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는 평생 동정녀로 살며 굳은 신앙심과 이웃을 위했다. 젊은 시절 가족 중엔 처음 하느님 자녀가 됐고, 이후 가족, 친지, 그리고 15명에 이르는 조카들이 모두 그를 따라 세례를 받았다. 코흘리개 조카들은 주일이면 무조건 고모를 따라 미사에 참여했다. 새벽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기도하는 모습이 조카들 기억에 남아 있는 고모의 삶이었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간에 좋다는 토룡탕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을 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최종명(라우렌시오, 1994년 선종) 수사와의 인연으로 토룡탕 제조법을 전수받아 시작한 사업은 생각보다 잘됐다. 공장도 세우고, 전국에 대리점도 몇 개씩 두면서 번창했다. 그리고 돈을 버는 족족 가난한 아이들을 찾아 나눴다. 교회 기관이나 성당 등을 통해 끊이지 않고 장학금과 성금을 기부했다. 주변에 더 가난한 아이들을 만나면 자신의 방까지 내주면서 학업을 도왔다. 많을 땐 1년에 대학생 20여 명의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로 공부한 아이들 가운데엔 현재 판검사가 된 이도 있다.
할머니는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 봉헌회 1기 회원으로,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복음적 삶의 지혜를 교회 안팎에서 실천하면서 수도원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지냈다. 유족은 고인의 뜻대로 시신을 대학병원에 기증했다.
김 할머니의 장조카 김종태(안드레아, 66)씨는 “고모님께서는 삶의 첫째에 꼭 가난한 이들, 그리고 공부하고 싶은 청년들을 두셨다”면서 “평생 나누는 삶을 지켜본 저희 조카들도 고모님 정신을 본받고 기억하며 살겠다”고 전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