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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뉴스

유관순 열사 옥중 동료 4인 3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참 빛 사랑 2023. 3. 2. 17:10
 

유관순 열사의 옥중 동료 4인이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습니다.

오늘(28일) 국가보훈처는 "유관순 열사와 서대문감옥 여옥사 8호 감방 동료인 권애라, 심영식, 신관빈, 임명애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권애라, 심영식, 신관빈, 임명애 선생은 주체적으로 3.1독립대혁명에 참여해 일제의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여성 독립유공자입니다.

권애라 선생은 1897년 경기도 강화 출생으로, 1918년 서울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호수돈여학교 부설 유치원 교사로 재직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 선생은 예배당에 숨겨두었던 독립선언서를 직접 꺼내와 심영식, 신관빈 선생 등과 함께 개성 시내에 배포했습니다.

이튿날 호수돈여학교 학생들과 만세시위를 준비했고, 다음날인 3월 3일에는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거리시위에 나서면서 개성 최초의 만세시위가 일어났습니다.

권 선생은 독립선언서 배포 혐의로 체포 돼 1919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지역 6개월형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습니다.

권 선생은 1920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내 조직원으로 독립자금 모집에 관여한 혐의로 종로경찰서에 구금 돼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해 가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해애국부인회와 고려공산당 상하이 지부에서 활동했습니다.

1922년 1월에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극동민족대회에 상해애국부인회 대표로 참가하면서 독립운동을 이어 갔습니다.

1943년 3월 일본 관동군에 체포 돼 만주국 고등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2년형을 선고 받았고, 장춘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광복으로 석방됐습니다.

권애라, 심영식 선생(이미제공 ; 국가보훈처).


1887년 개성 출생인 심영식 선생은 1919년 기독교 전도사로 활동하던 중 독립선언서를 배포했고, 3월 4일 개성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 됐습니다.

1919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투옥 중 간수에게 뺨을 맞고 고막이 터져 평생 한쪽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1885년 황해도 출신인 신관빈 선생은 1919년 3월 1일 권애라, 심영식 선생 등과 함께 개성 시내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했습니다.

이튿날 선생은 교회에서 체포됐고,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1920년 4월 만기출옥한 선생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감옥생활 동안) 사람으로는 받지 못할 만큼 망측한 대접을 받았다"고 회고했습니다.



1886년 경기도 파주 출신인 임명애 선생은 염세호 한국 구세군 사령의 배우자입니다.

선생은 1919년 3월 10일 파주군 교하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 1백명은 이끌고 앞장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했습니다. 파주의 첫 만세 시위였습니다.

3월 25일에는 선생의 집에서 배우자, 학생 등과 함께 격문을 작성해 주민들에게 배포했습니다.

격문내용은 '3월 28일 만세시위를 일으킬테니 모두 둥글봉으로 모이라!' 였습니다.

선생은 거사 이틀 전 염규호 등 700명과 와석면 사무의 유리창을 부수고, 면서기들에게 휴무할 것을 압박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선생은 이날 현장에서 일제 헌병에 체포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받고 서대문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권애라 선생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심영식·신관빈 선생에게는 1990년과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임명애 선생에게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