌즈 검사기, 광마우스 검사기, 전류 전압 용량 측정기 등 각종 검사장비를 독자적으로 개발, 제품화했고, 반도체 설비의 원격 누수감지 시스템 등도 개발했다.

이렇게 전자공학 분야의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회사이지만 설립자 김 대표 자신은 정작 이공 계열과는 거리가 먼 상고 출신이다. 경북 청도가 고향인 김 대표는 선친이 마을에 주민들을 위해 저수지까지 만들어 주었을 만큼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중학교에 다닐 즈음에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안 될 정도로 급격히 가세가 기울었다.

“돈을 벌어 야간 대학이라도 다닐 요량으로 상고(대구상고)에 진학했는데, 적성검사를 해보니 이공 계열이 90%, 경상 계열은 60% 정도로 공학 계열 적성이 뛰어났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와서 한-쿠웨이트 합작 회사 같은 곳에서 영업직으로도 일하고 했습니다만 제 적성과는 거리가 멀었지요. 30대 중반이 넘어서 회사를 설립하면서 마침내 제 적성을 찾은 셈입니다.”



신앙은 영혼의 세탁소

팔남매 중 넷째인 김 대표는 중학교 때 청도에서 먼저 신자가 된 누나를 따라 세례를 받았다. 누나의 감화로 온 집안이 가톨릭 신자가 된 후 조카들 가운데서 수도자가 3명 나왔을 정도로 집안이 모두 돈독한 신앙 가족이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죄짓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김 대표는 신앙을 “영혼의 세탁소”라고 부른다. 몸이 더러워지면 목욕을 하고, 옷이 더러워지면 세탁을 하듯이 영혼의 때가 묻으면 신앙을 통해, 믿음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 다시 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가톨릭경제인회에서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교회 활동 경험이 거의 없다. 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끝을 흐리는 김 대표.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나쁜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면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 함께하는 직원들을 내 식구로 여기는 것은 신자이기 전에 기업인의 도리”라고 강조한다. 이직률이 2%에 불과한 회사 분위기가 이를 말해 준다.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분야는 특성상 경험이 중요하다. 창업 초창기에 청계천과 세운상가에서 많은 전문 기술자가 고용주와 갈등으로 자주 직장을 옮기는 것을 봐왔기에 숙련된 기술자의 경험을 살리는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다. 회사에는 25~30년 된 직원들도 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에 청계천 전자상가에서 일했던 젊은이들이었다. 회사가 정한 정년은 57세이지만 정년과 상관없이 본인이 희망하면 계속 일하게 해준다. 그렇다고 임금을 삭감하지는 않는다. 직원 개개인의 경험과 경륜이 곧 회사의 자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나면 주모경을 바치고, 시편 23편을 가사로 한 가톨릭 성가 54번 ‘주님은 나의 목자’를 즐겨 들으며 묵상한다는 김 대표는 가톨릭경제인회에서는 자신을 낮춰 소리 없이 봉사하는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김 대표는 “한 사람이 희생해서 여러 사람이 좋아한다면, 그것이 바로 보람이고 즐거움이 아니겠느냐”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글·사진=이창훈 기자 changhl@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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