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생활

침묵의 고요 맛보려면 어색함과 산만함의 계단 내려가야

참 빛 사랑 2025. 2. 26. 15:15
 
온갖 상황과 감정을 마주하느라 시끄러운 삶 속에서 사는 현대인에겐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침묵은 점점 나의 마음을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하게 해주며, 바깥의 분주함마저도 멈추게 해준다. OSV

요즘 우리에게 너무 당연하고도 익숙한 습관이 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 말이나 꺼낸다.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에 대한 나의 감정에 오해가 생길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다.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를 하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으면 그 짧은 순간의 침묵이 어색해 그냥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함께 있던 상대가 화장실에 간다고 잠깐 일어서면 역시 자동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있으면 “어디 아파요?” “화났어요?” 하면서 다그침을 받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라도 아무 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침묵이 마치 나라는 존재를 사라지게 할 것 같은 불안감을 느낀다.

“말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말한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침묵은 가장 탁월한 소통법이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침묵이 불편하다. 디지털 일상은 ‘즉각적 반응’의 습관을 만들어낸다. 실시간 수시로 확인하는 SNS는 끊이지 않는 소통의 일상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늦거나 반응이 없다면 엄청난 오해가 생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소셜미디어의 소통을 통해 타인의 반응과 시선에서 내 존재를 규정한다. 그렇기에 침묵은 외롭고 불안하고 슬프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다면 말이다. 얼마 전 9일 피정을 다녀왔다. 물론 디지털 기기 없이 아무 말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침묵 피정이었다. 기도와 산책으로 하루를 보낸다. 밥을 먹을 때에도, 누군가 복도에서 마주쳐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물론 첫날은 머릿속이 시끄럽다. “어떡하지? A씨에게 연락을 하고 왔어야 하는데⋯.” “그 일은 제대로 진행될까?” 생각은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말은 하지 않지만,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에 온통 소리로 가득하다. ‘참 시끄럽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때 드는 생각은 침묵은 오히려 내면의 소란스러움을 더 크게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침묵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머릿속 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려온다. 그러면서 점점 소리와 만난다.

물 위에 뜨기 위해서는 힘을 빼고 자신을 맡겨야 하듯 내면의 침묵과 고요함을 누리고 싶을 때엔 침묵의 물 위에 나를 온전히 내어 맡겨야 한다. 머릿속 산만함과 아우성을 바라보면서 계속 침묵 속에 머문다. 그러다가 오만 가지 생각 속에서 내 안의 좌절·결핍·분노·짜증·불평·두려움을 마주한다. 그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바라본다. 그러다 보면 그냥 내가 좋고 이 순간이 좋다. 나를 옭아맸던 외부 시스템과 그물망에서 벗어나는 느낌이다. 세상에 나 홀로 온전히 존재한다는 느낌이 불안감이 아닌 평온함으로 다가온다. 자유롭고 고요하고 행복하다.

침묵 속에서 뇌는 무의미한 정보처리를 멈추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도록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과거를 돌아보고 성찰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가능성이 커진다. 침묵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스트레스 회복에 도움이 된다. 임케 키르스테(Imke Kirste)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침묵 자체가 뇌의 신경세포 성장을 촉진한다고 한다.(신경과학 저널 「Brain, Structure and Function」에 발표된 논문, 2013) 백색소음이나 자연 소리나 음악보다 완전 무소음 상태인 침묵이 기억력과 창의력 향상을 가져다주고 뇌의 건강과 정서적 안정과 성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고요한 환경에서 깊은 통찰을 얻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순한 휴식이 아닌 의식적 침묵인 명상이나 기도가 편도체의 과잉반응을 줄여주고 감정을 차분하게 조절해준다. 침묵은 뇌의 회복제다. 침묵을 못 견디게 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침묵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온전히 나 자신에게 정성껏 주의를 기울이자. 평소에 늘 빠르게 움직였던 나의 행동은 자연히 느려지고, 조급했던 마음은 어느 순간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해진다. 이런 상태에서 밖에 나가면 요란스럽게 언쟁을 벌이는 사람들을 만나도 한 폭의 수채화처럼 평화롭고 부드럽게 다가온다. 고요한 내면의 침묵은 바깥의 분주함마저도 멈추게 한다.



<영성이 묻는 안부>

침묵하려면 일단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외부의 속도와 내면의 조급함을 줄이고 멈춰 머물러야 합니다. 좀이 쑤시는 산만함을 이겨내면서 머무르면 좋겠습니다. 그 머무름이 나의 내면으로 내려가게끔 이끌어줍니다. 한 발씩 한 발씩. 늘 빠르게 움직이던 행동이 느려지고, 쫓기듯 조급하던 마음이 어느 순간 잔잔해집니다. 침묵은 내면의 고요함에 머물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마음의 먼지가 씻겨 나가고 머릿속 생각들이 여물어가지요.

침묵의 고요는 평화롭고 맛있습니다. 단, 그 맛을 보려면 어색함과 산만함의 계단을 내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계단으로 내려가는 문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홀로 가만히 있을 때 살짝 열립니다. 무엇보다 침묵은 내면의 고요함에 머무는 것이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그 자비로운 시선으로 또 나를 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