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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의 장조차 열리지 못해… 21대 국회로 공 넘어가

참 빛 사랑 2020. 4. 17. 20:45

낙태죄 헌법불합치 1년, 그동안 변화와 가톨릭교회의 대응

▲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이들이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태아는 생명이다’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생명 존중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11일 형법이 규정한 낙태죄와 관련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며 사실상 낙태죄를 폐지한 지 1년이 지났다. 헌재의 판결 근거는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형법 조항이 태아의 생명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 반대 100만인 서명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여 온 가톨릭교회와 생명운동가들은 당시 헌재 판결에 강하게 반발하며, 태아를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서울대교구장이자 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헌재 판결 직후 사목 교서 ‘인간 생명은 다수결로 결정될 수 없다’를 발표하고 헌재 결정이 더 많은 여성과 태아를 낙태 위험에 처하게 할 것을 우려했다. 염 추기경은 “생명은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적으로 보호돼야 하는 것으로 다른 권리들과 동등하게 바라볼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낙태죄는 올해 말까지 유효하다. 헌재는 1년 전 판결에서 2020년 12월 31일까지 시간을 주고 입법자들에게 새 법안을 주문했다. 20대 국회에서 거론된 대체 법안은 이정미(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뿐이었다. 이 의원은 임신 14주 이내에 낙태를 가능하도록 한 모자보건법 개정안과 낙태죄 규정을 삭제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29일이면 이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자동 폐기된다.

낙태죄 폐지로 이를 대체할 새 법안은 21대 국회로 공이 넘어간 셈이다. 정부와 국회는 헌재 판결 이후 1년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올해 초부터 코로나19와 4ㆍ15 총선으로 모든 이슈가 묻혀 토론회와 같은 논의의 장조차 열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낙태 반대에 앞장서 온 프로라이프 의사회 차희제(토마스) 회장은 “낙태를 찬성하는 여성계와 진보 진영 측에서 새 국회가 구성되면 즉시 대체 법안을 낼 것으로 예상한다”며 “생명 운동가들도 이에 대항하는 법안을 다양하게 준비해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톨릭 생명운동을 지지하는 윤형한(야고보) 변호사는 “뜻을 같이하는 법조인, 학자들과 함께 단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방향으로 대체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헌재는 낙태 허용 기간을 임신 22주로, 이정미 의원은 임신 14주로 언급했는데 이 기간을 최대한 줄이고, 산모가 낙태 전 반드시 상담을 거쳐 숙려 기간을 두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재의 낙태죄 폐지 판결 이후 가톨릭교회 내부에선 성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낙태 반대를 외치는 일도 중요하지만 임신한 모든 여성,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미혼부모가 보호받고 지지받을 수 있도록 실질적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 종교를 떠나 생명 수호에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연대해 생명 수호 운동 저변 확대에도 더욱 적극 나서야 한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박정우 신부는 “낙태죄 폐지 여부와 상관없이 한 생명을 없애는 낙태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라며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순간부터 인간 생명을 보호하는 가톨릭교회의 노력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