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사랑의 신앙" , " 믿음과 진리를 "추구하며!..

가볼곳?(국내)

강릉, 시간이 머무는 바다

참 빛 사랑 2017. 1. 5. 16:55


강릉바다


모든 계절이 아름다운 강릉이지만 제철을 꼽자면 아무래도 겨울이다.
화끈한 파도, 얼음 같은 물보라에 뺨을 적시며 강릉의 바닷길을 걸었다. 

위로가 필요할 때 강릉에 간다. 말 없이 말 상대를 해주는 바다, 지친 몸과 마음을 보듬는 솔숲, 이따금 정신 차리라고 뺨을 찰싹거리는 바람. 동해의 맑은 해돋이를 볼 때면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 말곤 모든 상념들이 녹아 사라진다. 며칠 뒤 서른이라, 조촐한 다짐과 기념의 시간을 만들고도 싶었다.
지체하지 않았다. 충동적으로 떠나는 맛에 기차를 먼저 잡아 탔다. 종착지는 정동진역. 밤 11시 25분에 청량리역을 출발한 무궁화호는 새벽 4시 25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검푸른 빛의 파도가 차창 너머로 밀려들기 시작한다. 이 외딴 바다가 세간에 알려진 것도 20년이 훌쩍 지났다. 더 이상 드라마 때문에 찾아오는 관광객은 없겠지만, 이 바다에 서면 언제나 TV에서 보았던 그 쓸쓸한 장면이 겹쳐 어른거리곤 했다. 작은 오두막 같았던 정동진역은 구역사를 두고 횡으로 증축됐다. 그리고 옛 건물엔 하슬라아트월드의 후원으로 초소형 미술관이 들어섰다. 미술관 밖 벽면엔 바로 그 풍경이 그려져 있다. 선로에 선 한 여인과 한 그루의 소나무. 그 여인은 <모래시계>의 혜린인 동시에 난설헌, 혹은 사임당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강릉의 바다를 지나온, 고독하지만 의연했던 여인들. 참,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더 있다. 신촌 토박이였던 이모는 30년 전에 강릉으로 시집을 갔다. 그 이래로 강릉은 ‘이모네 강릉’, 이모는 ‘강릉 이모’다. 그 시절만 해도 강릉에 가려면 구불구불 이어진 대관령 산길을 넘어 다녀야 했다. 서울에서부터 7시간은 족히 걸리던 시절이다. “사임당이 강릉에 노모를 두고 서울로 떠날 때, 이 대관령을 넘으면서 노래를 불렀대.” 엄마는 이모를 두고 돌아오는 길엔 늘 입버릇처럼 사임당의 ‘대관령을 넘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때 내 나이의 이모는 친언니에게 서울 가고 싶다는 푸념을 자주 늘어놨다. 어느덧 곱절로 나이 먹은 지금의 이모는 더 이상 서울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엊그제 제2영동고속도로가 개통해 서울-강릉을 2시간 만에 주파하는 마당이니, 이젠 다 무색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설렘과 외로움이 뒤섞인 채, 붉은 햇빛이 멀리 번져오기를 고대한다. 기다림 끝에 동이 틀 즈음, 요트 선착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나갔다. 일출은 거대한 선박의 실루엣 너머로 펼쳐진다. 흰 포말은 구름을 닮아서, 마치 하늘과 바다가 자리를 뒤바꾼 듯한 모습이다. 마그리트의 그림 같다. 그 황홀경엔 마음을 다잡을 틈도 끼어들지 않는다.

바다
바다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의 바위에는 그 나이를 가늠할 수 있는 무늬들이 정연한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도로
도로
헌화로의 우아한 커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로 손꼽히는 7번 국도의 하이라이트.


시간을 간직한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쏴아. 파도 소리가 먼 데서부터 너울거린다. 풀숲이 무성한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다. “매일 보는 바다가 뭐 좋나?” 영동 방언의 무심한 말꼬리가 귓등에 꽂힌다. 역설이다. 이 고장 사람들의 언어 습관으로 미뤄볼 때, 절대 ‘매일 보는’ 범상한 바다는 아니란 뜻이다. 한 무리의 강릉 아낙네들은 이내 성큼성큼 길을 앞질러 간다. 얼마나 걸었을까. 제법 가파른 계단이 다 끝나고 걸음이 모래흙에 닿자, 단숨에 시야가 밝아진다. “와아.”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탁 트인 망망대해, 그를 둘러싼 건 오래 묵은 해송의 밑동처럼 우아하게 뒤틀린 기암괴석들. 옥색에 가까운 물빛은 찰랑거리며 햇살에 반짝였고, 파도는 첫눈처럼 하얗게 밀려왔다. 아까의 바다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추운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이 바다의 곁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름하여 ‘바다부채길’. 정식 명칭은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다. 50년 동안 군사지역으로 통제되어온 이곳 정동진-심곡항 구간에 강릉 출신의 소설가 이순원이 붙인 명칭이다. 정동 지역의 ‘부채끝’ 지형에 늘어선 유려한 해안단구는 한반도의 융기와 일본 열도의 분리로 형성된 동해 역사의 2300만 년을 오롯이 간직한다. 해안단구란, 파도에 평탄하게 쓸린 해안이 지반 융기로 솟아오르면서 만들어지는 지형인데 이로 인해 바다가 땅으로, 땅이 바다로 변하기도 한다. 심곡리의 곰두리 단구에서 발견된 조개 화석, 해발 160미터 단구에서 나타난 매끈한 자갈층이 이 지질 활동의 증거다. 이미 2004년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지정된 이곳은 한반도 생성의 역사뿐 아니라 지질 구조, 해수의 침식 등을 관찰할 수 있는 연구의 보고다. 이런 이유로 지질학자들은 <모래시계>보다 훨씬 먼저 정동진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여기엔 전설이 깃든 바위도 많다. 바다에 떠내려가는 여인의 화상을 건져다 안치하고 서낭당을 만들었다는 민담이 전해오는 부채바위, 강감찬 장군이 발가락 6개의 대호를 물리쳤다는 일화를 간직한 투구바위가 대표적이다.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이들 바위는 존재감만으로 충분히 바다부채길을 장악한다. 돌 위의 오묘한 요철들은 저마다 극적인 표정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끌로 섬세하게 벼려놓은 듯한 바위의 결들은 아침 햇살을 받아 한결 도드라지게 빛난다. 이따금 “윙” 하고 불어오는 날카로운 해풍은 이 장면을 바짝 고조시킨다. 
정동진 썬크루즈 리조트 주차장 방향에서 출발하는 길의 도착점은 심곡항이다. 이곳 심곡에서부터 빨간 등대가 있는 금진항까지 이어진 7번 국도의 별칭은 ‘헌화로’다. 신라 향가 <헌화가>에서 딴 이름인데, 그 가사는 이렇다. “자줏빛 바위 가에 /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성덕왕 때, 수로 부인이 소 끌던 노인에게서 가파른 바위에 핀 철쭉을 건네 받곤 해룡에 물려갔다는 신비로운 이야기. 강릉 이모의 표현을 빌리면 ‘0마트 가는 길’인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첫손에 꼽히는 도로다. 드라마 <시그널>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해 감동을 증폭시킨 명소이기도 하다. 헌화로를 찾는다면 알아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맑은 날에도 도로는 늘 비 온 뒤처럼 젖어 있다는 사실. 두툼한 바위도 훌쩍 뛰어넘는 풍랑 때문이다. 파고가 높기 때문에 물보라가 차창을 적시는 일도 부지기수다. 멀찌감치서 구경하기엔 속이 뻥 뚫리듯 장쾌한 풍경인데 말이다. 현란하게 굽이치는 도로를 타고 내려가면 머지않아 금진항이다. 금진은 강릉이 숨겨둔 아름다운 해변이다. 어릴 적엔 매년 여름마다 이곳에서 물놀이를 했다. 여기서 좀 더 내려가면 옥계해수욕장이 있는 옥계면에 닿는다. 거기서 한 끗만 더 움직이면 곧장 동해시 망상해수욕장으로 넘어간다. 비로소 강릉의 끄트머리다.

벽화
벽화
주문진항 인근에서 발견한 벽화의 귀여운 터치.

방파제
방파제
방파제를 뚫고도 들이닥치는 파도들. 아들바위공원.

크러쉬 타운
크러쉬 타운
서핑과 요가를 한데 즐길 수 있는 복합레저공간 크러쉬 타운의 산뜻한 인상. 

물새
물새
주문진항에 정박한 배의 머리에 물새가 앉아 쉰다. 수산시장 주차장 옥상에서 그걸 내려다본다.


펄떡거리는 주문진 바다
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어쩐지 바닷바람 안주 삼아 낮술을 하고 싶은 날. 강릉 사람들은 그런 날에 주문진을 향한다. 탱탱한 오징어와 제철이라는 도루묵이 잔뜩 펼쳐진 수산시장에서 소주 한잔 홀짝이기 위함이다. 주문진항의 한낮은 유독 아름답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에 닿거든 제일 먼저 주차장 옥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 위에 서면 항구의 파노라마 전망을 한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난간에는 균일한 간격으로 나앉은 갈매기 떼가, 발아래로는 수십 개의 알전구를 흔들거리며 정박한 오징어잡이 어선이 있다. 한낮의 하얀 볕이 스민 주문진 앞바다는 나폴리나 마르세유 못지않은 찬란함으로 이방인을 홀린다. 주차장에서 내려와 위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곧 수산시장이다. 도루묵찌개를 먹을까, 문어 데친 걸 먹을까 실컷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은 엉뚱하게도 오징어회다. 초장집에 갓 뜬 회를 펼쳐놓고 술잔을 채우는 일만으로 이렇게나 마음이 흡족하다. 삶의 즐거움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주문진까지 왔으니 아들바위도 보고 간다. 쉽지 않은 걸음을 한 서울 촌것들이라면 더더욱 챙겨봐야 할 장관이다. 탐방로를 형성한 ‘아들바위공원’은 소돌해변 인근에 위치한다. 자녀가 없던 노부부가 이곳에서 치성을 드린 끝에 간신히 아들을 얻었다는 지역 설화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 영험함은 지금도 유효할까? 이곳에선 “백일기도를 드리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미신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어 젊은 부부들의 방문이 잦다고 한다. 썩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들바위의 기묘한 만듦새를 관찰하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다. 바다부채길의 바위와는 달리 좀 더 비정형적이면서도 꿈틀대는 듯 활달한 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버드나무 브루어리
버드나무 브루어리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1층 정원. 낡은 양조장을 재활용한 공간이 독특한 결을 이룬다.

난설헌 생가
난설헌 생가
난설헌 생가,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옮아가는 풍경. 다도 체험장에서는 자수 전시가 한창이었다. 

명주예술마당
명주예술마당
강릉의 예술가들을 만나고 주민들과 교유할 수 있는 사랑방, 명주예술마당. 

허난설헌 생가
허난설헌 생가
난설헌 생가,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옮아가는 풍경. 다도 체험장에서는 자수 전시가 한창이었다. 


강릉의 옛 도심에서 경포까지
대관령, 미시령, 한계령. 험준한 고개들 덕분에 강릉은 더디게 변화해왔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대형마트 대신 중앙시장과 남대천 새벽시장이 강릉 시민들의 밥상머리를 책임지고, 멀티플렉스 대신 터줏대감 신영극장이 명맥을 이어온 도시다. 지금이야 대형마트도, 멀티플렉스도, 프랜차이즈 커피집도 다 들어와 있지만 여전히 강릉 사람들의 곁을 지키는 건 시간이 묵은 오래된 공간들이다. 강릉 시내 한가운데에 자리한 동네 명주동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명주는 강릉의 옛 이름이다. 신라시대 때 그 지명이 불리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강릉의 역사도 출범한다. 국보 51호인 임영관삼문, 통칭 강릉관아객사문은 그 유구한 역사를 지켜보아 왔다. 고려 태조 때 지어진 강릉 객사와 관아는 오늘날 객사문과 칠사당만 남고 모조리 헐렸다. 이것을 얼마 전 ‘강릉 대도호부 관아’라는 이름으로 복원하고 도시의 기틀을 새로이 닦았다. 거기서 좀 더 올라가 자리한 임당동성당을 비롯, 여러 근대 문화 유적을 발굴하면서 강릉 구도심은 활기를 되찾았다. 폐교였던 명주초등학교 부지를 활용해 문화 교류 공간인 ‘명주예술마당’을 만든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홍제동으로 좀 더 들어가면 옛 막걸리 양조장을 개축해 만든 맥주 공장도 하나 등장한다. 그 이름은 버드나무 브루어리. 1926년 일제강점기에 ‘강릉합동양조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어진 이 건물은 2014년까지 ‘강릉탁주공장’으로 운영돼왔다. 90년이 흐른 뒤, 젊은이들은 이 건물을 개축해 감각적인 브루어리 & 게스트로 펍으로 부활시켰다. 1층은 통유리 너머로 양조 과정을 볼 수 있도록, 2층은 탁 트인 테라스 너머로 홍제동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꾸몄는데, 오랜 시간 동안 닳아 뭉개진 흔적과 거뭇거뭇한 얼룩들은 모두 그대로 남긴 채다. 국화, 솔, 쌀, 오죽, 창포 같은 한국적인 재료로 강릉의 맥주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들은 강릉시 사천면 미노리에서 수확한 쌀로 빚은 ‘미노리세션’ 등 기발한 결과물을 내어놓았다. 맛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취기가 다 가시기 전에 경포를 향했다. 예로부터 경포에는 5개의 달이 뜬다고 했던가. 하늘에 뜨는 달, 호수에 뜨는 달, 바다에 뜨는 달, 그리고 술잔에 뜨는 달. 선비들이 이처럼 한가로이 술맛과 낭만을 논할 때, 규방에 들어앉아 넘치는 영감을 속으로 삭이기만 했던 여인이 있다. 초희라는 이름으로 보낸 강릉에서의 어린 시절, 그는 이미 자신을 신선계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를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열다섯 살 나이에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 불행하게도 그 문기와 천재성은 점차 쇠락하기 시작한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미고 /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 기대었구나 / 부용 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 달빛 서리 위에 차갑기만 해라’”
꽃떨기 같은 시를 남기고 스물일곱 살로 숨을 거둔 그의 삶은 경포 옆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강릉에 오면 늘 마지막 코스로 허난설헌 생가 터를 복원한 허균허난설헌기념관엘 들른다. 이곳엔 허씨 문중에서 남긴 뛰어난 글줄을 읽을 수 있는 문학관도 있고, 차 마시고 자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다도 체험방도 있고, 무엇보다 국화와 들꽃이 우거진 앞뜰과 아름드리 해송이 늘어선 숲이 있다. 그 고즈넉한 풍경에 함께 고여 있고 싶어서 잠시 벤치에 엉덩이를 걸친다. 푸르렀을 솔잎은 뉘엿뉘엿 떨어지는 햇빛 틈에서 노랗게 물들어간다. 머지않아 이 솔숲은 허리춤까지 함박눈으로 잠길 테지. 그러고 나면 파도 소리 들려올 만큼 고요해지겠다. 새로운 계절이 또 오래 머물다 가겠다. 


에디터 강은주
포토그래퍼 전재호
취재 협조 강릉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