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함께하는’ 생명의 식탁으로 초대
“부온 프란조(Buon pranzo)!”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부온 프란조(Buon pranzo)!” 곧 “행복한 점심 되세요!”라고 당부하는 최초의 교황이다. 교황은 “오늘날 지나친 개인주의로 우리가 자신을 타인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이 어렵게 됐다”(「사랑의 기쁨」 제33항)고 지적한다. 가정의 식탁에서도 마찬가지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먹는 식탁이 드물게 됐고, 나 혼자 먹는 것에 익숙해졌으며, 타인과의 식사는 어색하게 되었다. 물론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혼자’에 익숙해져 버린 이 현실에서 파생되는 환경 오염, 우리 몸에 가해지는 보이지 않는 건강에 대한 위협, 돈이면 무엇이든 사들여 먹는 이들의 특권이 만연하면서 많은 사람이 그 특권 때문에 희생돼야 하는 불공정이 보편화하였다.
교황의 ‘부온 프란조(Buon pranzo)!’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개인을 넘어선 ‘공동의 사람들’(comuni)에게 ‘함께하는’ 생명의 식탁에 참여하라고 매주 신자들에게 던지는 당부가 아닐까? ‘함께하는’ 식탁에서는 음식의 성스러움이 회복되는 것이다. 즉 음식은 ‘친교’(comunione)다. 음식과 함께할 때 타인의 기쁨과 고통, 고단함과 희망이 보이고, 또 그것을 나눌 수 있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사랑을 나눈다는 것과 같다. 같이 먹는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타인과 높게 쌓인 불신과 적대의 벽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 관련 에피소드와 레시피 소개
나는 지면을 통해 두 명의 이탈리아 예술 거장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와의 만남을 시도해 보고 싶다. 그들이 500여 년 전 로마에서 살았을 때의 삶과 나의 로마에서의 삶을 로마라는 같은 공간 선상에 놓고 그들과 추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시간이야 500년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로마를 거닐다 보면 그들과 어깨를 마주치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면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겐 그렇게 느껴지고, 그들의 옷자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도 환청과도 같이 들린다. 또한, 바티칸 교황청에 거주하였던 현대의 몇몇 교황들, 비오 10세나 성 요한 23세, 성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호했던 음식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고 여기저기 책자를 뒤져 보았다. 아울러 로마의 이웃이었던 나의 영원한 스승 시뇨라 데레사(Signora Teresa)의 로마식 요리와 로마에서의 삶에 대한 재밌는 추억과 경험을 적어보고 싶다.
두 천재 예술가와의 만남이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요리를 즐겼고 공방 친구이기도 했던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와 피렌체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요리와 시간의 차이가 느껴지긴 하지만, 그 당시의 레오나르도가 주장했던 식탁의 매너를 적어보고 싶다. 또 ‘미켈란젤로 없는 로마는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그의 작품이 교황청과 로마 곳곳에 전시되어 있고, 그의 발자취가 아직 살아있으니 그가 로마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상상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상의 나래는 20여 년간 로마에서 살며 터득한 유쾌하고 행복해진 나의 삶의 방식이 아닐까? 에피소드 하나에 로마식 요리 한 가지의 레시피(요리법)를 선물해 주고 싶다. 나의 이 에피소드를 읽는 독자들이 레시피를 보며 로마 요리를 하나하나 만들어 보기를 권하면서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서 보여지고 느껴지는 만남과 치유, 그리고 화해로 무너진 우리의 식탁에 새로운 향기가 흐르기를, 가족에게 기쁨을 주고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