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민 사목을 7년째 하고 있는 나는 이주민들의 어려움을 알기에 한국어를 최대한 쉽게 풀어 이야기하는 버릇이 생겼고, 가능하면 입으로만 말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손을 써서 제스처를 더한다.
그리고 가끔 이분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을 고쳐주기도 한다. 인종과 종교·문화가 정말 다양한 이주민들이 자신의 고민 상담시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잘 모를 때가 있다. 선생님까지는 괜찮은데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저는 월급 주지 않으니 사장님 아녜요”라고 응답한다. 여성분들은 심지어 내게 “알겠어요. 오빠”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대로 가만 놔두면 남들이 오해할 것 같아 웃으면서 “그런 말 어디에서 배웠어요? 저는 오빠 아녜요. 그렇게 부르면 내가 창피하니까 자 절 따라해 보세요. 신.부.님”하고 가르쳐준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의 효과가 나타나 꽤 정확한 발음으로 나를 신부님이라고 불러준다.
이렇게 나와 이주민 사이에는 언어·문화·종교 등 수많은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비단 이주민뿐이겠는가?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형제·친구 사이에서, 또 더 나아가 하느님과 나 사이에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존재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이것들을 넘어서야 하는 걸까? 다행히 나는 이주민들과 시간을 보내며 이러한 장벽들을 인식하고 넘어가는 방법들을 매일같이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이주민들과의 만남은 내게 정말 소중하고 귀한 체험이 되고 있다.
이주민들의 눈과 귀, 때론 이들의 발이 되어 주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건 무엇보다 이분들의 마음이 내게 전달될 때다. 그러면 모든 것들이 쉬워지고 잘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역지사지의 마음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혹시 ‘이제는 좀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데, 화해해야 하는데, 잘 안 된다’ 싶으면 한번 화해와 용서를 상대방의 처지에서 눈과 귀, 때론 발 역할을 자처해 보면 어떨까.
오현철 신부(예수회,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김포이웃살이 의료·복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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