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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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야기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18) 고기잡이 기적 - 어부를 제자로 부르심(5,1-11)

참 빛 사랑 2017. 6. 14. 22:20


주님의 부르심에 죄인임을 고백한 시몬 베드로


▲ 요르벨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갈릴래아 호수. 왼쪽에 기노사르 평야가 펼쳐져 있다.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루카는 5장을 시작하면서 서로 연결된 두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고기를 많이 잡게 하신 기적과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을 부르신 일입니다(5,1-11). 이번 호에서는 본문을 차례로 따라 읽어 내려가면서 함께 생각해 봅니다.



갈릴래아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시던(4,44) 예수님께서 어느날 겐네사렛 호숫가에 나타나십니다. 이미 예수님의 소문은 주변에 퍼졌을 테고(4,37), 그래서 예수님을 보러 아니면 그분의 가르침을 들으러 군중이 몰려왔을 것입니다.

루카는 군중이 예수님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대어놓은 배 두 척을 보셨는데, 어부들은 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고 전합니다.(5,1-2) 군중이 들은 하느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루카는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4,43)에 관한 말씀인 것이 분명한 듯합니다. 배 두 척이 호숫가에 대어져 있고 어부들이 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는 것은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마쳤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두 척의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고는 시몬에게 뭍에서 조금 떨어지도록 배를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십니다. 그러고 나서는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십니다.(5,3) 아마 서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다가 피곤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몬은 이미 카파르나움의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장모의 열병을 낫게 해주셨고, 많은 병자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4,38-41 참조). 그러니 배를 뭍에서 조금 떨어지게 저어 나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당연히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하고 이르십니다. 그러자 시몬이 이렇게 대답하지요.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5,4-5)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시몬은 예수님의 분부가 마뜩잖았을 것입니다. 시몬은 고기잡이가 주업인 어부였습니다. 게다가 간밤에는 밤새도록 애썼지만 허탕이었습니다. 그러니 몸도 더 피곤했을 것입니다. 그물도 다시 손질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어부와는 거리가 먼 랍비 예수님,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선비 같은 예수님이 자기 배에 올라 뭍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라고 하시더니 이제는 깊은 데로 저어 나가 그물을 내려 고기까지 잡으라고 하시니 기분이 썩 좋을 리는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시몬은 “스승님…” 하면서 말씀대로 따릅니다. 성경학자들은 여기에 나오는 ‘스승님’이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선생님’ 하고 존경을 표시하는 것보다 예수님의 권위를 훨씬 부각시키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고(4,32.36 참조), 시몬 또한 이를 깨달았기 때문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스승님’ 표현은 어쩌면 무림에서 스승을 높여 부르는 ‘사부님’이라는 표현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쨌거나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시몬이 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된 것입니다. 시몬은 자기 배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자 동료들을 부릅니다. 두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5,6-7) 그것을 보고 놀란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으려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5,8) 고기가 많이 잡혔을 뿐인데 왜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자신은 죄가 많다고 고백했을까요?

시몬은 이미 예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카파르나움에서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고기잡이에서만큼은 자신이 예수님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예수님 말씀에 거역하지는 못했지만 속으로 투덜거렸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엄청난 고기가 잡히니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봐야겠지요.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자신의 왜소함, 비천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시몬은 진정으로 예수님의 권위에 승복합니다. 고기를 잡기 전에는 “스승님”이라고 불렀다가 갑자기 “주님”이라고 으로 호칭이 바뀐 것이나,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볼 때 시몬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과 닮지 않았는지요?

그런데 놀란 사람은 시몬만이 아니었습니다. 동업자들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마찬가지로 놀랐습니다. 그런데도 엎드려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고백한 사람은 시몬 한 사람뿐입니다. 게다가 루카는 시몬 베드로라는 이름까지 덧붙입니다.(5.8)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케파 곧 바위라는 뜻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붙여주신 이름입니다.(루카 6,14) 마태오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후 그를 교회의 기초로 삼으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십니다(마태 16,18 ; 요한 1,42 참조). 그렇다면 ‘저는 죄인이니 제게서 떠나 주십시오’라는 시몬 베드로의 고백은 시몬 한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시몬을 기초로 하는 공동체 전체를 대표하는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몬의 고백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5,10) 예수님의 이 말씀에 시몬뿐 아니라 야고보와 요한까지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5,11)고 루카는 전합니다.



생각해봅시 :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요?



▲ 예수님 활동 당시 이스라엘 지도


▲ 갈릴래아 호수.




알아둡시다 : 갈릴래아 호수

루카가 겐네사렛 호수라고 부르는 호수는 갈릴래아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겐네사렛이라는 이름은 호수 서북쪽 고을과 평야 이름이 그리스말로 ‘겐네사렛’(히브리말로는 기노사르)이어서 나왔다고 합니다. ‘티베리아’라는 명칭은 호수 서안에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가 세운 도시 이름이 ‘티베리아스’라는 것과 관련됩니다.

요르단강 상류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하류로 보내는 역할도 하는 갈릴래아 호수는 바다처럼 커서 유다인들은 호수가 아닌 ‘바다’라고 불렀다고 합니다.(마르코복음과 마태오복음에서도 그리스어 사본에서는 ‘바다’로 표기하고 있지만 우리말 번역 ‘성경’에서는 통일성을 주기 위해 모두 ‘호수’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크기가 얼마나 될까요? 호수 남북의 길이는 약 20㎞ 동서의 길이는 약 2㎞, 둘레는 52㎞로, 호수 넓이로 보면 약 170㎢입니다. 여의도 면적의 20배에 이릅니다. 호수 서북쪽의 겐네사렛(기노사르) 평야를 거쳐 북쪽으로 올라가면 헤르몬 산이 있고 호수 동쪽으로는 골란 고원이 이어집니다.

겐네사렛, 타브가, 카파르나움, 코라진, 벳사이다, 게라사(쿠르츠), 막달라 등 성경에 나오는 갈릴래아 지방 도시(고을)들이 이 호수를 끼고 있어서, 갈릴래아 호수는 오늘날 성지순례객들이 꼭 찾아가고 배도 한 번 타보는 지역입니다.