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로마의 한글학교에선 꽹과리 대회가 열립니다. 도전 골든벨을 상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학년별로 역사, 통일, 한글 문법, 맞춤법, 문화 부분의 예상문제를 공부해야 합니다.
한국의 어린이들에게는 일상 속에서 접하기 쉬운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겐 무척 생소한 단어와 문제들입니다. 종종 대회 참여를 포기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낯선 문제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부모의 역할이 크게 차지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도 부모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덕분에 한국을 함께 공부할 기회가 되는 소중한 날입니다.
암기력이 좋은 아들은 재작년에는 장원, 작년엔 준장원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올해도 장원이나 준장원을 할 것이라고 의기양양했습니다. 아들은 대회 당일까지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회 직전, 한두 번 문제를 읽어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만 해도 이길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겠지요.
대회가 시작되었고 아들은 세 문제 만에 탈락했습니다. 독도의 바다사자, 강치를 맞히지 못했습니다. 탈락해서 제 곁으로 온 아들은 꽤 서럽게 울었습니다. 부끄러움과 속상함, 당황스러움까지 아이들의 울음 속에 많은 감정들이 묻어있었습니다. 어깨를 들썩이며 제 품에 얼굴을 묻고 우는 아들을 바라보며 제가 느낀 감정은 감사함이었습니다.
문제를 대충 훑어보고 참여한 대회에서 아들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아이는 최선과 노력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 영화 ‘에반 올마이티’(2007)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누가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그 사람에게 인내심을 주실까요? 아니면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까요? 용기를 달라고 하면 용기를 주실까요? 아니면 용기를 발휘할 기회를 주실까요? 가족이 좀 더 가까워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뿅 하고 묘한 감정이 느껴지도록 할까요? 아니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실까요?”
우는 아들의 등을 쓰다듬으며 속삭였습니다. “이안아, 너무나 감사한 거야. 너를 정말 사랑하시는 거야.”
그날 밤, 아들의 일기를 옮겨봅니다. 우리의 기도를 돌이켜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지 되뇌어봅니다.
‘꽹과리 대회’. “저는 이번에도 꽹과리 대회를 나갔어요. 작년엔 2등을 하고 재작년에는 1등을 해서 더 당당하게 그리고 자신 있게 대회를 나갔어요. 1등은 못해도 2등은 할 수 있을 줄 알고 공부를 거의 안 했죠. 그래서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저는 5등으로 떨어지고 같은 반 이한이에게 1등 자리를 내줘야 했죠. 저는 강치 문제에서 떨어지고 의자를 떠나고 나서 엄마에게 안겨 울기만 했어요. 엄마는 공부를 하고 떨어지고 우는 건 괜찮은데 공부를 안 하고 우는 건 좀 아니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땅을 치며 후회했어요. 왜냐하면 엄마는 계속 저에게 공부를 하라고 했지만 저는 공부를 안 하고 게임만 했거든요. 저는 아침에 2시간이 있었고, 동생 이도의 리듬체조 대회에서의 4시간도 있었지만 공부를 하지 않았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저는 엄마한테 말했어요. 나는 강치 문제 빼고 다 알았는데 왜 강치 문제를 꼭 내야 했느냐고요. 엄마가 웃으면서 말해주었어요. 하느님이 절 사랑해서 저에게 공부를 안 하면 못 넘는 장애물을 주셨다고.”
김민주 에스더 (크리에이터·작가, 로마가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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