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사람들
[신앙단상] 바흐의 칸타타(손일훈 마르첼리노, 작곡가)
참 빛 사랑
2025. 4. 19. 11:58

언제부터인지 세상이 어지러워졌다. 나이가 들면서 챙겨야 할 게 많아지고 관심도 생각도 늘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정말 이 시대가 혼란스러운 걸까. 전 세계적으로 질병·재해·전쟁 및 경제·정치적 혼란 등 온갖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으니 어떨 때는 뉴스를 보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 관계나 일상 아픔과 이별같은 일에도 한없이 나약해지는 게 우리 인간인데, 불의의 사고나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엔 정말 주님이 어디 계신지,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지 한탄스럽다.
이럴 때 찾아 듣는 곡이 있다. 바흐가 독일 바이마르에서 궁정음악가로 활동하던 1714~1716년 같은 궁정 소속 시인이었던 살로모 프랑크의 시에 붙인 칸타타다. 바로 ‘Mein Gott, wie lang, ach lange, BWV 155’. ‘주님, 얼마나 오랫동안, 아, 얼마나 오랫동안’으로 번역할 수 있는 이 곡은 다른 작품과 달리 고통스러운 감정을 호소하는 소프라노의 레치타티보(서창, 敍唱)로 시작하면서 극적인 연출을 자아낸다.
“주님, 얼마나 오랫동안, 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이까? 고난과 걱정은 끝이 보이지 않고 당신의 자비로운 눈길은 밤과 구름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사랑의 손길도 사라지고, 위로는 멀기만 하나이다. 눈물의 잔은 가득 차고 기쁨의 포도주는 말라버렸으며, 신뢰마저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이에 알토와 테너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주님을 믿고 기다리라’는 내용의 아리아를 부른다. 바흐는 바순 연주자의 뛰어난 실력을 이 곡에 드러냈는데, 소박하고 아름다운 이중창과 어우러지는 독주 악기의 반주가 마치 공감하고 용기를 주는 듯하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도우실 가장 알맞은 순간을 알고 계시며, 이 어두운 시간이 지나면 그분의 사랑이 온전히 열릴 것입니다.”
베이스가 이어서 노래한다. “그러니 영혼이여, 마음을 가라앉혀라. 비록 주님께서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그분은 머지않아 쓴 눈물 대신 위로와 기쁨의 포도주를 (중략) 마침내 위로로 남겨두실 분이시니 영혼이여, 모든 일에 그 뜻을 따르라.” 도움을 간구하던 소프라노는 노래한다. “내 마음아, 지극히 높으신 주님의 사랑 안으로 스스로를 온전히 내맡겨라. 지금껏 너를 짓눌렀던 모든 걱정과 짐을 그분의 자비로운 어깨 위에 올려놓아라.” 밝은 장조의 이 아리아는 날개 달린 천사들의 위안으로 살짝 가벼워진 마음을 표현하는 부점리듬과, 그럼에도 아직 풀리지 않은 현실을 나타내는 듯한 어두운 부분을 번갈아 보여준다.
마지막 합창 가사는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주님이 외면하시는 듯 느껴질지라도 낙담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가장 가까이 계실 때일수록 오히려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시는 법이니까요. 비록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아니오’라고 말하더라도, 두려워 말고 그분의 말씀을 더욱 굳게 붙드십시오.”
이 칸타타는 개인적 고통뿐만 아니라 집단적 불안과 슬픔, 세상의 비탄 속에서 찾는 신앙과 희망·인내를 이야기하기에 지금처럼 전 세계가 혼란스러운 시점에 들어볼 만하다. 특히 ‘주님의 사랑이 숨어 있는 듯 보일지라도, 그분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는 메시지가 거대한 불안 속의 무기력함을 위로해준다. 능력 밖의 일이라면 의지할 곳도, 탓할 곳도 주님뿐인 나약한 인간이기에 우리는 매번 그 존재를 찾게 되는 걸까?
손일훈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