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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선종- 교황과 한국 교회] 교황, 세월호 아픔 위로하고 124위 시복의 기쁨 안겨줘

참 빛 사랑 2025. 4. 28. 14:36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시복미사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순교자의 시복을 선언하며 무대 양 옆 전광판에 124위 복자화가 공개되자 신자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DB
014년 8월 16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미사에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영오씨로부터 편지를 받고 있다.

즉위 1년 반 만에 분단의 땅 찾아
세월호 참사로 침통한 한국민 위로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 전해
아시아 청년들 만나 용기와 희망 당부


124위 시복식, 그리고 소박한 행보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미사 거행
열차와 소형차 타는 등 검소한 사목





‘일어나, 비추어라!’(이사 60,1)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방한할 때 예루살렘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이 말씀을 주제로 삼았다. 우리 사회는 그해 4월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따른 아픔과 상처로 전국민이 애도하는 침통한 분위기 속에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픔과 고통 속에 신음하는 한국 국민들을 어루만지고자 6월 방한을 공식적으로 결정했다. 교황은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당신 빛을 기쁘게 받고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가득 찬 삶으로, 또 복음의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이도록 초대하신다”며 아시아 첫 사목지인 한국으로 향했다.


슬픔에 잠긴 사회 어루만진 교황

지난 2014년 8월 14일 오전 10시 15분 경기 성남 서울공항. 로마에서 출발한 지 11시간 만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땅을 밟았다. 교황 즉위 1년 반 만에 한국을 찾아 8월 14~18일 4박 5일 100시간 동안 한국 교회·국민들과 함께했다. 교황의 방한은 사상 세 번째로 1984년·198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이었다.

그가 아시아 첫 사목 방문지로 한국을 택한 것은 한국 교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물론 분단과 세월호 참사로 아픔을 겪는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정신을 심어주려는 뜻에서 비롯됐다. 교황은 도착한 뒤 청와대 충무홀에서 열린 공직자들과의 만남에서 “이 민족의 유산은 오랜 세월 폭력과 박해와 전쟁의 시련을 거친 것”이라며 “우리는 우리가 희망하는 이 목표들을 한국 국민만이 아니라 모든 지역과 세계를 위해 결코 좌절하지 말고 추구해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교황은 방한 시작부터 끝까지 평화와 화해를 노래했다. 이때 교황이 걸친 흰 제의에는 한국에서 선물 받은 두 개의 배지가 달려있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과 나비 모양의 배지였다. 일정 내내 교황은 이 배지들을 패용했다.

“저는 이번 한국 방문 기간 내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실종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았습니다.”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124위 시복미사 뒤 교황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천막을 방문했다. 이때 단식농성을 이어가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만나 위로를 건넸다. 당시 김씨는 교황에게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라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부탁하며 편지를 전달했다. 교황은 김씨의 편지를 수단에 챙겨 넣으며 그를 위로했다. 김씨는 이후 가톨릭에 귀의해 세례를 받았다.

당시 광화문 시복미사에 참석했던 김남훈(비오, 40)씨는 “교황님께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을 때 전광판으로 광경을 지켜보면서 울컥하고 가슴이 벅차올랐다”며 “유가족분들에게 직접 세례도 주셨다는 얘기를 듣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으로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분이시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교황은 방한 나흘째였던 8월 17일 따로 시간을 내 세월호 유가족을 면담했다. 안산 단원고 학생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를 숙소인 주한 교황대사관으로 초청해 직접 세례를 베풀었다. 교황은 세례식에 배석했던 수원교구 안산대리구장 김건태 신부에게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실종자들을 위로하는 자필 편지를 써 “위로의 마음을 꼭 전달해달라”고 간곡히 당부하기도 했다.

바티칸으로 귀국하는 비행기에서도 노란 리본을 빼지 않았다. 한국을 떠나더라도 늘 세월호 희생자를 위로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징표였다.

“인간의 고통에 관해서는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아시아 청년들에 “용기 가져라!”

교황은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AYD)에도 참여했다. 지역 청년대회에 보편 교회 수장인 교황이 참여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교황은 성 김대건 신부 생가가 위치한 솔뫼성지에서 아시아 22개국 청년 6000여 명과 만나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청년들의 쇄도하는 ‘셀카’ 요청에도 스스럼없이 휴대전화 카메라 앵글 속에 들어가 포즈를 취했다. 이날 만남에서 교황은 준비한 연설문을 치우고 30분간 즉흥 연설을 했다.

제6회 AYD 주제는 ‘젊은이여 일어나라! 순교자의 영광이 너희를 비추고 있다’였다. 교황은 폐막 미사에서 아시아 젊은이들을 향해 용기와 희망을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갈 것을 당부했다.

“일어나십시오, 가십시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계속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하느님 우리 하느님이 복을 내리셨습니다.(시편 67,6) 그분으로부터 우리는 자비를 입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아시아의 젊은이들이여, 일어나십시오.”

“아시아에 살고 있는 젊은이로서, 이 위대한 대륙의 아들딸로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회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 신앙의 지혜를 불어넣으십시오.”


소박한 방한 일정 당부

교황은 생애 기간 소박함과 청빈을 강조하며 자신의 시선과 삶도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다. 공식 거처도 교황 사도궁이 아닌 산타 마르타의 집이었으며, 방한 때에도 일정을 소박하게 짤 것을 당부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사제 때부터 ‘BMW’, 즉 B(버스)+M(지하철)+W(걷기)를 좋아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일 때에도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로마에서도 교황청 수행원들과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는 걸어 다닐 만큼 소박하게 사목했다. 방한 당시에는 차량도 KIA 쏘울을 탔다. 교황은 거리를 지날 때마다 창문을 열고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등 소탈한 면모를 보였다. 첫 번째 공식적 이동지인 대전에 갈 때는 헬기가 아닌 KTX 열차를 이용했다. 당시 교황은 “느린 기차는 타 보았어도 이렇게 빠른 기차는 처음 타 본다. 아주 좋다”며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였다.

교황은 청년들에게도 행복은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만일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그 행복은 결국 날아가 버립니다. 마지막에는 사랑의 기쁨, 사랑의 행복만이 유지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의 길은 단순합니다. 이웃, 형제자매, 특별히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