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첫 1년 동안 조건 없이 부모(특히 엄마)로부터 들어야 할 말이 있다. “우리 아기 너무 예쁘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아빠와 엄마는 너를 지켜줄 거야!”라는 메시지다. 아기가 생후 12개월 안에(적어도 3년 안에) 부모의 조건없는 축복을 체험하면 정서와 지성, 영성 발달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아이가 사랑과 안정의 욕구가 해결된 건강한 양육환경에서 자라나면 5세 이후부터는 ‘건강한 자기개념’을 갖게 된다.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이며 버려지지 않는다고 확신하면 부모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어떤 환경에서도 손상 받지 않는다. 즉, 부모가 아무리 듣기 싫은 잔소리나 충고를 해도, 혹은 심하게 야단치고 처벌을 해도 자신과 부모에 대한 긍정적 관점을 쉽게 잃어버리지 않는다. 건강한 자기개념을 기반으로 한 아이들은 성인기에 접어들어도 부모의 잔소리나 과도한 개입도 긍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 부모에게 실망한다 해도 그것을 승화시킬 수 있는 내적인 성숙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부모가 심리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나름 아이를 사랑으로 돌본다고는 하지만 부모의 심리내적인 불안정성은 자칫 아이에겐 부정적 메시지로 전달될 수 있다. 게다가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 키울 때는 아이의 기질에 따라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많다. 아이는 부모와 떨어진 환경이나, 부모의 불안정한 감정상태에 의해 스스로 사랑받지 못한 존재로 인식하고 앞으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아이가 세 살까지, 아니 길게 잡아 다섯 살에 이르렀는데도 사랑과 안정에 기반을 둔 건강한 양육환경을 체험하지 못하면 결국 ‘부정적인 자기 개념’을 형성한다. 자존감의 핵심을 이루는 자기 개념이 부정적으로 형성되면 평생을 거쳐 성격장애의 후유증과 존재의 근본적인 불안을 체험한다.
어린 시절 사랑과 안전에 대한 결핍을 겪은 아이들은 성인기에 가까울수록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생물학적인 에너지가 강렬해진다.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와 세상에 버려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확신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 부모로부터 어른이로 대접받고 있다고 느끼면 강력한 반발심이 생긴다. 성인기 자녀들이 부모와 결별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떨어져 있으면 만나고 싶지만, 만나면 갈등하게 되는 심리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모로부터 온전히 다 큰 성인이 되었다는 메시지, 즉 이제 독립해도 좋다는 신호는 아이들의 결핍을 오히려 만회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부모가 성인이 된 자녀에게 독립의 메시지를 주는 그 자체는 오히려 과거의 결핍을 해소할 수 있는 정말 중요한 치료제가 된다.
어릴 때 신었던 꼬까신을 벗어버리고 이제 새로운 고무신을 선사 받게 되는 이 독립의 메시지는 바로 “나는 너를 믿는다!”라는 말이다. 과거의 자녀가 어떤 아이였건 상관없이 이제 아이는 온전한 성인이며 스스로 자기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메시지가 바로 “믿는다”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랑과 안정의 욕구에서 결핍을 체험한 자녀들이 치유될 수 있는 가장 강력하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치료제이다.
어떤 부모는 자기 자식을 믿지 못해, 어떤 부모는 자녀가 다 컸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걱정과 염려가 되어서 믿는다는 말을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나는 너를 믿는다”라는 말은 자식이 “성공할 것이다” 혹은 “잘못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어떤 능력이나 그 결과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온전히 믿는다는 신뢰의 메시지는 자식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더 근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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