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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고국의 성지 순례에서 얻은 특별한 기쁨

참 빛 사랑 2021. 10. 16. 19:49

[미카엘의 순례일기] (39)독일 한인성당 신자들의 한국 순례(하)

 

▲ 제주교구 용수성지에 복원된 김대건 신부 일행이 탔던 라파엘호가 전시돼 있다. 용수 포구는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고 배를 타고 귀국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표착한 곳이다.

 

독일 한인 성당의 한국 성지순례가 더욱 의미 있게 된 데는 주임신부님의 노력이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매일의 강론도 정성 들여 준비하셨을 뿐만 아니라, 용산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도 일정에 넣어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이 비약적인 경제 발전에 뒤따른 아픔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김길수(요한 사도)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도 직접 섭외하셔서 강의는 물론 1박 2일 동안 함께 순례에 동행하도록 하셨습니다. 교구장 주교님과 함께하는 미사도, 주교님께서 순례단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타향에서 겪은 아픔을 위로해주시며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누셨던 주교님께서는 순례단을 그냥 보내 수 없으셨는지, 다른 일정을 미루시고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사주기도 하셨습니다.

교포들에게 있어 고국의 모습은 수십 년 전 기억 속 그 시간에 멈춰 있습니다. 순례 중에 여러 지방의 유명한 식당을 예약해서 특별하고 맛있는 식사를 준비했지만, 대부분의 식사는 순례단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40여 년 전 한국의 음식과 달리 대부분 너무 달거나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신자들이 저를 독일로 초대해주신 적이 있는데, 그때 준비해주셨던 한식은 놀랍게도 어린 시절 시골에서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그 맛 그대로였습니다. 순례 중에 그분들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음식은 짜장면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고, 그 맛이 예전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순례의 마지막 일정은 제주도였습니다. 그곳에도 물론 아주 많은 순례지가 있습니다. 제주 최초의 신자였던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은 풍랑에 의해 중국 땅에 좌초했다가 천주교 신자가 되었으며, 제주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평생 노력하다 통영에서 잡혀 매질 당하고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죽음 후 다시 부활해 영생하리라는 그의 굳건한 믿음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그가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시신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고 합니다.

성 정하상 바오로의 사촌누이인 정난주 마리아는 황사영 알렉시오의 부인입니다. 장원급제하여 정조의 사랑을 받았으나 백서 사건으로 능지처참을 당한 남편으로 인해 정난주 마리아는 젖먹이 아들과 함께 제주도로 유배되었습니다. 평생 관노로 살게 될 아들을 염려해 뱃사공을 설득하고 관헌에게는 술을 먹인 후 아이를 추자도 바위에 놓고 홀로 제주로 붙잡혀갔습니다. 이후 오씨 성을 가진 사람이 아들을 발견하여 키웠고 그 후손은 여전히 추자도에 살고 있습니다. 옷 소매에 남겨진 표식으로 인해 황씨 집안의 자식이었음이 알려졌는데,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추자도에서는 오씨와 황씨는 혼인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난주 마리아는 평생 관노로 살아가면서도 그 품위와 자세를 올곧게 하며 신앙을 지키고 살았기에 주위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목숨을 버린 순교자만큼이나 살아서 숭고했던 그분의 삶 또한 기억해야 마땅합니다.

물론 제주의 가장 귀한 순례지는 용수 포구입니다. 페레올 주교님, 다블뤼 신부님을 비롯한 김대건 신부님 일행이 풍랑으로 좌초해서 조선 땅에 처음 디딘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도 아주 훌륭한 성지와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습니다. 국내 순례는 해외의 유명 성지를 순례하는 만큼이나 큰 의미가 있고, 우리 선조의 이야기이기에 훨씬 더 진한 여운을 남기게 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지를 가까이에 두고 살아가는 이들도 고국의 성지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은 특별하셨던 것 같습니다. 순례를 마치며 한 형제님께서 해주신 말이 있습니다.

“다른 한인 성당 신자들에게도 꼭 한국 순례를 권해야겠어요. 우리 선조들의 모든 순간에 하느님께서 함께하셨듯 우리가 깊은 탄광에서 보낸 시간이나 고국을 그리워하며 울었던 그 모든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어요. 비록 우리의 마지막 소원인 고국에서의 노후 생활이 이루어지지 못하더라도, 그것 또한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성인도, 당신 삶의 마지막 모습이 소원대로 되지 않았다고 불평하신 일이 없으니까요.”

온 국민이 여권조차 스스로 만들 수 없었던 시절, 나고 자란 땅을 뒤로하고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타국으로 떠난다는 것은 요즈음의 우리가 차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괴롭고 힘든 가시밭길이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불려가는 순간만큼은 한국에서 맞이하고 싶다던 그분들의 바람이 꼭 이루어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가을이 오면 그때의 순례가 떠오르고는 합니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 곁에 있는 가족들의 따뜻함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밤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