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필 때 생각나는 에밀 타케 신부

벚꽃은 봄의 상징이다. 크고 아름다운 벚꽃이 피는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제주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왕벚나무를 일본의 국화(國花)로 오해한다.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임을 밝혀낸 이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에밀 타케(Emile J. Taquet, 1873~1952) 신부. 에밀 타케(한국명 엄택기) 신부는 1898년부터 50여 년간 제주도와 부산, 목포, 대구 등지에서 사목했다.

그는 식물학자였다. 타케 신부는 1908년 4월 제주에서 사목하던 때 관음사 경내에 있는 왕벚나무(천연기념물 제156호)를 발견하고 독일 베를린대 코헤네 박사에게 채집 표본을 보냈다. 유럽학계에 왕벚나무 원산지가 한국임을 최초로 입증한 것이다. 그의 이름을 따 종명으로 명명된 식물만 15개에 이를 정도로 타케 신부는 한국 식물 분류학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척박하고 열악했던 신자들의 배고픔을 덜어주고자 일본에서 온주밀감을 들여와 제주도에서 재배함으로써 오늘날 제주도를 밀감 산지로 개척했다.

1902년, 젊은 타케 신부가 처음 제주 땅을 밟을 당시에는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1901년 ‘신축교안’으로 불리는 천주교인과 제주도민의 큰 충돌의 아픔이 가시지 않았던 시기다. 많은 신자들과 선교사가 신축교안으로 희생됐고, 갓 걸음마를 뗀 제주교회는 곧장 침체기를 맞았다.
타케 신부는 제주에 사목한 13년 동안 사랑의 힘으로 교회를 서서히 키워 나갔다. 고압적인 전임자들과는 달리 제주 사람과 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했다. 먼저 외진 하논 분화구를 벗어나 사람이 많은 홍로마을에 초가 성당을 세웠고 특유의 포용력으로 열성적인 사목에 나선 결과 신축교안 직후 반토막 났던 신자 수는 10년 뒤엔 네 배 넘게 늘어났다.

타케 신부가 한라산을 누비며 식물채집에 나서고, 식물표본을 만들어 판 것은 부족한 선교자금을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제주와 한국을 사랑한 ‘진정한 목자’는 1952년 선교 종착지로 삼은 대구에서 선종, 대구대교구청 성직자 묘지에 묻혔다.
타케 신부가 선종한지 70년이 넘었지만, 한국에 대한 그의 사랑은 봄이면 왕벚나무를 통해 거리 곳곳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