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의 순례일기] (40)로이커바트의 기억

10여 년 전, 스위스의 한 작은 산악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남프랑스를 순례한 뒤 독일의 성지로 이동하는 길이었는데,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유명한 로이커바트(Leukerbad)라는 산악 온천마을입니다. 해발 3000m에 자리 잡고 있어 만년설로 뒤덮인 알프스와 아름다운 호수를 마음껏 볼 수 있으며, 패러글라이딩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알프스에서 몇 안 되는 온천으로 유명하지요.
저희가 방문했을 당시만 해도 로이커바트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닌 데다가, 사람이 찾기 어려운 높은 산봉우리에 있어서 관광객 대부분이 유럽인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순례단이 숙소에 여장을 풀기가 바쁘게 미사를 봉헌하러 마을 한복판에 자리한 작은 성당으로 향하는 모습이 그곳 사람들 눈에 띄었는지, 미사를 봉헌하고 성당 마당으로 나오자 놀랍게도 주임 신부님과 마을 주민 여럿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듯 보이는 신부님께서는 아시아에서 온 신자가 이곳에서 단체로 미사를 봉헌하는 일이 처음이라고 말씀하시며 신자들과 함께 순례단을 환영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한국의 가톨릭에 대한 여러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제나 수도자의 선교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평신도 스스로가 책을 통해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곤, ‘원더풀’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건네셨습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아직도 매년 수십 명의 사제가 새로 탄생한다는 이야기에 더욱더 놀라셨습니다.
“물질만능주의가 휩쓰는 시대에, 그토록 많은 사제가 서품되고 있다니요! 놀랍고 부럽습니다. 사실 저는 보좌신부도 없이 5개의 본당을 맡고 있습니다. 올해로 여든 살이지만 후임 사제가 없어서 은퇴조차 상상할 수 없답니다. ”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수년 동안 저는 서울대교구 신학교와 연계하여 부제반의 이스라엘 순례를 함께 해왔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 성소를 개발하고, 10년 가까이 묵묵하게 한 길만 보고 걸으신 분들입니다. 흔들리고 힘들었던 시간을 모두 이겨내고, 꿈에 그리던 서품을 두 달여 앞둔 즈음에 떠나는 이스라엘 순례는 분명 가슴 벅찬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부제반으로 함께 순례했던 부제님, 이제는 신부님이 되신 분을 얼마 전 뵈었습니다.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지는 그때의 순례 이야기를 한창 나누다가, 지난 2년 가까이 코로나19로 인해 신자들과 함께 만날 기회가 없었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하셨습니다. 게다가 큰 본당임에도 신학생은 물론 예비 신학생도 전혀 없다면서, 한창 신앙을 키워나가야 할 학생들이 신앙의 중요성과 공동체 안에서의 기쁨을 잊고 지내는 시간이 너무나 길어지니 안 그래도 많지 않은 성소자가 더욱 적어질까 걱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수도 사제인 동창 신부님으로부터 한국에서 가장 많은 수도자를 가진 수도회에 올해 단 한 명의 지원자도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지요.
사실 십여 년 전부터 교회 안에서는 점차 줄어가는 성소에 대한 우려가 계속 있었습니다. 저 역시 매년 부제반과 함께하면서 점차 그 인원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1980년대 서울 대신학교에서는 한 학년에 신학생이 100명이 넘기도 했습니다. 제가 재학하던 시절 D본당 한 곳에서만 13명의 신학생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숫자가 지방에 있는 A교구의 전체 신학생 숫자보다 많았기 때문에 농담처럼 D본당을 ‘D교구’라고 부르기도 했었지요. 2021년 올해 서울대교구의 전체 입학자가 20명을 겨우 넘긴 정도이니, 격세지감을 느낄 만한 큰 차이입니다.
어린아이처럼 환한 얼굴로 순례단을 맞아주셨던 로이커바트 마을 본당의 신부님께서 덧붙이셨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에 그렇게나 많은 사제가 탄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절대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사실 50여 년 전 스위스에는 사제가 아주 많았습니다. 저만 해도, 서품받은 후 5년 동안이나 여러 본당을 다니며 교리교사로 일하고 나서야 겨우 보좌신부로 발령받을 수 있었을 정도였지요. 한국에 많은 성소가 있는 것은 기쁜 일이나, 더욱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내일 일은 여전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심하게 떨리는 손을 흔들며 굽은 허리로 성당 밖까지 순례단을 배웅하시던 신부님을 기억하며, 순례 중에 이루어진 잠깐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지금 우리가 꼭 해야 할 기도 한 가지를 다시 한 번 곱씹어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 37-38)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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